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만 보고 처음엔 지하철로 여행하는 신나는 에세이인 줄만 알았다. 빨간색 표지에 까만 글씨가 피와 흑인을 뜻한다는 건 책 설명을 보고서야 알았다. 피로 이루어진, 목숨을 건 여행기라는 걸... 작가도 처음 흑인 노예 해방 조직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지하철도)의 이름을 듣고 진짜 철도일 것이라고 상상해왔다고 한다. 후에 그게 비유였음을 알고 약간 화가 났다는데,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진짜 '지하철도'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한다.

주인공 코라는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 랜들 대농장에서 노예로 일을 한다. 동료 시저가 지하철도로 탈출을 하자고 말했던 어느 날, 농장주는 한 무더기의 손님들 앞에서 탈출하다가 잡힌 노예를 체벌한다. 그들이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동안 노예는 채찍질을 당했고, 그들이 실내로 들어간 후에도 처벌은 계속되었다. 그의 성기가 잘려 입안에 넣고 꿰매졌기 때문에 그가 불에 타들어갈 때도 소리조차 지를 수조차 없었다. 그런 모습에 눈물을 흘리던 친구의 얼굴에는 따귀가 올려 붙었다.

버지니아에서 온 시저는 우연히 노예들이 탈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밀조직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코라의 엄마인 메이블이 농장을 탈출한 것처럼 코라 또한 가능하리라 보고 마스코트로 그녀를 대동하고자 한다. 야밤에 농장을 탈출하지만 수색대에 걸려 다툼이 있었고 도중에 백인 소년에게 중상을 입힌다. 그리고 이들을 집요하게 쫓아오는 노예사냥꾼 리지웨이를 따돌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베시 카펜터라는 신분으로 자유인처럼 살게 된다. 자유라는 달콤함을 누리던 중에 사감과 의사 선생님은 영구 피임을 제안하는데, 알고 보니 백인들보다 더 많은 흑인들을 경계하며 달콤한 말로 그들의  씨앗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흑인들을 위하는 척해도 뿌리까지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쫓아온 리지웨이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코라는 또다시 지하 열차를 타고, 그렇게 도착한 노스캐롤라이나는 조지아보다 더욱더 무서운 곳이었다. 금요일 밤마다 흑인을 목매는 축제를 즐기는 잔인한 노스캐롤라이나. 마틴이라는 사람의 다락방에서 숨죽여 지내는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코라는 발각되고 마는데...

지구 반바퀴를 돌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상상을 해본다. 나는 오늘도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굽은 손으로 목화솜을 딴다. 노동의 결과로 받는 것은 으깬 감자가 전부다. 아니 할당량을 다 못 채웠다며 내 어린 아들의 등에 퍼붓는 채찍질까지 봐야 한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나무 기둥에 묶여 살점이 다 날아갈 정도로 학대 당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말린다고 한들 아이의 체벌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하게 가해질 수 도 있다. 또 그 채찍이 내 등을 사정없이 강타하는 건 시간문제다. 아이의 상처에 쏟아지는 고춧가루 물 때문에 아이는 울부짖는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할 때 농장주는 내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 다시는 볼 수 없는 다른 농장에 팔아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치가 떨린다. 이렇게 대놓고 학대를 하는 경우는 없어졌겠지만 저변을 맴도는 은근한 인종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라의 탈출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은 아니지만... 그녀의 탈출은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노예로서는 해방이 되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싱 논란, 흑인에게 가하는 백인 경찰관의 무리한 진압 그리고 트럼프(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당선 이후 더욱더 거세지는 인종차별의 광풍 등을 생각하면... 자유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를 즐기고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사냥해서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하며 끌고 온 미국이란 나라의 자유란 백인들만의 것이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흑인들의 피를 넣고 돌아가는 엔진으로 이루진 성장이었다. 독립선언문이 담고 있는 만민평등에서 만민의 자유와 평등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은 바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에서 도움을 받은 코라는 자신의 자유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성장한다. 내가 지금 가진 자유도 내가 단순히 얻은 것이 아님을 깊이 새겨야겠다.

 

 

 

 

음악이 끝났다. 원이 깨졌다. 이따금씩 어느 노예는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밭고랑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상념이 밀려들때, 혹은 이른 아침 신비스러운 꿈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동안. 어느따뜻한 일요일 밤, 노래 한가운데. 그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감독관의 고, 일하라는 부름, 주인의 그림자-영원한 속박 속에서 당신은 아주 찰나에만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p.p. 40~41

자유인 신분이 된 흑인들이 제 주인들을 피해 달아났듯이, 백인들 역시 그들 주인의 폭정을 피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이상을 부정했다. 코라는 마이클이 랜들 대농장 뒤편에서 독립선언문을 암송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성난 유령처럼 마을을 떠돌던 그의 목소리. 코라는 그 말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쓴 백인들 역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흙처럼 손에 주리 수 있는 것이든 자유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했다면, 아니었다. 코라가 경작하고 일했던 땅은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코라는 백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그 종족의 미래를 씨앗부터 말살해버리는 대학살의 효율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다. p.136

감옥과 다름없는 곳을 누군가의 유일한 피난처로 만드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코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속박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 그물 속에 있는 것일까. 도망자 신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지마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큰 곳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주인에게서 자유롭지만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토끼장 속을 살글살금 돌아다녔다.
p.p.203~204

어떤 불운도 코라의 성격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코라의 피부색은 검었고 이것이 세상이 검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주가 다르다고 럼블리는 말했다. 테네시에게 성격이 있다면 그것은 제멋대로 처벌을 내리는, 세상의 어두운 면모를 닮아 있었다. 어떤 꿈을 꾸고 있고 피부색이 무엇이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p.243

"노예와 노예 사냥꾼. 주인과 흑인 우두머리. 항구로 밀려드는 새로 도착한 사람들과 정치인과 보안관과 신문기자와 제 튼튼한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 너나 네 엄마 같은 사람들은 네 인종에서는 최상품이지. 네 종족의 약한 종자들은 솎아내지니까. 노예선에서 죽고, 유럽 수두로 죽고, 목화밭과 쪽밭에서 일하다가 죽지. 너는 노동에서 살아남고 우리를 더 위대하게 만들어주려면 강해햐 한다. 우리가 돼지를 살찌우는 건, 그게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돼지들이 살아남아야만 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우리는 네가 너무 똑똑해지면 곤란하다. 네가 우리를 넘어설 만큼 그럴싸한 인물이 되어서는 곤란해."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인 모삼이 미친 살인마에게 잔인하게 찔리는 걸로 책은 시작한다. 그의 친구이자 법의관인 무즈선 덕분에 겨우 목숨만 건진 그는 후유증으로 자신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 매번 똑같은 꿈만 꾸는 채... 그런 그가 사건이 있고 난 후 첫 외출로 무작정 들어간 클럽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이 누군지 기억해낸다. 모삼과 무즈선에게 살인마는 게임을 제안한다. 살인마 L이 이기면 누군가를 죽이고, 지면 그 사람을 살리는, L이 누구인지 찾을 때까지 계속되는 게임을... 당연히 둘은 게임에 응하고, L이 제공하는 단서를 가지고 3일 안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신의 술래잡기>는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 파일과 부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렇게 잔인한 사건들이? 뭐 하긴 요즘은 현실이 소설보다 더 지옥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니... 읽는 동안 미국 드라마인 <멘탈리스트>가 떠올랐다. 제인(이름이 제인이지만 남자다)이 연쇄 살인마 레드존에게 사랑하는 와이프를 잃고 그를 쫓으며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신의 술래잡기> 역시 천재 탐정(제인은 눈치백단 사기꾼) 모삼도 연쇄 살인마 L에게 사랑하는 약혼녀(심지어 그의 아이를 임신한)를 잃는다. 모삼도 복수를 위해서라도 L이 제안하는 게임에 응해 그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사신의 술래잡기>에는 4개의 사건이 나온다. 무작정 들어간 클럽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인 '마르가리타'(명탐정 주변엔 왜 살인 사건이 끊이질 않는가? ㅋ), L이 모삼과 무즈선에서 처음으로 제공한 살인사건인 '상자 속의 장갑', 리모델링 후 귀신이 나타나는 집 이야기인 '아야와스카', 미해결 사건인 이상한 자세로 목을 매고 죽은 두 남자로부터 시작된 '행복의 절정'. L이 제공하는 사건의 살인자들은 하나같이 사연 있는 사람들이다. 명탐정 코난도 소년 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살인자들도 알고 보면 피해자들이었으니까. 법 안에서 정의가 제대로 실현됐더라면 어쩌면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인데 안타깝다.

섬세한 관찰력을 가진 천재 탐정 모삼과 엄청난 부의 소유자 일뿐만 아니라 완벽한 외모, 우아한 태도, 피해자를 위한 정의까지 있는 무즈선에 비해서도 L은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L은 수많은 잔인한 살인사건을 저지르면서도 현장에 단서 하나 남겨놓지 않는다. 그리고 경찰계의 신화로 알려진 모삼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게 살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조차 연쇄살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건들과 그 사건의 살인마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L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소설의 후반 구로 갈수록 L은 연쇄 살인마보단 모삼과 무즈선에게 사건을 제공하는 인물로 변화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L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1권이라 그런 걸까? 2권인 <사신의 그림자>에서는 L의 정체가 밝혀질까? 아니면 그에 대한 단서가 나올까? <사신의 그림자>가 궁금해진다.

 

삼은 자신의 생명이 피와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그자의 뒷모습이라도 보려고 애썼다.
그 사악한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며 사라지려 할 때, 모삼은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릅떴다.
땀에 흠뻑 젖은 그는 이 어둡고 조용한 방 귀퉁이를 멍하게 쳐다보면서, 몇 번이나 숨을 헐떡였다.
p.p. 10~11

"즈선, 때론 나 역시 내 집착과 내가 한 일에 대해 의심하게 돼, 하지만 방법이 없어. 난 그런 사람이야. 멈출 수 없는 사람. 이런 이유 없는 집착과 충동이 나로 하여금 무조건 진실을 찾게 만들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p.3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 여성들의 오피스 서바이벌 매뉴얼
제시카 베넷 지음, 노지양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은 여성들의 오피스 서바이벌 가이드다. 흔히 직장생활은 전쟁터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거친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니 그 동안 다녔던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잘만 타는 커피도 손님이 오면 여직원이 쟁반에 받쳐 커피를 들고 와야한다고 주장하는 부장님(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커피를 맛없게 타마시기로 유명해서 부장님께선 나에겐 커피 심부름 따위 부탁하지 않으셨다. 대신 '녹차~'를 외치셨다고...), '여자라 이런 거 못해요.'라고 웃으며 조금만 힘이 들어가는 일이면 다 남자를 시키던 동료 여직원(의외로 몸 쓰는 일이 많은 사회복지관에서 대놓고 남자를 뽑는다며 거절당한 이후로 난 힘쎈 여자가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외부로 행사 나갈 땐 여직원이 따라가야 보기가 좋다고 말하던 남자 동료들(이걸 꼭 여자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무실 밖에만 나가도 좋았기에 암말 없이 지원나가고, 뒤에서 궁시렁거렸더랬다.), 여자 이사님 뒤에서 독하다며 수군거리던 회사 사람들(대단해 보인만큼 독해보인 건 사실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이 회사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재수없는 남자들보다 재수없는 여자들을 더 싫어했던 나(여적여를 몸소 실천했던 재수없는 과거여! 이젠 안녕~)...

그 동안 내가 겪은 것들은 유교문화 색채가 짙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몇 해 전 제니퍼 로렌스의 개런티가 화제가 되었는데 누가 봐도 제니퍼 로렌스가 주인공임이 틀림없는데도 남자 배우보다 적게 받는 개런티에 어이가 없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미국 백인 여성의 임금도 차이가 나는데 유색 인종에 딱히 잘 나가지도 않는, 게다가 연식까지 먹어주고 있는 나에겐 더 더욱 당연한 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젠장! 진정 이건 부당한 일이다. 성별, 인종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로 차별을 받아야하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직장에서의 여자들을 살펴보자. 나부터 나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무실에서 엄마처럼 모든 걸 챙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나의 재능이나 기량보다는 꾸준한 노력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라며 인정받는 걸 기피하는 것. 단순한 업무뿐만 아니라 과중한 업무까지 다 떠맡는 것. 자신없이 몸을 작게 만들거나 손을 어쩔 줄 몰라하는 것. 다른 사람의 비서처럼 일하는 것. 위선을 떨고 과하게 회사에 충성하는 것. 여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 등 남자들이 대부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을 하고 있진 않는지 말이다. 일단 우리 자신부터 변화해보자. 여자들을 대표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멀어져 일반 남자들만큼 하는 거다. 보통 남자가 가지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말끝마다 사과하지 않기, 자신감을 주는 어휘감을 사용하기, 성적 편견을 야기하는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기, 그리고 당당하게 협상하기!! 이런 걸 다 신경쓰기 힘들다면 쉬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능력있고 괜찮은 남자 직원(여성에게 우호적인)의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내는 기술을 관찰하고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아마 그 남자는 회의에서 주도권이 있고, 확신에 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닌 것에 "노!"를 외칠 수 있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는 사람일 것이다. 매력적인 장점이 있는 사람을 따라하는 건 내가 생각하는 높은 기준을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단 어쩜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에서 사는, 성공한 백인 여성이 쓴 책이기에 우리나라에서 무작정 따라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나이까지도 따지니까. 영리하게 적용해서 사용하길 추천한다.

자신감을 갖자! 생각보다 우린 더 멋지고, 똑똑하고, 강한 사람들이다. 여자라는 단어에서 오는 편견에서 벗어나 양성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그날을 위하여!!

하지만 우리 각자는 모든 분야에, 모든 역할에서, 길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발밑에 놓여 있는 젠더 지뢰를 만나야 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들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이다. 마치 더운 여름날 밤 뉴욕 거리를 걷다가 난데없이 풍겨오는 악취를 피해야 하는 것만 같았다. 난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며 내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어디선가 팡팡! 냄새가 공격해오는 것이다! p.17

우리는 잘 안다. 동료들이 어떤 여성에게 ‘야망이 넘친다‘고 말하는 것은 칭찬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웃어야 하고 상냥해야 하지만(왜냐하면 여자들은 상냥하니까!) 너무 상냥하면 안 된다.(만만해보이니까.) 엄마처럼 따뜻하게 직원들을 챙겨야 하지만(여자는 남을 돌보려는 본능을 타고났으니까!) 그렇다고 진짜 아기 엄마가 되면 큰일 난다.(엄마는 전심전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존중받을 만큼의 자신감은 있어야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하면 안 된다.(사람들은 잘난 척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여자가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두 배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여성인 데다 유색인종이라면 세 배, 아니 네 배, 아니 다섯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p.p.26~27

우리 모두-그렇다. 정말 ‘우리 모두‘-는 약간의 성차별주의자(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무의식적인 편견‘이라 지칭하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데, 이는 우리 두뇌에 의해 형성된 ‘인지적 지름길‘의 결과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리가 내면의 성차별주의를 인정하면 확인을 해볼 순 있다는 것이다. 야심만만한 여성을 볼 때 이유 없이 신경에 거슬린다고 느껴진다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저 여자가 남자였어도 내가 싫어했을까?‘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로그와 까페, 그리고 팟캐스트에서 알게 된 전건우 작가님의 책이다. 신간 <소용돌이>보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먼저 읽어야할 것 같았다. <소용돌이>가 더 무섭다고 했거든.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북으로 구매했다. 물론 <소용돌이>도 함께...

파란 표지와 빨간 커버가 잘 어울리는 듯... 표지를 핸드폰에서 작게 봤을 땐 꼬마가 의자에 쭈구려 앉은 걸로만 생각했는데 크게 보니 살짝 으스스하다. 저 사람 눈 가리고 웃는 거 맞지? 심지어 장기밀매업자가 살았다더라, 유력 정치인 별장이었는데 술집 여자들이 시체로 나왔다더라하는 흉흉한 소문이 있는 흉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모임의 참가자다.

큰 맘 먹고 간 캠핑을 간 아홉살 소년. 하필이면 그날 밤의 폭우로 부모님을 수마에 잃고 만다. 소년은 검은 물살 속에서 무언가를 본다. 낄낄 웃는 무엇인가를...
도서관에서 취직 자리를 알아보던 '나'는 '도서출판 풍문'이라는 곳에서 서류 합격 전화를 받는다. 미스터리를 주로 다루는 출판사 편집장은 보자마자 합격이라며 당장 출근하라고 한다. 그리고 '밤의 이야기꾼'이라는 모임을 취재하러 간다. 그리고 다섯개의 이야기를 듣는다.
과부가 유난히 많은 마을 출신의 아내와 사는 남자
도플갱어를 마주친 성형 중독의 여자
집을 지키기 위해 섬뜩한 노력을 하는 남자
유일한 친구 피에로와 동물 조립을 하던 여자
눈의 저주로 사랑도 할 수 없었던 여자
나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눈조차 보지 못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게 되는데...

무서운 이야기는 유독 다른 이야기들보다 이야기의 힘이 강한 것 같다. 무섭지만 끝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 같다. 무서운 영화의 경우는 손으로 가려버리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릴 때도 간혹 있는데 무서운 이야기만큼은 끝까지 읽고만다.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자꾸만 생각나서 잠 못 들더라도, 아니면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지라도... 언젠가부터 호러 소설은 일본이나 미국 작가들 작품만 보고 한국 작가들의 책은 안 접했는데, 보더라도 더링 블로그의 짤막한 글 정도? 그런데 한국에도 이렇게 재미있게 으스스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니!! <소용돌이>도 어서 읽어야지.

"틀렸어. 더 비현실적인 쪽은 실화야.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이 세상이지. 그래서 소설은 결코 실화를 따라잡을 수 없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미여사의 신간이다.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표지도 예쁘기에 시리즈로 모으고 있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야베월드 2막! 각 달을 테마로 슬프고, 가슴이 따뜻한 12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귀자모화
불이 탄 신단에서 발견된 금줄에 낀 빔지 속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날 밤 도망친 오카쓰와의 관계는?
붉은 구슬
너무 가난한 부부가 있다. 게다가 아내 요미오는 몸까지 너무 약하다. 사치품을 금하는 미즈노 개혁 때문에 상인층을 상대로 빌어먹는 직인인 사키치에게 어느 날 비녀를 몰래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에도판 <운수 좋은 날>
춘화추등
사방등의 사연을 이야기해주는 고물점의 주인
얼굴 바라기
덩치 큰 박색인 오노부에게 나막신 가게의 외아들 시게타로가 청혼을 하지만 시게타로는 후카가와 근방에서 이름난 미남이다. 부족한 것 없는 미남이 박색에게 첫눈에 반한 사연은?
쇼스케의 이불옷
이불옷은 잠옷이 아니라 덮고 자는 이불이다. 그 때 이불은 밑에 까는 요를 말한다고... 쇼스케가 중고로 산 이불옷과 고로베에의 딸인 오유의 결혼 준비 이야기.
미아방지 목걸이
그 때에도 미아방지 목걸이가 있었다니! 사는 곳과 부모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는 아이, 그런데 그 아이는 이미 3년 전 화재로 행방불명된 아이였는데...
다루마 고양이
겁은 많지만 멋진 소방수가 되고 싶은 분지. 그러나 화재현장에선 짐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화재에서 분지를 지킬 수 있는 고양이 두건을 만나게 되는데...
고소데의 손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고소데를 사온 소녀에게 엄마가 해주는 헌 옷과 연관된 무서운 이야기
목 맨 본존님
이제 겨우 열한 살인 쓰테마쓰는 포목 도매상에서 가게 일꾼으로 일하다가 집으로 도망을 온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도 따뜻한 말한마디 없이 식구들을 위해 일해달라는 엄마의 부탁만 듣고 다시 가즈사야로 돌아간다. 그런 쓰테마쓰에게 큰주인이 그림 하나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꺼내는데...
신이 없는 달
시월이면 찾아오는 불가사의한 강도사건.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소액을 훔쳐가고, 그런 도둑을 노련한 오캇피키가 추척한다. 도둑에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
와비스케 동백꽃
당동백이라고도 불리는 와비스케 동백꽃을 닮은 첫사랑의 아름다움에 반해 늘 간판에 와비스케 동백꽃을 그리는 요스케에게 낳지도 않은 딸이 등장하는데...
종이 눈보라
야박하기 그지없는 이즈쓰야에서 일하는 하녀 긴의 지붕에 올라가게 된 슬픈 이야기.

이렇게 12개의 단편이 있는 <신이 없는 달>. 이 책의 제목인 <신이 없는 달>도 좋았고, <붉은 구슬>, <목 맨 본존님> 그리고 마지막인 <종이 눈보라>가 좋았다. <목 맨 본존님>을 제외하면 슬픈 이야기라 더 기억에 와 닿는 지도 모르겠다. 단편이라 금방 읽어서 아쉬웠다. 몇 개의 이야기는 단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다시 만나고싶을 정도로...

에도 시리즈는 권력을 장악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가진 것이 없는, 그래서 서로를 돕고 살 수 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라서 매력이 있다. 미미여사는 현시대를 그릴 때는 서늘한 시선으로 서술한다면, 에도시대는 유난히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 에도 시리즈가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을 때는 생소한 단어에 낯설기도 하겠지만 읽다보면 이 시대의 매력에 빠질 듯.

야음에 나가는 아빠를 지켜 주실 신은 없단다. 하지만 그 대신 이 소매 속에 있는 팥이 아빠를 네 곁으로 무사히 데려다줄 거야. 작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월말에는 팥밥을 지어서 신이 돌아오시는 것을, 그래서 또 한 해를 즐겁게 살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자꾸나. p.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