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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지 않는 대화 -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비폭력대화의 기술
마셜 B. 로젠버그 & 가브리엘레 자일스 지음, 강영옥 옮김 / 파우제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상처 주지 않는 대화’의 저자 로젠버그는 “어렸을 때부터 인종차별에 따른 폭력(심지어 살인에 이르는)과 갈등 문제를 겪고” 자랐다고 한다. 로젠버그는 그런 배경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관계를 망가뜨리게 만드는지 질문하고 그것을 개선해 보고자 노력한 사람인 듯하다. 로젠버그가 훌륭한 이유는 자신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깊이 탐구해서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책에서 행복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감정을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개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발견할 때, 그리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때 드디어 관계의 개선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갈등을 일으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태도는 분노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상대방에게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견을 자칫 잘못 해석하면 화는 상대방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문제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당히 자신의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표현했다면 당장은 껄끄러울 수 있지만 나의 불편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비폭력 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욕구를 표현하라고 말한다. 욕구를 표현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구를 해결하는 과정에 실패가 있었다고 해서 자기비하는 금물이라고 말한다. 아마 이것은 욕구를 해소하고자 이러저런 노력을 했을 때 후회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단,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나 당연히 해소과정도 바람직(?)한 범위 안에서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대화를 기린과 자칼의 대화로 비유한다. 기린은 온유한 초식동물이지만 자신을 해치려 드는 강력한 동물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린의 덕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칼식 대화는 어떤 순간에도 상대방을 물어뜯는 방식의 대화이다. 기린식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한다. 그렇게 대화하다보면 타인에게 자신의 욕구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수직 관계에서 자칼식 대화는 특히 상처가 많다. 왜냐하면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물어뜯거나 자기비하를 하는 방식의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집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나는 딸이 있다. 나는 딸에게 내 욕구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딸의 인생에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딸이 원하지 않는 욕구를 내가 실천하게 해서도 안되는 것. 이런 것이 비폭력대화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폭력 대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것이 문제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이 책은 그것의 근본적 원인을 사회 구조적인 데서 찾고 있다. 사실 사춘기를 이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딸과 이 책을 같이 읽고 싶어서 용돈을 줘 가며 반응을 살폈다. 저자의 배경을 모른 채로 전반부를 읽은 딸의 독후감은 혹독한 편이었다. 딸도 동의했다. 내용에 틀림은 없다는 걸. 그런데 문제는 폭력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봐야 할 책을 왜 언어폭력을 당하는 입장에게 읽히느냐는 아픈 항의를 해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늘 딸의 행동을 판단하는 입장이고, 서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할 학교는 입시경쟁에서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공격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딸을 바라보는 나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미안함도 이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된 점이다. 딸은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내게 보내왔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여도 뒤를 받쳐주는 근거와 사례가 납득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어렵다. 이번에 얘기해볼 책인 이점을 간과한 듯 싶다. 이 책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나는 저자들이 괴변론자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저자는 분노를 완벽하게 표현하려면 분노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정류장에서 담배냄새를 맡고 화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금연구역인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나의 분노는 냄새를 맡은 나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인가?
틀림없이 딸은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보다 왜 잘못 이해하는 일이 생겼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딸의 안에 생겨난 분노라고 말하고 싶다. 늘 평가를 받는 세계에 살던 딸 주변엔 피의 제물을 원하는 자칼이 늘 도사렸다고 볼 수 있다. 그게 바로 사회 구조이다. 느리게가 허용되지 않는 것. 수용보다는 평가가 더 난무한 사회, 지독한 서열 전쟁에서 배려라는 말은 헌신짝처럼 도서관 한구석이나 차지하는 사회 그것이 딸의 마음 안에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가 좀 더 다른 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엄마임을 반성하면서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은 말한다. 세상에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정직하게 내보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은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추상적이지만 후반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딸은 책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처음에 가졌던 비판적인 태도를 조금은 누그러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로젠버그의 세미나와 경험에서 나왔으며 그의 가정사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진 후반부의 내용 때문이었다. 딸의 분노를 누그러뜨린 것은 저자의 진정성이 아니었을까.
비폭력대화는 자신과 타인을 진정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걸까. 아직 이 책을 탐독하지 않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으로 타인을 판단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대화태도를 점검해 보기를 권한다. 타인의 대화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차라리 덮어버리기를 권한다. 오래전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가슴에 먹먹해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로젠버그의 책에 의하면 자칼식 대화로 일관된 왕과 조정대신의 대화방식 때문에 이순신이 그토록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