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수업 - 화를 안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아룬 간디 지음, 이경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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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다가 깼다. 밤톨군을 낳은 이후로 깊은 잠을 잔 날이 거의 없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져자면 언제 와서 딱 붙어자다가 또 불편하면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한다. 눈앞이 번쩍했다. 밤톨군의 정확한 발길질에 눈을 제대로 맞은 거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는 애를 사정없이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 화가 나서 잠마저 달아났다. 작은방으로 가서 화를 삭이기로 했다. 책상에 읽다가 덮어둔 책이 보였다. <분노수업>이었다.

간디는 위대한 성인으로 불리지만 초등학교 때 읽은 위인전을 마지막으로 그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하얀 거적대기 같은 걸 몸에 두르고 물레를 돌리는 이미지와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도했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게임 '문명'에서 "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사태를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로 이제 간디는 위대한 성인이 아닌 패왕 간디라는 별명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  <분노수업>은 간디의 다섯 번째 손자이자 인도계 미국인 사회운동가인 아룬 간디가 마하트마 간디(아룬 간디에겐 자상한 할아버지, 바푸지)와의 추억을 통한 그의 가르침에 대해 쓴 글이다.

첫 번째 교훈_분노를 선한 목적에 사용하라
두 번째 교훈_소리 높여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 번째 교훈_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라
네 번째 교훈_자신의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하라
다섯 번째 교훈_거짓말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여섯 번째 교훈_낭비는 폭력이다
일곱 번째 교훈_아이들을 비폭력의 방식으로 키워라
여덟 번째 교훈_겸손이 가장 큰 힘이다
아홉 번째 교훈_사랑으로 세상을 움직여라
열 번째 교훈_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변화가 되어라
열한 번째 교훈_오늘이 어제보다 낫도록 하라

좋은 말은 누구나 하기 쉽다. 그러나 좋은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특히 자신이 한 말은 말이다. 아이가 단 것을 너무 좋아해서 걱정인 엄마가 간디에게 찾아간 일화가 있다. 간디는 2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자 아이의 엄마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2주 뒤에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간디는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뒤로 단 음식을 피하고 건강한 음식을 찾는 것을 보고 신기한 엄마가 비법을 물어왔다. 아마도 기적을 행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아닐에게 단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단 음식을 끊을 필요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두 주 뒤에 다시 오시라고 했던 것입니다. (중략) 내가 두 주 동안 단 음식을 끊어봤는데 너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간디는 진지하게 요청을 받아들였고 아이에게 쉽게 말하는 대신 본인이 먼저 실천을 했다. 이 일화를 읽고 반성을 했다. 밤톨군은 뱃속에서부터 나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생물 시간에 배운 것과는 달랐다. 꺽정씨를 하나 낳았을 뿐이었다. 매일매일 아이의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내 유전자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아이가 크면서 아이에게서 발견한 나의 모습은 나의 못난 점들이었다. 나는 내 못난 점을 고치지 않고 날 닮아가는 아이에게 못마땅해했다. 왜 사람들이 간디를 존경하는지 알게 됐다.

아룬 간디는 바푸지가 이룬 큰일들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해줄 만한 작은 일화들을 소개해주었다. 위대한 성인이 내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의 가르침을 듣다가 아룬 간디가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한 2년은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인도 내 유혈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자 아룬 간디는 할아버지와 떨어져 고향인 남아프리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는 우익 힌두교도에 의해 암살당한다. 간디의 암살 소식에 2년간 함께 정이 든 나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위대하지만 결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낮은 자리에 함께 있던 마하트마 간디가 내게도 바푸지가 되어주었다.

바푸지가 해준 이야기다. 엄청나게 집을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이 있었다. 설거지해야할 그릇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놔두던 게으른 사람인데 집에 손님만 초대하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에게 어여쁜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 받는다. 그 장미꽃은 사랑의 선물이었다. 산더미 같던 그릇 사이에서 꽃병을 찾고 깨끗하게 씻고 물을 담아 장미꽃을 꽂았다. 이번에는 장미꽃을 둘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거실 탁자를 치우고, 거실을 치우고, 바닥도 닦았다. 결국 집 전체가 깨끗해졌다. 사랑하는 여인이 준 장미꽃 한 송이가 그 사람의 생활 전체를 바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장미꽃이다.

 

분노를 선한 목적에 사용하십시오.
사람에게 분노는 자동차에게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분노를 연료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고 또 더 나은 인간이 됩니다.
분노가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일에 도전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는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정당하지 않은지 정의를 내리도록 우리의 등을 떠미는 연료입니다.
p.27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줄 때 비로소 자신의 명예가 높아진다고 느낄 수가 있는지가 내게는 늘 수수께끼였습니다. p.62

부모들은 대게 자기 아이를 바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과 후 시간을 축구와 테니스 연습이나 발레 학원 강습, 피아노와 바이올린 교습 들로 채운다. 아이들은 한 가지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바쁘게 옮겨 다니지만 정작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생각을 하고 또 놀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여유가 없다.
이렇게 풍요로운 활동이 아이들에게 좋을 수 있겠지만, 이따금씩은 아이들에게 고독이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모라면 알아야 한다. p.p.83~84

"지금 나의 존재를 바라보면 내가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너도 그러면 좋겠구나."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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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공부지능 - 3세부터 13세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잘하는 머리의 비밀
민성원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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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는 건강하게만 태어나달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수록 바라는 것들도 많아진다. 기저귀를 어서 땠으면, 말을 잘 했으면, 혼자서도 척척 책을 읽을 수 있으면... 그리고 아마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공부 잘하기를 바랄 것이다. 나도 아마 그럴 거다. 누구나...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내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2% 안이라고? 내 IQ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선 왜 공부를 못했지? 아니 시험을 못 봤지? 결론은 내가 공부지능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거다. 이런... 일단 나는 너무 생각이 많다.

<영재발굴단>이란 프로그램을 가끔씩 본다. 어린아이들이 천재성을 발휘하는 걸 보며 놀랍기도 하고 때론 안타깝기도 했다. 천재성을 보이고 즐기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똑똑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얽매이는 아이들 또한 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천재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라는 거다. 자기 주도적으로 시간을 짜고, 또 미래를 생각하며 노력하는 게 어른들이 보기에 기특해 보이지만 일종이 자기 강박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는 거다. 축구도, 미술도, 음악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왜 공부만은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다. 공부도 반드시 재능이 있어야 한다.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훨씬 더 빠르게 이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나?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아이들이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는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에게 정석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도 봤다. 그 아이가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부모가 과연 수학만 과외를 시킬까? 절대 아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어려운 세대였다. 전쟁이 막 끝났을 때 태어났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부모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어려웠다. 그중에서 잘난 형제들만(자매들은 남자들에게 그 혜택마저 양보해야 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이 잘나는 동안 다른 형제자매들은 그들의 노력은 보상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려면 이젠 공부를 해야 한다고. 공부만 잘하면 좋은 직장을 갖고 성공할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 세대는 이제 공부를 안 하면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자녀를 키운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학원들은 장사를 한다. 지금 안 하면 네 자녀는 뒤로 쳐질 거야. 낙오자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지. 초등학교 때 자리를 잡지 못하면 중고등학교는 아예 따라잡을 기회가 없어라고 속삭인다. 그 기회가 없다는 게 문제인 것도 모른 채...

내가 우리 아이만 할 때 핸드폰은 그저 상상의 물건이었다. 그 상상의 물건을 이제 우리 아이는 신기하게도 잘 사용해서 문제다. 내가 중학교 때는 MS-DOS를 배웠다. 지금 누가 DOS를 사용하기는 할까?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어 영재니 어쩌니 난리를 쳐도 앞으로 말을 하자마자 바로 귀에서 통역해주는 세상이 멀지도 않았다. 우리가 미친 듯이 외워야 할 것들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보여준다. 이런 것들은 암기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수많은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아마존에선 이미 상품 분류 직원들이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아마존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짐작하기도 전에 먼저 그 일이 일어난 거다. 판사보다 AI가 더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고, AI가 의사보다 더 빠르게 병을 진단할 거다. 더 와벽한 수술도 해내는 것도 앞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아이들끼리 경쟁하고 서로를 넘어서려고 공부기계로 자라는 건 보기 싫다.

에필로그를 읽고 또다시 실망했다. 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에서 전체 2등을 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힘이라고 했다. 이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가 될 것이라고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인재 하나를 위해 백여 명의 아이들은 포기해도 괜찮다는 의미일까? 과도한 사교육, 학교에서부터 떨어져 나간 아이들, 그리고 삶까지 포기한 아이들에 대해선 한 마디의 말도 없다. 그리고 그 인재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간다고? 그 아이들은 이미 외국 국적으로 가졌거나 아니면 외국계 기업에 훨씬 비싼 몸값으로 스카우트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 땅에 남아 이 나라와 함께 살아가는 건 평범한 아이들이다. 천재로 태어나도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서 아무런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도 있다. 또래보다 훨씬 똑똑해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은 맞벌이여서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셨는데 영재라는 결과 지도 받았지만 부모님이 그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각종 영재 프로그램은 돈을 필요로 하고, 무료이거나 저렴한 곳은 이미 그 아이 같은 영재들이 많았기에 자리가 없었다.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자는 말에 공감하는 바이나 이 책은 나에게 실망감만 더해줬다. 분명히 책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그리고 아이가 영재여서 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우리 아이가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1등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등수가 떨어졌다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거나, 이미 맛본 좌절감으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로 키우지는 않을 거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로, 그리고 그 아이를 응원하는 든든한 부모가 되겠다. 학부모가 아닌...

 

 

다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행복한 과정을 위하여 과도한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강점을 찾는 편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강점을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휘하는 과정은 즐겁기 때문에 그곳에서 누적적 성취가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서 오래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작은 성취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 성취가 모이고 모여 해당 영역에서 큰 성취로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도 충분히 확산되어 나갈 수 있다. 이는 제프 콜빈이 말하는 ‘약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성공인 셈이다. p177

긍정적 자아를 지닌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노력한다. 반면 부정적 자아를 지닌 아이는 무엇이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공부에 대해서도 자신이 잘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 마음으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집중은 못하고 불안해하기만 하니 공부를 잘하려야 잘할 수가 없다. p.p.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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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가 또 이상한 짓을 해
타마고야마 타마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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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냥밍아웃(고양이를 좋아한는 사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출판사에서 고양이 책을 엄청나게 쏟아낸다. 설레이게시리... 고양이 매력에는 출구가 없다더니~ SNS랑 블로그에 고양이 에피소드 만화를 올린 걸 계기로 책까지 나왔다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긴 많은가보다.

나도 내 고양이가 있었다. 과거형이라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파란 눈이 매력적이던 샴고양이인 '보리'. 더운 여름에는 내 머리맡, 추운 겨울엔 내 다리 사이에서 자던 녀석, 나의 손길을 즐기던 녀석, 모기를 누구보다 잘 잡던 녀석이 보고싶었다. 꼭 안아주고싶은데...

 

 

 <우리집 고양이가 또 이상한 짓을 해>에 나오는 고양이는 두 마리~ 톤짱과 시노씨! 톤짱은 은근한 시크쟁이다. 만지는 건 별로 안 좋아해도 곁에 다가와 살맞대로 누워있고, 빗질하는 것도 좋아하는 깔끔쟁이. 그에 비해 시노짱은 친화력 짱인 개냥이파. 노는 것 좋아하고 똥꼬를 집사에게 대는 걸 좋아한다. ㅋ

 

 

 시노짱은 핥아주는 걸 좋아해서 집사의 슬리퍼도 흥건하게 관리해준다. ㅋㅋㅋㅋ 우리 보리도 나 핥아주는 거 엄청 좋아했는데... 까슬까슬한 혀로 아기 고양이 핥아주듯이 말이다. 처음엔 그 까칠함이 어색하지만 몇 번 당하다(?)보면 중독되고 만다.

 

 

 

 

캔 따는 소리에 민감한 건 보리나 톤짱, 시노씨도 마찬가지구나. ㅋㅋㅋㅋ 우리 보리도 흑관 진짜 좋아했지. 그래서 보리 있을 때는 참치캔도 제대로 못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히 안방에 나뒹굴고 있던 녀석이 캔소리나면 홍길동보다 더 빠르게 내 옆에 있곤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집사를 '캔따개'라고 부른다고... 집사만큼 잘 어울리는 별명인 듯. 

 

 

냥이는 또 다른 냥이를 부른다는 말은 사실인 듯. 혼자서도 잘 지내는 냥이지만 함께라면 더 매력을 발산하니까. 아우 이뽀라~ 지금은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그래 돈 때문이다! 사료, 간식, 모래, 장난감 그리고 각종 접종비용이 만만치 않다.) 못 키우지만 밤톨군이 자라서 사춘기가 오면 또 모르겠다. 톤짱과 시노씨를 보다보니 지금 당!장! 무릎냥이가 필요했다. 흑흑 이렇게 매력적인 녀석들이라니... 냥이들의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고양이 책들을 꺼내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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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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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뚫린 것처럼 허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츠바키 문구점>. 문구를 파는 평범한 가게처럼 보이지만, 대대로 편지를 대필해온 츠바키 문구점을 중심으로 가마쿠라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라니... 구멍 난 곳을 따뜻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었다. 

외국에서 방랑하던 포포는 대필가 집안의 대필가였던 선대가 돌아가신 후 고향 가마쿠라로 돌아와 츠바키 문구점을 물려받는다.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대필가로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다. 대필을 의뢰하기 위해 찾아오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오는 이들. 그들의 진심이 담기도록 필체와 어투, 필기도구, 편지지와 봉투 심지어 우표 하나까지 신경 쓰는 포포. 이렇게 세심하게 대필하는 포포가 사춘기 소녀였을 때는 선대에게 반항하고 연을 끊다시피하고 외국으로 나가버렸다. 할머니라고 다정하게 불러본 기억이 없는 포포가 대필업을 하면서 그제야 할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데...

대필 의뢰한 내용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편지를 쓰는 포포의 모습을 보면 장인정신이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이런 편지를 받아보면 기분이 어떨까? (이혼을 알리는 편지나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는 사양한다.) 편지를 써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더불어 편지를 받은 기억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텍스트를 주고받는데 읽고 읽고 또 읽고, 예쁜 편지지를 고르며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설레면서 적어내려간 최근에 기억이 없다. 편리한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가 주는 추억을 찾는 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예전보다 지인들과 연락하기가 훨씬 쉬워졌는데 전보다 더 안 한다. 카톡 프로필을 보며 SNS 사진을 보며 '잘 지내는구나.' 확인을 할 뿐 전화나 문자는 전보다 더 안 한다. 츠바키 문구점을 읽으면서 포포처럼 정성껏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아니 정성껏 편지를 써주는 포포에게 대필 의뢰를 하고 싶다.

 

문구 덕후까지는 아니라도 문구를 사고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츠바키 문구점>에서 내가 몰랐던 도구가 소개되어 호기심이 퐁퐁. 소노다씨가 첫사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소꿉친구인 사쿠라씨를 위한 편지를 의뢰한 대필 도구로 포포는 유리펜을 골랐다. 유리펜? 처음엔 유리 위에도 쓸 수 있는 사쿠라 겔리롤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펜 끝에 여덟 개의 가는 홈이 있고 그곳으로 잉크를 빨아들이는 펜이란다. 검색해보니 너무 예쁘다.(글라스 딥펜으로 검색하면 나온다.) 이렇게 맑고 예쁜 펜으로 잉크를 찍어 글씨를 쓰면 어떤 글씨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유리창에 비치우는 빗방울 같은 청량감 있는 글씨를 써 내려갈 것 같은 느낌. 원고지에 유리펜을 글씨를 쓰고 싶어진다.

사각사각 글씨 쓰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알려준 포포에게 고맙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과자 선물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럴 때 대부분은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가게의 과자를 들고 가지? 개중에는 과자 만들기가 특기여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가는 살마도 있을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게에서 산 과자에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
선대가 물었지만,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쩍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p.p.53~54

"있지, 마음속으로 반짝반짝, 이라고 하는거야. 눈을 감고 반짝,반짝,반짝반짝, 그것만 하면 돼. 그러면 말이지, 마음의 어둠 속에 점점 별이 늘어나서 예쁜 별 하늘이 펼쳐져." p.156

그렇게 수많은 대필을 했으면서, 선대는 절대 자신을 잃지 않았다. 나라고 하는 것을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사라져도 여전히 남긴 글씨 속에서 맥맥이 살아 있다. 거기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글씨란 원래 그런 것이다. p.166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순간, 톡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잘 다녀오렴.
마치 내 분신을 여행 보내는 기분이었다. 편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다.
부디 큐피에게 무사히 도착하기를.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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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창녀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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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판에서 영화 <넬리>를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낮에는 소설가, 밤에는 매춘부라는 자극적인 설정에 관심이 생겨 글을 읽었다. 심지어 작가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거라니...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넬리>의 원작인 <창녀>를 만났다.

소설을 읽는 동안 관음적인 나를 발견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기대한 건 그녀가 받았던 소설 속의, 아니 실제 그녀의 손님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모르는 세계가 궁금했고 그래서 읽었던 그녀의 책에서는 성적 흥분 가득한 이야기 대신 그녀의 자조적인 독백이 가득 차 있다.

사실 읽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 이런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한 끊임없는 문장들을 계속 읽어나가기가 힘이 들었다. 숨표가 아무리 내가 읽는 동안 숨을 쉬게 하려고 계속되어도 도무지 쉼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은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야? 그래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건데? 그녀는 내 외침은 듣지 못하고 또다시 숨표 뒤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쏟아내는 단어들이 떠난 뒤에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었던 작은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작가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부모의 자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로 글을 쓰고, 남자에게 몸을 주었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다. 사랑을 받고 싶다면 제일 먼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알고, 응원하고, 보듬어주고, 실망하고, 배신하는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을 알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해 내가 아닌 신시아로 불리고, 신시아를 연기하고... 섹스도 글쓰기도 그 어느 것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자와의 계약을 집어치운 다음, 그토록 내가 숨겨왔던 것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했지, 타인이 기대하는 무엇이되고자 하는 욕구, 나를 결코 가만 놔두지 않고 매춘이라는 극단적인 지경으로까지 내몬 유혹에의 욕구 뒤에 숨겨진 그 무엇을 급기야는 털어놓고 싶었던 거야, 하여 내가 글을 쓸 때마나 누군가의 환심을 살 필요성이 불거져나온다면, 그건 그 이면에 있는 것을 말들로 치장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하며, 굳이 멋진 글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몇 마디 말만 덧붙이면 남들이 읽기에도 충분한 글이 되겟기에 그런 것이지. 결국, 내가 끝장냈어야 할 그것은 글을 쓰면서 오히려 더더욱 힘을 얻어갔고, 매듭이 풀렸어야 할 것들이 갈수록 더 꼬이고 조여져서 마침내 온통 매듭 천지가 되어버려, 그 매듭으로부터 내 글쓰기의 고갈되지 않을 광적인 원료가, 잠만 주무시는 어머니와 세상의 종말을 고대하시는 아버지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나의 투쟁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 p.p. 24~25

타인의 천박함 앞에서 느끼는 씁쓸한 비애, 똑같은 장벽을 끊임없이 두드리지만 똑같은 지점에서 부서지고 마는, 오직 그 하나의 동작으로 요약되는 인생, 그리하여 매번 똑같이 암울한 상황만을 자꾸만 반복하고 결국에는 똑같은 결론에 봉착하고야 마는, 그런 참담한 인생 앞에서 느끼는 연민의 정이 아니라면 무얼 속으로 궁시렁거릴 게 있겠냐구,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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