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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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만 보고 처음엔 지하철로 여행하는 신나는 에세이인 줄만 알았다. 빨간색 표지에 까만 글씨가 피와 흑인을 뜻한다는 건 책 설명을 보고서야 알았다. 피로 이루어진, 목숨을 건 여행기라는 걸... 작가도 처음 흑인 노예 해방 조직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지하철도)의 이름을 듣고 진짜 철도일 것이라고 상상해왔다고 한다. 후에 그게 비유였음을 알고 약간 화가 났다는데,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진짜 '지하철도'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한다.

주인공 코라는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 랜들 대농장에서 노예로 일을 한다. 동료 시저가 지하철도로 탈출을 하자고 말했던 어느 날, 농장주는 한 무더기의 손님들 앞에서 탈출하다가 잡힌 노예를 체벌한다. 그들이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동안 노예는 채찍질을 당했고, 그들이 실내로 들어간 후에도 처벌은 계속되었다. 그의 성기가 잘려 입안에 넣고 꿰매졌기 때문에 그가 불에 타들어갈 때도 소리조차 지를 수조차 없었다. 그런 모습에 눈물을 흘리던 친구의 얼굴에는 따귀가 올려 붙었다.

버지니아에서 온 시저는 우연히 노예들이 탈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밀조직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코라의 엄마인 메이블이 농장을 탈출한 것처럼 코라 또한 가능하리라 보고 마스코트로 그녀를 대동하고자 한다. 야밤에 농장을 탈출하지만 수색대에 걸려 다툼이 있었고 도중에 백인 소년에게 중상을 입힌다. 그리고 이들을 집요하게 쫓아오는 노예사냥꾼 리지웨이를 따돌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베시 카펜터라는 신분으로 자유인처럼 살게 된다. 자유라는 달콤함을 누리던 중에 사감과 의사 선생님은 영구 피임을 제안하는데, 알고 보니 백인들보다 더 많은 흑인들을 경계하며 달콤한 말로 그들의  씨앗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흑인들을 위하는 척해도 뿌리까지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쫓아온 리지웨이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코라는 또다시 지하 열차를 타고, 그렇게 도착한 노스캐롤라이나는 조지아보다 더욱더 무서운 곳이었다. 금요일 밤마다 흑인을 목매는 축제를 즐기는 잔인한 노스캐롤라이나. 마틴이라는 사람의 다락방에서 숨죽여 지내는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코라는 발각되고 마는데...

지구 반바퀴를 돌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상상을 해본다. 나는 오늘도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굽은 손으로 목화솜을 딴다. 노동의 결과로 받는 것은 으깬 감자가 전부다. 아니 할당량을 다 못 채웠다며 내 어린 아들의 등에 퍼붓는 채찍질까지 봐야 한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나무 기둥에 묶여 살점이 다 날아갈 정도로 학대 당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말린다고 한들 아이의 체벌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하게 가해질 수 도 있다. 또 그 채찍이 내 등을 사정없이 강타하는 건 시간문제다. 아이의 상처에 쏟아지는 고춧가루 물 때문에 아이는 울부짖는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할 때 농장주는 내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 다시는 볼 수 없는 다른 농장에 팔아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치가 떨린다. 이렇게 대놓고 학대를 하는 경우는 없어졌겠지만 저변을 맴도는 은근한 인종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라의 탈출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은 아니지만... 그녀의 탈출은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노예로서는 해방이 되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할리우드의 화이트 워싱 논란, 흑인에게 가하는 백인 경찰관의 무리한 진압 그리고 트럼프(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당선 이후 더욱더 거세지는 인종차별의 광풍 등을 생각하면... 자유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를 즐기고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사냥해서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하며 끌고 온 미국이란 나라의 자유란 백인들만의 것이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흑인들의 피를 넣고 돌아가는 엔진으로 이루진 성장이었다. 독립선언문이 담고 있는 만민평등에서 만민의 자유와 평등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은 바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에서 도움을 받은 코라는 자신의 자유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성장한다. 내가 지금 가진 자유도 내가 단순히 얻은 것이 아님을 깊이 새겨야겠다.

 

 

 

 

음악이 끝났다. 원이 깨졌다. 이따금씩 어느 노예는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밭고랑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상념이 밀려들때, 혹은 이른 아침 신비스러운 꿈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동안. 어느따뜻한 일요일 밤, 노래 한가운데. 그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감독관의 고, 일하라는 부름, 주인의 그림자-영원한 속박 속에서 당신은 아주 찰나에만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p.p. 40~41

자유인 신분이 된 흑인들이 제 주인들을 피해 달아났듯이, 백인들 역시 그들 주인의 폭정을 피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이상을 부정했다. 코라는 마이클이 랜들 대농장 뒤편에서 독립선언문을 암송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성난 유령처럼 마을을 떠돌던 그의 목소리. 코라는 그 말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쓴 백인들 역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흙처럼 손에 주리 수 있는 것이든 자유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했다면, 아니었다. 코라가 경작하고 일했던 땅은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코라는 백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그 종족의 미래를 씨앗부터 말살해버리는 대학살의 효율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다. p.136

감옥과 다름없는 곳을 누군가의 유일한 피난처로 만드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코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속박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 그물 속에 있는 것일까. 도망자 신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지마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큰 곳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주인에게서 자유롭지만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토끼장 속을 살글살금 돌아다녔다.
p.p.203~204

어떤 불운도 코라의 성격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코라의 피부색은 검었고 이것이 세상이 검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주가 다르다고 럼블리는 말했다. 테네시에게 성격이 있다면 그것은 제멋대로 처벌을 내리는, 세상의 어두운 면모를 닮아 있었다. 어떤 꿈을 꾸고 있고 피부색이 무엇이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p.243

"노예와 노예 사냥꾼. 주인과 흑인 우두머리. 항구로 밀려드는 새로 도착한 사람들과 정치인과 보안관과 신문기자와 제 튼튼한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 너나 네 엄마 같은 사람들은 네 인종에서는 최상품이지. 네 종족의 약한 종자들은 솎아내지니까. 노예선에서 죽고, 유럽 수두로 죽고, 목화밭과 쪽밭에서 일하다가 죽지. 너는 노동에서 살아남고 우리를 더 위대하게 만들어주려면 강해햐 한다. 우리가 돼지를 살찌우는 건, 그게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돼지들이 살아남아야만 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우리는 네가 너무 똑똑해지면 곤란하다. 네가 우리를 넘어설 만큼 그럴싸한 인물이 되어서는 곤란해."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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