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를로 로벨리, 김정훈 역,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쌤앤파커스, 2018.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죽음에 대해 논할 때 비난을 받는 건 죽음이 원자의 재배치일 뿐이라는 가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을 정의할 때 비물질적 가치를 따지게 되는데 만약 인간의 종말이 원자의 재배치일 뿐이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이나 감정, 영혼 같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호기심은 근원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고 또 하고, 과거의 증거들을 뒤져서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데모크피토스가 원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을 해석하는데 인용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물리학이라는 것에 좀 더 다가가 보려고 한다.

 

책의 전반부에는 과거 철학자 혹은 과학자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의 가장 작은 입자가 뭔지 연구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들의 철학이,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철학적인 사유는 우리가 우주를 탐구하는 근간이 되고, 지구를 탐색하는 이론이 되었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한계에 이른 지구를 언젠가 떠나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면 우주의 또 다른 정착지를 찾는 근거이론이 될까?’라는 황당무개한 의문도 품게 만든다.

나처럼 수학에 울렁증을 가진 사람이 이런 책을 읽어도 될까 고민해 보는데, 천천히 차를 마시듯 음미하면 될 법한 책이다. 솔직히 여기 나온 이런저런 공식이나 도표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요한건 내가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지속되는 현재’에 매력을 느낀 거 같다. 시공간에 대한 수학이나 철학적 사유를 자세히 설명하는데 그것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설명할 때, 우리가 지속되는 현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뭐 그것은 역사와 연결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지점이다. 우리는 왜 같은 내러티브에 매혹을 느끼는지에 대한 단서라고나 할까.

 

양자역학적인 면에서 시공간의 개념은 장의 개념으로 발전한다는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읽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드니 빌뢰브의 영화 《컨텍트》를 떠올랐다. 거기에 등장하는 우주인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까 어떤 대화를 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함께 하는건데 어떤 일의 변화는 어떤 인물이나 사물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일은 미래 혹은 과거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것도, 과거때문에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라 지금 행복을 찾을 때 결국 상처받는 과거도 유의미해지고 두려운 미래도 개선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떤 원자들끼리의 관계가 만들어 낸 장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상호작용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엮어내는 불연속적인 기본 실체를 생각한다”라는 이야기. 좀 더 시각적으로 설명한다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공간의 모습이나 존재의 인식, 뭐 그런 것들이 내가 이해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있다는 걸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무려 이천년이 넘는 추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이 알아낸 정보는 추정이 더 많은 것 같다. 뉴턴이 고대의 발견을 수학으로 풀어내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 스티븐 호킹이 지구 너머의 세계에 대한 위대한 원고들을 남겼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라는 말이다.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책에서 골라 내 입맛에 맞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식대로 이해한 바를 설명하자면 세계를 작은 입자로 나누어도 그것들은 상호작용에 의해 변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장의 개념에서 이해해야 하다보니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가 가장 확연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우주의 이야기로 점철된다.

 

아뭏든 수학을 싫어하지만 이 책은 좀 더 속도를 느리게 해서 읽어야 좋다. 충분히 저자가 제시한 인물들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물리학이 그닥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물리학은 그 원리를 알아내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수학보다는 소설처럼 읽히는 물리학책.. 뭐 이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또, 책이 양장판이 아니었다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내용도 무거운데 무게까지 나가니 편하게 읽어지지 않는다. 학술서로서의 무게감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까?

 

감히 위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소설처럼 읽으려고 했던 나의 처음 태도를 반성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책을 읽는 의식을 치러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ㅣ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음 / 백년동안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왜 우리는 세종에 집착할까? 훈민정음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는 우리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세종이 기용한 인물만 해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인재들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다. 그런 세종이 “과연 성군인가”라고 질문하는 도발적인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할 만 하다. 또 한 가지는 환상이다. 환상은 그 어휘 자체만으로도 신비롭다. 그런데 저자의 머릿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닫힌 국가로 살았기 때문에 역사가 만들어낸 환상에 유달리 젖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환상은 그것에 집착한 집단끼리의 갈등을 만들어 내니 저자는 그것을 파헤쳐 실체를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세종 과연 성군인가』는 그 첫 도서이다.

책은 세종이 성군이 아닌 이유를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노비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 둘째, 종모법과 함께 늘어난 노비의 신분 중에서 기생도 마찬가지로 늘어나 관료들을 위해 일했다는 것. 셋째, 과도한 사대는 세종의 정치가 도덕적이고 인륜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특히 훈민정음은 세종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파스파 문자의 원리를 차용해 온 것이라는 것을 논자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온 국민이 숭배하는 세종에게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책의 후반부에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세종이 완성한 국가는 백성의 국가가 아니라 양반과 왕의 국가였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권리는 무시됐다는 거다. 저자는 자유의 조건으로 신체의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든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평화를 든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국가에 산다는 것에 대해 냉소적인 이유가 개인의 자유를 가르치지 않은 12년간의 공교육에 책임을 묻고 있다. 그리고 건국 당시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감사와 찬사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바치는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이승만의 평생에 걸친 독립운동과 건국투쟁을 관철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종서약”(208쪽)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묻는다면 반반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종의 치세에 문제가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이미 여러 논자들이 조선은 사대부를 위한 정치를 했던 국가라는 것을 이야기 했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노비와 기생에 관한 것이라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개인의 권리보다 양반의 권리를 우선했다는 면은 이미 누구나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세종만의 문제였는가는 아직 판단을 보류하고 싶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아직 세종에 대한 환상을 갖고 싶은 나일수도 있겠다. 내가 정통한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필자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쉽게 세종이 성군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좀 더 다른 각도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자유권과 재산권을 논하면서 애덤스미스의 이론을 가져왔고, 이승만의 연설까지 가져와 근거를 드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물론 그것이 아직까지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말하려고 한 의도인 것 같긴 하지만 책임을 공교육탓으로 돌리거나 개인이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는 찜찜한 면이 있다. 공교육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관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가에 우선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분위기로 만든 것은 철저하게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 분위기와 이때문에 생긴 학부모의 공포, 그리고 갑질문화가 아니던가. 이런 것을 공교육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너무 쉬운 결론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권리 보호가 아직까지 잘 안되고 있다는 면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의 차원이 미국처럼 발달해야 한다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것이 미국이라서가 아니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했다. 

어쩌면 5장이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냥 역사에서 새로운 측면에서 세종을 평가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어쩐지 저자가 다른 장보다 5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상처 주지 않는 대화 -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비폭력대화의 기술
마셜 B. 로젠버그 & 가브리엘레 자일스 지음, 강영옥 옮김 / 파우제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상처 주지 않는 대화’의 저자 로젠버그는 “어렸을 때부터 인종차별에 따른 폭력(심지어 살인에 이르는)과 갈등 문제를 겪고” 자랐다고 한다. 로젠버그는 그런 배경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관계를 망가뜨리게 만드는지 질문하고 그것을 개선해 보고자 노력한 사람인 듯하다. 로젠버그가 훌륭한 이유는 자신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깊이 탐구해서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책에서 행복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감정을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개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발견할 때, 그리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때 드디어 관계의 개선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갈등을 일으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태도는 분노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상대방에게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견을 자칫 잘못 해석하면 화는 상대방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문제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당히 자신의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표현했다면 당장은 껄끄러울 수 있지만 나의 불편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비폭력 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욕구를 표현하라고 말한다. 욕구를 표현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구를 해결하는 과정에 실패가 있었다고 해서 자기비하는 금물이라고 말한다. 아마 이것은 욕구를 해소하고자 이러저런 노력을 했을 때 후회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단,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나 당연히 해소과정도 바람직(?)한 범위 안에서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대화를 기린과 자칼의 대화로 비유한다. 기린은 온유한 초식동물이지만 자신을 해치려 드는 강력한 동물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린의 덕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칼식 대화는 어떤 순간에도 상대방을 물어뜯는 방식의 대화이다. 기린식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한다. 그렇게 대화하다보면 타인에게 자신의 욕구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수직 관계에서 자칼식 대화는 특히 상처가 많다. 왜냐하면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물어뜯거나 자기비하를 하는 방식의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집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나는 딸이 있다. 나는 딸에게 내 욕구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딸의 인생에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딸이 원하지 않는 욕구를 내가 실천하게 해서도 안되는 것. 이런 것이 비폭력대화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폭력 대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것이 문제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이 책은 그것의 근본적 원인을 사회 구조적인 데서 찾고 있다. 사실 사춘기를 이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딸과 이 책을 같이 읽고 싶어서 용돈을 줘 가며 반응을 살폈다. 저자의 배경을 모른 채로 전반부를 읽은 딸의 독후감은 혹독한 편이었다. 딸도 동의했다. 내용에 틀림은 없다는 걸. 그런데 문제는 폭력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봐야 할 책을 왜 언어폭력을 당하는 입장에게 읽히느냐는 아픈 항의를 해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늘 딸의 행동을 판단하는 입장이고, 서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할 학교는 입시경쟁에서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공격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딸을 바라보는 나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미안함도 이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된 점이다. 딸은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내게 보내왔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여도 뒤를 받쳐주는 근거와 사례가 납득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어렵다. 이번에 얘기해볼 책인 이점을 간과한 듯 싶다. 이 책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나는 저자들이 괴변론자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저자는 분노를 완벽하게 표현하려면 분노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정류장에서 담배냄새를 맡고 화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금연구역인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나의 분노는 냄새를 맡은 나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인가? 
  
틀림없이 딸은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보다 왜 잘못 이해하는 일이 생겼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딸의 안에 생겨난 분노라고 말하고 싶다. 늘 평가를 받는 세계에 살던 딸 주변엔 피의 제물을 원하는 자칼이 늘 도사렸다고 볼 수 있다. 그게 바로 사회 구조이다. 느리게가 허용되지 않는 것. 수용보다는 평가가 더 난무한 사회, 지독한 서열 전쟁에서 배려라는 말은 헌신짝처럼 도서관 한구석이나 차지하는 사회 그것이 딸의 마음 안에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가 좀 더 다른 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엄마임을 반성하면서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은 말한다. 세상에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정직하게 내보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은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추상적이지만 후반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딸은 책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처음에 가졌던 비판적인 태도를 조금은 누그러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로젠버그의 세미나와 경험에서 나왔으며 그의 가정사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진 후반부의 내용 때문이었다. 딸의 분노를 누그러뜨린 것은 저자의 진정성이 아니었을까. 
  
비폭력대화는 자신과 타인을 진정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걸까. 아직 이 책을 탐독하지 않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으로 타인을 판단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대화태도를 점검해 보기를 권한다. 타인의 대화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차라리 덮어버리기를 권한다. 오래전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가슴에 먹먹해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로젠버그의 책에 의하면 자칼식 대화로 일관된 왕과 조정대신의 대화방식 때문에 이순신이 그토록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격 급한 부자들 - 왜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는 급한 성격이 많을까?
다구치 도모타카 지음, 김윤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이렇게 ‘급함’이 묻어난 표지가 있을까? 표지는 정렬적인 빨강이다. 거기다 표지를 장식하는 동물 주위에 있는 말들이라니! “답답한거못참음”, “쫄지않음”, “호기심많음”, “결정이빠름”, “욕망에솔직함” 등 띄어쓰기까지 무시한 표현들은 정말로 성격이 급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글씨체에 크기의 강약을 주어 띄어쓰기를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제목과 참 잘 어울리는 표지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덜 쓰고, 저축하는 길이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터라 이런 책을 읽지 않았는데, 요 책은 디자인에 끌려 목차도 살피고, 저자가 도대체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서 읽기로 결정한 책이다.

 

그럼 나도 부자가 되고싶은 걸까?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부자인 것이 좋다. 다만 유명한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 번쯤 편안한 여행을 즐기고 싶고, 오페라나 뮤지컬 하나쯤은 잘 보이는 자리에서 보고 싶고, 원하는 만큼 책을 사서 소파에 편안히 앉아 느긋하게 읽고 싶다. 가끔 가족들과 맛집 투어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나는 부자일까?

 

책에는 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권고사항들이 나와 있다. 그 중 두 가지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공감이 된다는 건 아마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면을 저자가 지적해줬기 때문인 듯하다.

 

우선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직관이나 이성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구분한다. 관계를 위하여 불편한 자리를 굳이 찾아다니지 않으며, 가더라도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힘은 새로운 시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데서 시작한다는 주장에 공감이 됐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삶의 군더더기는 타인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할 때 생기기 마련인 것 같았다. 거절하는 힘은 부자들에게 자연스러운 특징일 것이다. 심지어 엄청난 쪽수를 자랑하는 도서조차도 과감히 필요한 부분만을 읽어낸다.

둘째, 부자들은 자신에게 솔직하다 보니 삶에 더 적극적이라는 특징을 보였다. 호기심이 충만하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 찾는 세미나를 찾지 않고, 지식을 어떻게 나에게 활용할까 생각한다. 당연히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부자들의 그런 적극성은 더 많은 기회들을 포착하는 힘을 얻는 동력이 된다. 때로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 있더라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신과 연관지어 생각하려고 한다. 하던 일에서 손을 떼는 것조차 과감하다. 손해를 무릅쓰는 것도 적극적이다.

 

책을 읽다 보니 저자는 비즈니스에서 부자가 되는 길을 설명하고자 한 것 같다. 돈과 관련된 일을 한 이력과, 파산의 경험이 저자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더불어 부자가 되는 이런 류의 책이 왜 우리에게 다가왔을지 생각해 봤다. 김생민의 <영수증>이란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이 즈음에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만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다.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사람. 이 책의 효용가치를 여기에 두고 싶다. 얼마 전 방문한 일본 도쿄에서 느낀 것은 검소함이었다. 오래전 미국에 방문했을 때도 겉치레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났었다. 어느 지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영국에서 만난 회사원들은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하는 것이 일상이란 것도 있었다. 영조의 검소한 밥상은 그의 오랜 집권을 돕는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는 부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훈련할 때라고 과감히 주장해 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발상 - 스치는 생각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
이리스 되링.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리스 되링·베티나 미텔스트라스, 김현적 역, 『발상』, 을유문화사, 2018.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감정을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해 캐릭터로 만들고,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양한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때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기억보관소였다. 사라지는 기억과 저장되는 기억, 그리고 그것을 호출해서 새로운 행동이나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 그야말로 발상을 잘 해서인지 이 영화는 우수 작품으로 평가되어 여기저기서 상을 받았다. 물론 나도 여러 번 영화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감정이 어떻게 우리 안에 저장되고 외부와 교류하는가에 대한 반짝반짝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영화였다. 
  
영화 뿐이겠는가. 어떤 일이든지 발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즐겁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우주 실험에서 발견하고 그 기록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도서에 남겼다. 64억 킬로미터 밖에서 본 지구는 겨우 점 하나였으니 거기에 있는 인간은 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칼 세이건의 책을 보면서 좀 더 겸손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그 위대한 학자의 관점이 나의 인생을 조금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은 다른 위치에서 다른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보려고 시도했다. 『발상』이라는 책은 그런 선조들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인 이리스 되링의 약력을 살펴보니 광고 및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꾸준히 워크숍을 이어가고 있다. 약력을 참고해 봤을 때, 인문적 소개 부분과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된 책의 짜임에 중 어느 부분을 담당했는지 짐작이 간다. 다른 저자인 베티나 미텔슈트라스는 실무 워크숍 진행자보다는 저널리스트 및 연구자로 소개되고 있다. 책은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필자들이 과거 연구물을 언급할 때는 구체적인 참고 서지사항이 있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을 더 참고해야 할지 알수 있으니 이 또한 장점이다. 단지, 미주보다는 각주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경감을 올리는 방법은 그다지 새롭지는 않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들었다는 면에서 필자들의 노고가 엿보인다. 새로울 것은 없으나 굳이 언급하자면 영감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오감을 열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자 노력할 것. 우리의 영감은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혹은 내면화 과정의 어떤 포착 순간 등의 과정이므로 영감을 얻는 훈련을 할 것, 외부 세계에 대하여 항상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받아들일 것 등을 요구한다. 영감을 얻기 위한 생활과 사고의 여백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익숙한 주장이다. 꼭 효율적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늘 들어왔던 것이지만 그것을 굳이 멍때리기나 예술 감상, 샤워하는 시간, 냉장고 청소하는 시간 등으로 구체화 해 주는 등의 방법적인 면은 참고할 만 하다. 책은 고대의 유명 작품과 그 창작 배경에 있는 뮤즈들을 언급하면서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뮤즈를 찾는 방법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관심사에 애정을 다 해 온 맘과 귀를 기울인다면 결국 원하는 발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이 발달하게 된 배경을 생각해도, 스마트폰의 발전만 봐도 발상은 우리 세계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세계는 더 빠르게, 더 많은 아이디어들로 번뜩이고 있다. 『발상』이라는 책은 그러니 어서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을 실험해 보라고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문학적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연습해 볼 수 있는 사례소개가 같이 나와 있는 것이 트랜드인가 싶기도 하다. 시중에 나온 아이디어 도출과 관련된 서적들이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나온 『아이디어 대전』이나 『아이디어 토피카』에 비해서는 설명이 좀 복잡하다는 생각도 든다. 간혹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직독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역자가 의미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인 것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알트슐러가 주창한 트리즈나 토니 부잔의 마인드맵, 에드워드 드 보노의 『여섯 색깔의 모자』, 로버트 루투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도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후반부이다. 어떤 이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지속적인 작업 덕에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창의력을 작동시키는 “영감이라는 개념 사용을 대중화하는 것”(12쪽)을 시도하고자 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저러한 시도를 권했으며, 그것이 어떤 특정한 능력이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자신과 자신의 사명을 사랑한 사람들이 얻어내는 것임을 밝혔다. 또, 영감은 신이 주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신의 해석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말한 대로 영감의 대중화가 가능할까? 그것은 요즘 미디어의 발전을 보면 짐작이 된다. 요즘 미디어를 보면 수 많은 유튜버들이 생겨나고 있다. 수용자가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과거 단방향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는 체제의 유튜브는 시간과 공간과 세대를 뛰어넘는다. 미디어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꿨을 뿐 아니라 그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고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발상”이 인간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발상』이라는 책은 새로운 내용 탐색으로서의 도서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내가 어디쯤 있는지 반추해 보는 시간을 주는 도서였다. 

더하여... 번역서는 읽기가 참 힘들다.  원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틀림없이 한국말이긴 한데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하지만 여기서 외부적인 것을 인지해 그것을 우리 안에 어떤 인상과 감명으로 각인시키느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45쪽) 같은 문장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