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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원시원한 말투와 목소리를 가진 이다혜 기자님의 책이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굳이 부제로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보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뉘앙스 때문일지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페미니스트=메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페미니즘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예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다.
얼마 전 잠든 예준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빈 자리 하나 없어서 힘들게 서 있는데 (21kg를 안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아라고 양보를 해주셨다.
그리고선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와 대화를 하셨다.
"저렇게 귀하게 키워서 장가보내면 며느리가 설거지나 시키지... 아까워서 어째..."
그 얘기를 듣고 살짝 발끈한 나는 애써 담담하게
"딸은 시집보내 설거지 하러 키우시나요? 딸도 아들도 둘 다 아까운데요."
라고 했지만 들은 척도 안 하시고
"기집년들 공부 시키면 뭐해. 그렇게 공부 시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몇이나 되냐?"
며 같은 여자이면서 여성 비하를 마구잡이로 쏟아내셨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분들 세대엔 저런 생각은 당연하다고 세뇌받고 자랐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딸은 아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 집안을 일으킬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
학교도 얼마 못 다니고 산으로, 들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밭일을 했으리라.
나는 가방끈 짧아도 잘 살았다고 가방끈 긴 너네들과 비교해도 괜찮았다고 애써 변명하며 살았을 삶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엔 아주 당연했다.
여성의 삶은 아버지의 딸로, 남편의 아내로, 아들의 어머니로만 존재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었다.
도깨비의 후유증으로 공유앓이를 했더랬다.
그래서 '커피프린스'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 보았던 커프와 지금의 커프는 달랐다.
아무렇지 않게 한결이에게 반하고 은찬이에게 감정이입했던 나는 어디가고
불편하게 커프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은찬이가 자기를 속였다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남탓하는 한결이도 불편하고
아니라도 말 한마디 못하고 니가 멋대로 오해한거잖아 소리도 못 지르는 은찬이도 불편하고
여자가 좀 져주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고분고분이라고 했던가? 암튼) 한성이도 불편하고
사랑과 일을 다 잡겠다고 욕심 부리다가 유산하는 벌을 받아야 한 유주도 불편했다.
10년동안 드라마 속의 그들은 바뀌지 않았는데 나의 생각은 그 동안 변했다.
10년 전 당연했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게 된거다.
어쩌면 지금 당연한 것들도 10년 후엔 또 나를 불편하게 할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늘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인생을 시작할 10대, 20대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여자로 태어나 살아갈 여성을 위해
남자로 태어나 여성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없어 오해(?)할 수도 있는 남성을 위해...
나는 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만 경험하고 산다. 그것은 너무 작고 좁은 세계다. 나는 내게 다른 삶의 경험을, 우리가 바꿔야 할 삶의 태도들 알려줄 더 많은 동료가 생기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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