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목련구모권선희문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38
정지진 지음, 이정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지진, 이정재 역, 『목련구모권선희문』 상, 을유문화사, 2025. 


#목련구모권선희문 #정지진 #을유문화사 #석가_수제자_목련_설화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지옥 여정


석가의 수제자 목련이 지옥에 빠진 모친을 구해 내는 인도의 이야기가 중국으로 건너와 여러 텍스트로 변모했는데 작가 정지진이 여기에 자신이 읽은 독서를 반영하여 지은 희곡이 <목련구모권선희문>이다. 출판사는 서양에 단테의 <신곡>이 있다면 동양에는 <목련구모권선희문>이 있다고 소개할 정도이니 그 작품의 스케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읽은 작품이다.  번역이 상/하권으로 출간됐는데 상권에는 (상과 중)이 있고 하권에는 (하)를 수록한 모양이다. 이번에 읽은 권은 상권이다. 


1.

 각주와 함께 천천히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만한 글이다. 시문이나 설화 속 캐릭터, 종교적 모티브, 역사 사료 등 다양한 설명이 친절하다. 저자인 정지진의 독서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해 봄 직한 각주들이다.  중국 건국신화부터 당대의 시까지 인용한 문장의 폭이 넓다. 


2.

옛날 이야기라 그런지 악한 사람은 확실하게 벼락을 맞아 죽고, 선한 사람에겐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시원시원하다. 물론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인도의 설화가 중국에 유입되어 이런저런 모양으로 이야기가 확장된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제법 비중있는 작품임을 책날개에서 설명하고 있다. 


3.

어느 한 종교를 알리기보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 자체에 관심을 갖고 어느 쪽이든 존중하는 분위기가 오늘 날 서로 배척하는 종교적 분위기와 비교된다. 도사와 비구니와 스님이 모두 필요에 의해 서로 의논하고 힘을 합치는 것도 보기 좋다. 


3.

나부를 곁에서 돕는 익리와의 의리가 멋지다. 도둑 무리에 붙잡혀 제사상에 나부를 올리려 하자 자신을 대신 올리라고 하며 고향 노모가 있으니 풀어주라 한다. 나부도 익리를 하인인데도 의형이라 한다. 


4. 

유씨 부인을 일방적으로 나쁜 엄마로 묘사한 감이 있다. 엄마가 그렇게 변한 이유도 있을텐데 부상이나 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슬쩍 넘어간 면은 아쉬웠다. 하지만 1500년대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해해 보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나부의 모험을 그리려고 했는데 상권에서는 아직 나부의 출발이 더디다. 


5.

옛이야기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제법 무게감 있는 희곡임에도 재미있다. 판타지도 있지만 사람의 이야기라 그런 모양이다. 


6.

부상이라는 인물이 좋은 일을 하는데 아낌이 없어서 그런지 돈과 관련한 경구들이 많이 보인다. 블로그에 인용문을 몇개 적어두었다.


대략의 줄거리


상권

  부상이라는 사람은 평소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지켜야 할 법도를 잘 지켜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상은 죽자마다 천상으로 불려간다. 부상이 죽고 아내 유씨는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고기도 먹고, 취하기도 하며 법도를 지키지 않아도 잘 사는 길이 있다는 동생 유가의 말을 듣고 남편의 유고마저 파해버린다. 평소 부상의 도움을 받았던 도사와 스님이 와서 유씨에게 조언을 하지만 이들을 내쫓는다. 한편으로 부상의 아들 아들 나부가 3년동안 장사를 위해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를 도운 관세음보살의 이야기도 한 축을 담당한다. 


중권

중권에서는 조금 더 판타지 다운 캐릭터가 보인다. 상권에서 봤던  관음이 화염산을 지나갈 수 있게 돕는 철선공주와 한빙지를 지나는걸 돕는 운교도와 서천에 빨리 도착하게 해주는 저백개를 부른다. 유씨 부인이 아들 나부에게 자신이 고기를 먹었다는 것을 들킬까봐 땅에 뼈를 몰래 묻게 하는데 토지신이 이를 알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극락국의 활불 캐릭터도 대단하다. 43척의 캐릭터들은 본격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나복의 어미 유씨부인의 죄를 논하고 있다. 유씨의 죄가 무거워 염라는 직접 사자를 보낸다. 잡혀온 유씨의 죄를 묻는 성황의 모습이나 죽은 유씨가 저승사자와 함께 집에 들른 장면은 마치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 그런 나부를 관음이 도와 용녀를 통해 어머니를 구할 길을 알려준다. 나라에서 내려준 벼슬도 마다한 나부는 어머니를 찾아갈 것인지 하권에서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옛날에 공자께서 하은주 삼대의 성인들을 따르고자 뜻하였으나 제왕의 지위를 얻어 그 정교를 행하지 못하시니 이에 노나라 역사를 기준으로 삼아 <춘추>를 지어 선을 높이고 악을 낮추셨다. <서문 중 일부> - P11

(소귀)한탄하노니, 세상 사람들이 간교하여, 사람 사이에 예절만 많아졌다네.

(판관)처음에 만나면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얼굴을 돌리면 남들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소귀)스스로는 덕을 쌓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공염불한다고 비웃지. - P84

바라는 바가 있어서 선을 행하면 비록 선하다 해도 반드시 거칠게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그 도를 밝힐 뿐, 그 공덕이 어떠할지를 셈하지 않는다. - P96

문을 닫고 집 안에 앉아 있어도 화는 하늘에서 내려온다네. - P120

거간꾼 ‘탐貪‘자와 ‘빈貧‘자는 모양이 별 차이가 없지.

상인 당신의 ‘아牙‘자를 돌려 놓으면 ‘무无‘자가 되지.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학자의 일이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일이라면 그 일을 탁월하면서도 맛깔나게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유홍준이다. 유홍준이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국내 12, 일본 5, 중국 3편에 이르며 무려 500만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박물관 순례기를 두 권에 걸쳐 출간했다. 유홍준이 새로이 출간한 책은 그의 인생답사 결과물이다.


유홍준은 자신의 글을 잡문으로 표현한다. 이는 옛 선인들의 문집을 읽을 때 정통적인 글쓰기라 말하는 저술보다 잡저(雜著)에 인생이 녹아있는데 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미에서 쓴 말이다. 도서는 유홍준이 28년동안 써 온 글을 선별하여 인생만사, 문화의 창, 답사 여적, 예술가와 함께, 스승과 벗 등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눠 수록했다. 후반부에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수록된 글은 한결같이 전통과 문화 혹은 사람, 인문적 정신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난다. 담배 이름 하나에서도 추억을 소환하며 좋아하는 바둑으로 한미 FTA를 해석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발굴해 낸 인사동 고서점 주인 이겸로 선생과의 일화도 눈물겹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장례식에 문화재청장이면서 개인자격으로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이 실감나게 전달되기도 한다. 북한 백두산을 방문하며 사뭇 진지해진 소감을 말하면서도 숙소에서 벌어진 재미난 이야기로 무게를 덜어내는 지혜가 담긴 책이다. 예술적 영감, 전통 같은 문화적 사유 위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 깊게 묻어나는 잡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가능할까?

연구의 시작은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 같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우주선에서 오는 정보를 받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동물에게 인식표를 붙여놓고 정보를 받는다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이 책은 동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며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시 희망을 찾으려는 이야기이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연구자들이 개발한 것은 이카루스스 시스템이다. 인류세를 극복할 만한 정보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동물들에게 인식표를 붙여 전 지구적인 정보를 얻어내는 것. 이를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은데 동물 선정부터 인식표 만들기와 붙이기, 인식표로부터 얻는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도구의 개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정보들의 처리 방법 등 엄청난 물적/인적 자원이 투입되는 연구이다. 이카루스 시스템의 핵심 정보는 우주에서 처리되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에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동물에 부착할 인식표는 작지만 더 많은 정보를 송출해야 하면서도 동물의 생장에 어떤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 정보를 받기 위해 어떤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지도 중대한 고민이다. 문제는 동물들의 행동반경이 인간의 예측을 크게 벗어났을 때 생기기도 했다. 한정된 공간이라 생각한 섬에서 발견한 동물의 행동반경은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어 대륙을 오가고 있었다. 동물의 속도를 따라잡다가 생긴 이런저런 에피소드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다.


통신장치의 발달은 동물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물 정보를 받기위해 1인식표 1 휴대폰이었던 시절 해외로부터 오는 정보를 받기 위해 비용이 많이 지불되기도 했다.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인식표가 적도 부근의 동물에게는 좋지만 극지방에 숨은 동물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전 지구적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주에 정보세터를 만든 것 같은데 ....

시지프스 시스템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시지스프 시스템은 독일과 러시아가 러시아 우주센터에 설치했으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더 이상 연구를 계속 할 수 없게 되었다. 실패의 사유가 너무 인간적이라 어이가 없다.


그럼에도 2024년 겨울 이카루스 큐브샛이 우주를 향해 갈 모양이다.

동물들의 정보를 얻어 인류세를 극복하겠다는 과학자들의 상상이 과연 인류와 동물에게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알 수 없다. 연구의 시작은 발칙한 궁금증 때문이었고 과정은 좋은 의도였으나 결과물을 활용하는 인간의 의도가 정의로운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의 의도와 관계없는 시지프스 시스템을 차지한 러시아의 다음 행보도 염려가 된다.


이카루스 시스템은 아르고스 시스템(1970년대 프랑스와 미국이 전 세계 바다에 떠 있는 기상관측 부표의 정보를 우주에서 판독하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 , 아날로그 시스템.) 처럼 단순히 바다의 기상정보를 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물들은 생각하고 때로 인간과 교류를 하려는 시도(황새 한지의 사례)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과학기술 에 관한 책이지만 동물 연구자들의 연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물인터넷

#마르틴_비켈스키


오늘따라 해변의 바다사자들이 소란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 책 속의 한 줄을 통한 백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년의기억

#베스트셀러

#명언

#백년의기억베스트셀러속명언800

* 출판사의 도서를 지원받아 서평을 작성합니다.

책을 읽는 목적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좋은 삶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모여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가끔은 읽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연구자로서 독서는 낱낱히 파헤쳐 분석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독서가 시작되지만 그렇지 않는 독자의 자리에서는 뭔가 즐거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그럴 때 찾아 있는 책들 중 하나가 김태현의 책이다.

저자의 출간도서들을 살펴보면 참 부지런한 수집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네마 명언 1000,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 철학자들의 명언 500 이런 것들을 열심히 모아 책으로 엮어내니 말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한 <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도 그 연장선상의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과 약가느이 여유를 허락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다.... 일이 원래 세운 계획에 꼭 들어맞지 않더라도 인생은 계속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다음의 유익한 문장을 본복해서 떠올리자. "인생은 비상사태가 아니다."

리처드 칼슨, <사소한 것에 관한 큰 책>

<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24쪽.



명언을 모아둔 책들은 독서에도 느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맥의 전후 맥락을 알고 싶다면 해당 도서를 찾아 읽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후 맥락없이 읽는 독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더 명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건지 찾아봐야 한다.


<사소한 것에 관한 큰 책>을 찾아보면

리처드 칼슨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하는지 설명한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을 제시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김태현이 왜 "인생은 비상사태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중요하게 인용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인용된 책은 자기계발을 위해 필요한 명언이 많다. 멋진 말들의 향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유물론적 지식에 입각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막힌 배관 파이프를 뚫어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정현채 7.

 

이나 윌리엄, 쿠웬호벤(William Kouwenhoven)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심장을 압박하는 인공호흡법을 생각해 낸 사람이다.

 

버나드 라운(Bernard Lown M.D.)이라는 이름은 낯선 이름이지만 심장 제세동기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이는 많을 것이다. 버나드 라운 박사는 심장 제세동기를 만든 의사이자, 핵전쟁반지국제의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버나드 라운 박사는 개발 도상국의 의사들이 최신 의술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단체의 의장을 역임했다. 버나드 박사는 1985년 노벨평화상 외에도 명예로운 다수의 상을 받았다. 이상은 버나드 라운 박사를 소개한 책 날개의 내용이다. 도서를 읽어보니 저자의 화려한 수상 내역보다 그가 치유자로서 얼마나 위대한 길을 걸었는지에 대한 감동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현대 의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데 비해 의사의 사명감이나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치유보다는 의료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혹은 더 큰 이득을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해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치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심리상태와 병증과의 관계를 기술한 부분이었다. 불만으로 가득한 주변환경이나 가족관계가 병을 만들어 오는데 심지어 뮌하우젠 증후군처럼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큰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실제 그러한 증상을 드러내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사가 진정한 치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병에 관한 증상 너머 한 인간과 그의 생애에 깊게 관심을 가져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 과학적인 진단 외에도 환자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얼마전 피부염 증상이 있어서 몇달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의사가 피부염의 원인이 스트레스성이라고 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거의 6개월을 염증으로 고생하고 약을 먹어도 그때 증상만 괜찮고 약을 끊으면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 이상 뭘 더 내려놔야 하는가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말이다. 피부염 증상은 약으로 좋아지고 있지만 이번엔 소화계통까지 문제가 생겨 고생을 하고 있다. 책대로라면 내과를 간다고 해서 내 증상이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근본적인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야 진짜 치유의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치유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하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살펴야 한다. 고통과 두려움에 싸인 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의사는 개인적 특수성 속으로 편입해 들어갈 수 있다” (15)

 

버나드 박사는 치유에 이르는 길도 이지만, 사람의 심리상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이라고 지적한다. 의사의 한 마디는 환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단어가 되기도 하다는 것을 몇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준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면 불필요한 검사 없이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쉽다고 말한다. 의사가 긍정으로 가득한 격려를 환자에게 해 줬을 때 수명이 얼마 안남은 환자가 기적처럼 생존하는 사례도 여럿 있다. 반면에 가벼운 증상의 환자가 의사의 말에 급격하게 병색이 안좋아서 사망에 이르는 사례도 있었다. 왜 그럴까. 그건 의사라는 지위는 생명에 대한 권위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의사뿐이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는 청와대 청원이 마치 유행처럼 된 듯하다. 심지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조차 청와대에 민원을 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을 위해 원칙을 지키기보다 억울한 사례로 얼룩진 경우가 많이 알려져서였을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차별을 거쳐 왔던가. 이제 겨우 원칙이 통하는 사회로 가려고 하는 과도기에 있는 우리 사회. 그래서 병원에 가거나 송사가 있을 때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정보와 힘이 없는 위치에서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 아니던가.

 

의학적 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환자가 안고 있는 임상적 문제들을 신체 기관별로가 아니라 환자라는 한 인간 전체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368.)


최근 다녀온 병원에서 의사를 만난 시간은 2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만날 의사들이 나와 좀 더 시간을 보내주실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