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나름 책을 읽고 끄적거리기도 한다.

개인 일기장이 아닌만큼 다른 이들이 와서 내 글을 읽기 마련인데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서평가라는 사람의 서평 쓰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결론은 내가 쓰는 글은 서평이 아니다.

서평 보다는 독후감이라고 하는게 정확하겠다.

저자는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알려줬는데,

독후감이 정서적, 내향적, 독백, 일방적이라면, 서평은 논리적, 외향적, 대화, 관계적이다.

또한 독후감이 독자에게 치유의 경험을 제공한다면, 서평은 독자에게 통찰의 경험을 선사한다고 한다.

내 글은 독후감의 특징조차 다 담지 못하니 독후감도 반쪽짜리 독후감이다.

서평을 잘 쓰고 싶은 의지가 땅바닥으로 꺼지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어려운 거였다니...


그렇다면 서평은 어떻게 쓰는것일까?

우선 독서의 목적과 독서의 태도를 염두해두라고 한다.

내 독서의 목적은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있나? 하나의 쾌락이자 습관인데...

서평의 핵심요소는 요약과 평가라고 한다.

요약없는 서평은 맹목적이고 평가없는 서평은 공허하다고 하는데 난 늘 요약이 어렵다.

늘 빨간책방의 이동진씨를 보며 늘 신기했다. 어쩜 저렇게 맛깔나게 스포도 없이 요약을 잘 할까.

서평의 방법으로 '일단 생각하기, 지금 바로 글쓰기,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큰 고민 하지 않기, 문단의 구성을 조절하기, 말 고르기, 인용의 방식, 마무리 짓기'를 제시한다.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치기'.

서평 쓰는 법을 알았으니 이제 좋은 서평을 읽고 참고해서 쓰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내 생각과 느낌을 남기고 싶어 시작한 블로그니 난 독후감만 쓸 것 같다.

언젠가 서평을 쓰는 날이 온다면 좋은 서평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좋은 독후감을 쓰는 걸 목표로 하고 싶다.

노래를 잘 못 불러도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돌처럼 노래, 춤, 외모가 안되어도 즐길 수 있는거니까...

가수 뺨치게 못 부르더라도 회식 때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나만의 18번을 만드는 마음으로 독후감을 써 볼란다.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가운데 그것을 버텨 내는 텍스트, 그러니까 읽고 나도 계속 뭔가 읽을거리가 남은 텍스트가 바로 무한한 텍스트이고 텍스트-무한입니다.

좋은 책을 잘 읽으면,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서평은 이러한 독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평을 쓸 때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평 쓰기의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인들이 꼭 읽어보라고 했다.

책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처음 알라딘 추천마법사에 떴을 때도 그닥 땡기지 않아서 안 샀는데...

그냥 평범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물론 평범한 이야기다. 그래서 서글프다.

82년생 김지영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산 나도 서글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오전반, 오후반으로 수업을 들었고, 중고등학교에선 지금 생각하면 엄격한 기준의 교복도 입었다.

또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바바리맨들은 어찌나 자주 보았는지...

대학교에 가서는 말끝마다 '여자가~'라는 동아리 동기들도 있었고,

취업을 하니 '여직원이 술을 따라줘야 맛있다' 며 술잔 채우기를 강요(?)하던 부장님도 있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니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 애 낳고 사는 게 행복이라며 나의 행복을 걱정해주는 엄마 지인들이 있었고

결혼하고 1년이 지나니 '결혼하고도 1년이나 애가 안 생기면 문제 있는거라며 병원에 가보라' 는 시어머니도 계셨다.

지금은 6살 아이를 키우며 혹시나 맘충이 소리를 들을까봐 너무나 친절한 사람, 예의 바른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산다.

나만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니라 대한민국 수많은 평범한 김지영이들의 삶이라 생각하니 슬프고 짜증이 확 밀려온다.

그래도 나는 '여자가 드세서~'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이라

나를 괴롭히는 짝꿍에게 '한번만 더 괴롭히면 너가 나 좋아한다고 소문낼거야' 라며 협박도 하고

바바리맨을 놀리기도 하고, '여자가~'라는 동기와 싸우기도 하고

술강요 부장님에겐 눈치 없는 척 내빼기 일쑤였고

엄마 지인들을 걱정을 줄여드리고자 결혼한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던 때에 결혼도 했고

나의 자궁을 걱정하던 시어머니껜

"그래요? 전 산전검사했을 때 정상이라고 하던데... 오빠가 문제가 있나봐요. 병원 예약해둬야겠어요."라는 말로

어머니의 공격을 원천 봉쇄했다.

임신해서 너무 힘들어서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임신이 벼슬이냐?'라고 욕먹었을 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내 이미지관리상(?) 적지는 않겠다.


이런 나이기에 왜 왜 김지영은 자신의 입을 가지고도 침묵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 왜 다른 사람의 입으로밖에 말을 못해. 이건 내 일이잖아.

내가 힘들다는 걸, 속상하다는 걸 알아봐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잖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 싸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렁이도 꿈틀하는데 왜 가만히 있냐고...

가해자들은 모르니까 그러니까 얘기해줘야지. 좋은  말로 안되면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아! 그리고 요즘 왜 맨날 네이버엔 '맘충이 발견 사연'을 뿜에 올리는지...

맘충이가 아니라 무개념이 엄마가 된 거라고~!!!!!

왜 엄마라는 존재가 벌레 취급을 당해야하는건데? 생각할수록 화나네.

개저씨(사실 이런 말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연은 그냥 진상이나 무개념이라고 적으면서...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선택한 김지영씨에겐 화를 못 내겠다.

사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선택하도록 내몰린거니까.

김지영도 나도 남들처럼 회사에서 커리어 쌓으며 일하고 싶은데 나 대신 아이를 전적으로 봐줄 사람이 없더라.

남편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데 늦게 퇴근했다고 죄책감 가지면서 아이를 데릴러가야하는게 싫었다.

남편도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가 안쓰러웠겠지만 죄책감은 가지지 않았으니까.

퇴근해서 발 동동 구르며 이것저것 만들어서 허겁지겁 먹이고, 살림이 엉망이라 미안해하지는 않았으니까.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지만, 다시 일을 할 생각이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또 달라질지도...

내 직업의 선택지에는 '집에서 가까울 것,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는 것' 등의 고려사항이 있는데

남편의 직업에는 왜 그런 사항들은 없는지...


이런 경험들도, 고민들도 딱 우리 나이대까지만 하는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어머니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우리들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왜 그러고 살았대?'라며 이해 못했으면 좋겠다.

욕심을 내보자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2030년에는 2040년에는 달라진 세상에서 달라진 모습을 살길 바란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거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p. 32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아이의 괴롭힘 때문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당해 온 것도 억울한데,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가 되기까지 했다. 김지영 씨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너무너무 싫어요." p.p. 42~42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p.123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p.132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 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p.135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p.144

사실 김은실 팀장도 두렵고 지쳐 있었다. 김은실 팀장도, 강혜수 씨도, 함께 고민하고 있는 피해자들 모두 일이 빨리 마무리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금요일, 선물같은 묵직한 택배를 받았다.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는 나는 '언제 다 읽나?'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더랬다.

막상 책장을 펼치자 나의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조앤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표지처럼 일하다 말고 책을 보는 여자는 바로 내 모습과 같았다.

(물론 나는 저렇게 차려 입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ㅋ)

<어린 가정부 조앤>은 일기 형식이라 더 흥미진진했다.

타인의 일기를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누가 쓰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초등학교 때 남동생의 일기는 훔쳐보다가 그냥 포기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 책의 작가인 로라 에이미 슐리츠가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는데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소설까지 쓰게 되었을까?

내 일기엔 흑역사만 가득한데... 나중에 손녀(?)가 보기 전에 처분을 해야할 듯 하다.

처음엔 조앤의 시선을 따라서 읽었지만 다 읽고 한번 더 훑어보았을 땐 이 일기를 훔쳐보는 자, 미미를 떠올리며 읽었다.

일기의 등장인물들을 아는 미미는 몰래 키득거리며 일기를 읽었을테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열네살 조앤은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아빠는 농장 일을 도우라며 학교를 그만두게 한다.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며 아빠에게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가 챈들러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책이 불타고 만다.

결국 조앤은 집을 나온다. 운 좋게도 솔로몬 로젠바흐를 만나 그 집에 가정부로 취직한다.

특유의 씩씩함과 성실함, 그리고 엉뚱함으로 종종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로젠바흐를 좋아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조앤의 일기장을 훔쳐봐서 나이와 이름을 속인 것도 들키게 되는데... 

 

아빠가 조앤을 함부로 대할 때마다, 책을 태웠을 때 분개하면서 읽고

조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부지런해야겠다고 반성하고

데이비드에게 반하는 모습을 보며 자우림의 <애인발견>이 생각났다.

조앤이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인 <아이반호>를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책장을 계속 넘기고 싶은 책을 만났다.

뉴베리상, 스콧 오델상, 전미 유대인 도서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이유를 알 듯하다.

 

책 띠지에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참 와닿았다.

빨간머리 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앤은 원래 초록 지붕에 입양될 아이가 아니었다.

농장일을 할 남자아이가 필요했던 마릴라는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동의를 구하며 매튜에게 "저 애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가고 묻자,

매튜는 "우리가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라고 대답한다.

앤이 각종 사고를 치는 것도 기억나지만, 빨간머리 앤을 떠올릴 때 가장 따듯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앤에게는 마릴라와 매튜, 다이애나가 있었다면 조앤에겐 로젠바흐가 사람들 그리고 말카가 있었다.

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며 자란 것처럼 조앤의 성장도 보고싶다.

"제가 일하기 때문에 제 몫의 돈을 갖고 싶은 거예요."
"네가 일한다고! 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아빠가 오빠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남자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또는 추위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데, 너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잖아. 네 손 좀 봐. 그게 일하는 사람 손이야? 우리가 얼마나 고되게 일하는지 알기나 해?"
아빠의 말이 너무나 부당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접시가 덜거덕 거릴 만큼 세게 식탁을 내리쳤다. 세탁이며 청소며 집안일로 내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낱낱이 말하고 싶었다. 그걸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물 길어오기, 재 치우기, 석탄 나르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요리하기, 옷 수선하기, 식사 준비하기... 하지만 나는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다.
"내 손은 우라지게 거칠어요!" p.65

남을 속이기 시작하는 순간
얼기설기 얽힌 거짓의 그물을 짜게 된다. p.151

누구나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토마셰프스키도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토마셰프스키가 가르랑거리고 발톱을 구부리는 모습을 보면 안다. 가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햇빛과 물처럼 친절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p.195

"책 읽는 거 좋아하니?"
"네."
"싸구려 소설이 아니라 <아이반호> 같은 고전을 좋아해?"
"네."
내가 깊이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말고 아무도 없는데도 로젠바흐 씨는 누가 더 있는 것처럼 말했다.
"책을 읽어 교육을 잘 받은 숙녀가 되고 싶다. 그래서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책을 읽다가 집에 불을 냈다." p.205

나는 하녀의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빠는 인색하고 무식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땅을 가졌고 주택 융자를 빼면 빚도 없다. 아빠는 자신의 하인이라면 하인이지 타인의 하인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이다. 미미가 싫다고 거절하면 모를까 내가 왜 그 애와 함께 외출하면 안 된단 말인가? p.230

참으로 묘했다. 기도서를 두고 데이비드와 실랑이를 벌이던 순간 액자처럼 담긴 그림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때 부활절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해가 뜨는 모습을 보는 것이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열심히 본 탓인지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눈 속에 단단히 박혀버렸다. 그 후 한동안 태양의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이 멀까 봐 걱정됐다. 너무 무서워서 엄마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정말로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았어야 했는데 몰랐다.

아무튼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데이비드와 함께한 순간이 그랬다. 그렇다고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거나 온 세상이 정지 상태였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 또한 멈추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원을 그리며 가볍게 뛰어다녔고, 나는 그를 쫓아다녔다. p.393

"삶이 네게 좋은 걸 주려고 하면 냉큼 받아. 알아듣겠니? 좋은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우도록 하고. 교육받은 여성. 배운 여성이 되는 거지. 넌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p5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는당] 7월 추천 도서 중 하나인 시누이.

추천 도서 중 한 권만 읽어도 미션 완료라서 <투명인간> 한권만 읽으려고 했는데

당원님들이 시누이가 좋다고 추천 글이 계속 올리는거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주문...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시 읽는 것 참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친구 노트 한 귀퉁이에 내가 좋아하는 시 적어주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더 이상 시집을 안 열어보고

더 이상 읽어보지 않고, 읽어도 가슴으로 읽어야 할 것을 눈으로만 훑어보고

그렇게 시와 멀어져만 갔다.

일년에 100권씩 책 읽는 게 목표라는 지인들 중 몇 몇은

권수가 모자라면 시집 읽어서 권수를 채운다고도 했다.

금방 읽으니까... 얇으니까...

난 또 그게 싫어서 시집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시누이는 학창시절 내 감수성을 다시금 일깨워줬다고나 할까.

중간 중간에 들어간 싱고님의 고운 일러스트와 시를 보고 있으니

마음 한켠이 따스히 데워지는 것 같다.

추운 겨울 이불을 감싸고 앉아 따스한 군고구마 먹던 느낌도 난다.

시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누군가의 감성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구나...

이런 시집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는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뒷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원시원한 말투와 목소리를 가진 이다혜 기자님의 책이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굳이 부제로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보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뉘앙스 때문일지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페미니스트=메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페미니즘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예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다.


얼마 전 잠든 예준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빈 자리 하나 없어서 힘들게 서 있는데 (21kg를 안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아라고 양보를 해주셨다.

그리고선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와 대화를 하셨다.

"저렇게 귀하게 키워서 장가보내면 며느리가 설거지나 시키지... 아까워서 어째..."

그 얘기를 듣고 살짝 발끈한 나는 애써 담담하게

"딸은 시집보내 설거지 하러 키우시나요? 딸도 아들도 둘 다 아까운데요."

라고 했지만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기집년들 공부 시키면 뭐해. 그렇게 공부 시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몇이나 되냐?"

며 같은 여자이면서 여성 비하를 마구잡이로 쏟아내셨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분들 세대엔 저런 생각은 당연하다고 세뇌받고 자랐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딸은 아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 집안을 일으킬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

학교도 얼마 못 다니고 산으로, 들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밭일을 했으리라.

나는 가방끈 짧아도 잘 살았다고 가방끈 긴 너네들과 비교해도 괜찮았다고 애써 변명하며 살았을 삶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엔 아주 당연했다.

여성의 삶은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아들의 어머니로만 존재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었다.


도깨비의 후유증으로 공유앓이를 했더랬다.

그래서 '커피프린스'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 보았던 커프와 지금의 커프는 달랐다.

아무렇지 않게 한결이에게 반하고 은찬이에게 감정이입했던 나는 어디가고

불편하게 커프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은찬이가 자기를 속였다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남탓하는 한결이도 불편하고

아니라도 말 한마디 못하고 니가 멋대로 오해한거잖아 소리도 못 지르는 은찬이도 불편하고

여자가 좀 져주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고분고분이라고 했던가? 암튼) 한성이도 불편하고

사랑과 일을 다 잡겠다고 욕심 부리다가 유산하는 벌을 받아야 한 유주도 불편했다.

10년동안 드라마 속의 그들은 바뀌지 않았는데 나의 생각은 그 동안 변했다.

10년 전 당연했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게 된거다.

어쩌면 지금 당연한 것들도 10년 후엔 또 나를 불편하게 할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늘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인생을 시작할 10대, 20대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여자로 태어나 살아갈 여성을 위해

남자로 태어나 여성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없어 오해(?)할 수도 있는 남성을 위해...

나는 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만 경험하고 산다.
그것은 너무 작고 좁은 세계다.
나는 내게 다른 삶의 경험을, 우리가 바꿔야 할 삶의 태도들 알려줄 더 많은 동료가 생기기를 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