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이 서평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 책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쓴다.

책이나 사람의 사상이나 정확한 독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해에 상반된다고 생각되는 <오해>는 이해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해의 한 방식이다.

원전을 읽고(미셸푸코의 프랑스어 책을 읽어도), 문장을 아무리 따져보아도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가 똑같을 수 없다.  반드시 이해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성의 역사> 재번역 출간을 기념하여 서평을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글도 이해의 한 방식일 것이다.

그것이 오해이든, 푸코에 대한 오독이든 상관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한우 기자의 글은 푸코 독해의 <한 방식>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권력 개념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푸코의 권력 개념에 상관없이(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 그의 권력 개념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우리에게 권력은 (이한우 기자의 표현대로) <부당한 질서를 강제하는 힘>으로 곧잘 이해되고 있다.

사실, 푸코의 권력 개념 정의를 보면 위와 같은 1차원적인 권력개념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푸코의 책을 샅샅이 읽어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성의 역사에 붙여진 부제만 읽고 추론해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권력이 여전히 어떤 부당한 질서를 강요하는 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푸코의 권력

개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원전을 지적해가며 확인하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왜 우리에게는 권력이  <부당한>이라는 가치가 색칠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이런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써놓고 보니 책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이한우 기자의 글에 대한 코멘트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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