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금요일, 선물같은 묵직한 택배를 받았다.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는 나는 '언제 다 읽나?'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더랬다.

막상 책장을 펼치자 나의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조앤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표지처럼 일하다 말고 책을 보는 여자는 바로 내 모습과 같았다.

(물론 나는 저렇게 차려 입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ㅋ)

<어린 가정부 조앤>은 일기 형식이라 더 흥미진진했다.

타인의 일기를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누가 쓰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초등학교 때 남동생의 일기는 훔쳐보다가 그냥 포기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 책의 작가인 로라 에이미 슐리츠가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는데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소설까지 쓰게 되었을까?

내 일기엔 흑역사만 가득한데... 나중에 손녀(?)가 보기 전에 처분을 해야할 듯 하다.

처음엔 조앤의 시선을 따라서 읽었지만 다 읽고 한번 더 훑어보았을 땐 이 일기를 훔쳐보는 자, 미미를 떠올리며 읽었다.

일기의 등장인물들을 아는 미미는 몰래 키득거리며 일기를 읽었을테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열네살 조앤은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아빠는 농장 일을 도우라며 학교를 그만두게 한다.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며 아빠에게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가 챈들러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책이 불타고 만다.

결국 조앤은 집을 나온다. 운 좋게도 솔로몬 로젠바흐를 만나 그 집에 가정부로 취직한다.

특유의 씩씩함과 성실함, 그리고 엉뚱함으로 종종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로젠바흐를 좋아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조앤의 일기장을 훔쳐봐서 나이와 이름을 속인 것도 들키게 되는데... 

 

아빠가 조앤을 함부로 대할 때마다, 책을 태웠을 때 분개하면서 읽고

조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부지런해야겠다고 반성하고

데이비드에게 반하는 모습을 보며 자우림의 <애인발견>이 생각났다.

조앤이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인 <아이반호>를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책장을 계속 넘기고 싶은 책을 만났다.

뉴베리상, 스콧 오델상, 전미 유대인 도서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이유를 알 듯하다.

 

책 띠지에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참 와닿았다.

빨간머리 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앤은 원래 초록 지붕에 입양될 아이가 아니었다.

농장일을 할 남자아이가 필요했던 마릴라는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동의를 구하며 매튜에게 "저 애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가고 묻자,

매튜는 "우리가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라고 대답한다.

앤이 각종 사고를 치는 것도 기억나지만, 빨간머리 앤을 떠올릴 때 가장 따듯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앤에게는 마릴라와 매튜, 다이애나가 있었다면 조앤에겐 로젠바흐가 사람들 그리고 말카가 있었다.

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며 자란 것처럼 조앤의 성장도 보고싶다.

"제가 일하기 때문에 제 몫의 돈을 갖고 싶은 거예요."
"네가 일한다고! 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아빠가 오빠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남자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또는 추위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데, 너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잖아. 네 손 좀 봐. 그게 일하는 사람 손이야? 우리가 얼마나 고되게 일하는지 알기나 해?"
아빠의 말이 너무나 부당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접시가 덜거덕 거릴 만큼 세게 식탁을 내리쳤다. 세탁이며 청소며 집안일로 내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낱낱이 말하고 싶었다. 그걸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물 길어오기, 재 치우기, 석탄 나르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요리하기, 옷 수선하기, 식사 준비하기... 하지만 나는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다.
"내 손은 우라지게 거칠어요!" p.65

남을 속이기 시작하는 순간
얼기설기 얽힌 거짓의 그물을 짜게 된다. p.151

누구나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토마셰프스키도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토마셰프스키가 가르랑거리고 발톱을 구부리는 모습을 보면 안다. 가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햇빛과 물처럼 친절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p.195

"책 읽는 거 좋아하니?"
"네."
"싸구려 소설이 아니라 <아이반호> 같은 고전을 좋아해?"
"네."
내가 깊이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말고 아무도 없는데도 로젠바흐 씨는 누가 더 있는 것처럼 말했다.
"책을 읽어 교육을 잘 받은 숙녀가 되고 싶다. 그래서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책을 읽다가 집에 불을 냈다." p.205

나는 하녀의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빠는 인색하고 무식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땅을 가졌고 주택 융자를 빼면 빚도 없다. 아빠는 자신의 하인이라면 하인이지 타인의 하인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이다. 미미가 싫다고 거절하면 모를까 내가 왜 그 애와 함께 외출하면 안 된단 말인가? p.230

참으로 묘했다. 기도서를 두고 데이비드와 실랑이를 벌이던 순간 액자처럼 담긴 그림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때 부활절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해가 뜨는 모습을 보는 것이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열심히 본 탓인지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태양이 눈 속에 단단히 박혀버렸다. 그 후 한동안 태양의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이 멀까 봐 걱정됐다. 너무 무서워서 엄마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정말로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았어야 했는데 몰랐다.

아무튼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데이비드와 함께한 순간이 그랬다. 그렇다고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거나 온 세상이 정지 상태였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 또한 멈추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원을 그리며 가볍게 뛰어다녔고, 나는 그를 쫓아다녔다. p.393

"삶이 네게 좋은 걸 주려고 하면 냉큼 받아. 알아듣겠니? 좋은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우도록 하고. 교육받은 여성. 배운 여성이 되는 거지. 넌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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