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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안드라 왓킨스는 첫 소설 출간 기념으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인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의 자취를 따라 나체즈 길을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여행을 도와줄 사람을 물색하던 중 가능한 사람은 뱃살이 허벅지까지 처졌고 세 겹으로 접힌 턱을 가진 80세 아빠 밖에 없다. 결국 아빠의 도움을 받기로 하지만 계단조차 오르는 걸 힘들어하는 게다가 수다쟁이에 염치없는 아빠와 여행하는 건 결코 녹록하진 않다. 34일간 714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그녀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운 아빠... 아빤 내가 열 살 때, 지금의 내 나이에 중풍을 얻고 처음으로 쓰러지셨다. 나에겐 언제나 어른인 아빠였기에 38살이 젊은 나이인 줄 몰랐다.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셨지만 가장이란 무게 때문에 일을 놓으실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12년 후에 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말이다. 아빠와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게 늘 꿈이었다. 아빠가 아프신 후부터 여행다운 가족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젠 이룰 수 없는 꿈으로만 남았다. 누군 꿈을 꾸고, 누군 또 꿈을 이룬다. 아빠의 부재는 사랑하는 사람이 늘 내 곁에 있을 수도, 나도 그들 곁에 늘 있을 수 없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네가 이해해야 한다, 안드라. 내가 하는 것이라곤 일, 일, 일뿐이다. 이 가족을 부양하려고, 널 키우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고 있단 말이다. 난 이 일이 정말 싫다. 평생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일이 지독하게 싫었다." p.100
가장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나는 모른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셔도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할 수밖에 없으셨다. 아빠도 자신에게 안 맞는 일을 하며 매일 속으로 삭히셨겠지. 그래서 결국엔 쓰러지신 걸까. 아빠는 행복하셨을까? 나에겐 처음부터 아빠였기에, 아빠는 당연히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한 건 아닐까.
"이 시기를 즐겨, 안드라.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돌아가시면 다 그리워질 거야."
나는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난 절대로 이 시기가 그립지 않을 거야."
정말로 그립지 않을까? p.118
힘든 시간이 있었다. 아빠의 투병 기간은 아빠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 시기조차 그리울 때가 있다. 간이침대에 앉아 아빠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았던... 아빠는 돌아가셨지만 나에겐 안드라의 부모님만큼이나 나를 걱정하는 엄마가 있다. 나중엔 엄마와의 시간도 그립겠지? 한번 전화를 드리면 30분은 기본으로 핸드폰이 따끈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엄마와의 수다가...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누구에게 소소한 자랑을 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엄마의 공백은 너무나 크다. 솔직하게 엄마와 단둘이 여행할 자신은 없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이번 주엔 엄마 보러 친정이나 가볼까?
아빠가 기적의 아이라면 나는 더욱 기적적인 아이라는 뜻이다. 기적적으로 태어난 삶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야 했다. 내가 그 기적에서 뭔가를 이루려 하고 있으니까. p.42
"알게 될 거야. 곧. 주님이 너에게 자식들을 주시면 너는 바르게 행동해야 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렴. 네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라도 말이야. 절대로 자식들이 아빠 없이 홀로 곤경에 빠지게 내버려 두면 안 돼. 넌 아빠와 다른 사람으로 자라서 엄마가 널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야 해." p.106
처음으로 나는 일정을, 다음 이정표를, 내가 가야 하는 종착지를 잊었다. 내가 있어야 하는 장소에 있었으므로. 나는 그 들판에서 순간순간을 즐겼다. 발의 통증이나 편두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나한테서 풍기는 고양한 냄새도 생각하지 않았다. 들판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순간이 오면 아직 먼 길을 걸어야 한다는 현실이 엄습할 터였다. 눈물 때문에 눈이 따끔거렸다. 나는 아마 끝으로 흘러내린 더러운 눈물자국을 손으로 훔쳤다. p.186
아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이걸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매일매일." "우리가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가죠, 아빠?" "한 번에 한 걸음씩. 내 생각에는 그렇다." "맞아요. 우리는 그렇게 이 여행을 끝낼 거예요. 한 번에 한 걸음씩... 아니면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고요." 아빠와 나는 함께 큰소리로 웃었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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