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창녀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네이버 영화판에서 영화 <넬리>를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낮에는 소설가, 밤에는 매춘부라는 자극적인 설정에 관심이 생겨 글을 읽었다. 심지어 작가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거라니...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넬리>의 원작인 <창녀>를 만났다.
소설을 읽는 동안 관음적인 나를 발견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기대한 건 그녀가 받았던 소설 속의, 아니 실제 그녀의 손님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모르는 세계가 궁금했고 그래서 읽었던 그녀의 책에서는 성적 흥분 가득한 이야기 대신 그녀의 자조적인 독백이 가득 차 있다.
사실 읽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 이런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한 끊임없는 문장들을 계속 읽어나가기가 힘이 들었다. 숨표가 아무리 내가 읽는 동안 숨을 쉬게 하려고 계속되어도 도무지 쉼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은 여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야? 그래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건데? 그녀는 내 외침은 듣지 못하고 또다시 숨표 뒤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쏟아내는 단어들이 떠난 뒤에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었던 작은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작가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부모의 자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로 글을 쓰고, 남자에게 몸을 주었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다. 사랑을 받고 싶다면 제일 먼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알고, 응원하고, 보듬어주고, 실망하고, 배신하는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을 알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해 내가 아닌 신시아로 불리고, 신시아를 연기하고... 섹스도 글쓰기도 그 어느 것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자와의 계약을 집어치운 다음, 그토록 내가 숨겨왔던 것을 글로 기록하고 싶어했지, 타인이 기대하는 무엇이되고자 하는 욕구, 나를 결코 가만 놔두지 않고 매춘이라는 극단적인 지경으로까지 내몬 유혹에의 욕구 뒤에 숨겨진 그 무엇을 급기야는 털어놓고 싶었던 거야, 하여 내가 글을 쓸 때마나 누군가의 환심을 살 필요성이 불거져나온다면, 그건 그 이면에 있는 것을 말들로 치장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하며, 굳이 멋진 글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몇 마디 말만 덧붙이면 남들이 읽기에도 충분한 글이 되겟기에 그런 것이지. 결국, 내가 끝장냈어야 할 그것은 글을 쓰면서 오히려 더더욱 힘을 얻어갔고, 매듭이 풀렸어야 할 것들이 갈수록 더 꼬이고 조여져서 마침내 온통 매듭 천지가 되어버려, 그 매듭으로부터 내 글쓰기의 고갈되지 않을 광적인 원료가, 잠만 주무시는 어머니와 세상의 종말을 고대하시는 아버지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나의 투쟁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 p.p. 24~25
타인의 천박함 앞에서 느끼는 씁쓸한 비애, 똑같은 장벽을 끊임없이 두드리지만 똑같은 지점에서 부서지고 마는, 오직 그 하나의 동작으로 요약되는 인생, 그리하여 매번 똑같이 암울한 상황만을 자꾸만 반복하고 결국에는 똑같은 결론에 봉착하고야 마는, 그런 참담한 인생 앞에서 느끼는 연민의 정이 아니라면 무얼 속으로 궁시렁거릴 게 있겠냐구, p.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