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창가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하다 보면 성격과 걸음걸이도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급한 대로, 느긋한 사람은 느긋한 대로... 사람들이 내 걸음은 아장아장 걷는 것 같다고 하던데(걷는 걸 거울을 보며 연습하긴 하지만, 솔직히 왜 펭귄처럼 걷는다고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유아기와 다를 바 없는 사고를 하는 걸까? 자연스럽게 무너짐과 균형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티가 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먼저 외출의 귀찮음을 극복해야 하지만). 그날의 공기, 그날의 풍경, 그날의 냄새를 만끽하는 게 좋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들고 산책을 한 날은 은행의 냄새가 나를 곤란하게 했지만... 보통의 나는 헤드폰을 끼고 팟캐스트를 걸으며 걷는다. 패널들의 대화에 파고들어 긍정과 부정을 오가곤 한다. 내가 걷는 이 길을 철학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이게 무슨 말일까?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거듭하는 것.
바로 이것을 두고 걷는다고 한다.
균형을 잡고 땅 위를
또한 말 속을
그리고 생각 속을 이동하는 것.

 

책은 산책할 때 듣는 음악처럼 산책 사이에 전주곡과 간주곡 그리고 후주곡이 있다. 그리고 엠페도클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그리스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철학가들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혼자 걷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좋아하는 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는 건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다만 이번 산책은 생각이 좀 많은 분들과 함께 하기에 만만치 않다는 걸 명심해두어야 한다. 상냥한 철학자도 있고, 역시나 불친절한 철학자도 있다. 나에겐 고대의 어르신들과 함께 걸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뒤로 갈수록 이름은 들어본 분들이라 반갑기는 했으나 내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산책도 사유도 체력이 되어야 가능한 것인가 보다.

 

누구도 당신 대신 걸을 수 없다.
당신을 위해 철학 할 수도 없다.
걷기는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그에 대해 말할 수는 있다.

 

최초의 인간은 걸었고, 마지막의 인간도 걸을 것이다. 최초의 철학자 역시 걸었고, 이 책의 마지막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걸었다. 왜 비트겐슈타인이 마지막일까? 그는 철학 밖을 향해 걸으려고 했고, 그 뒤에 남겨두려고 했다. 자유롭게 거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걷기와 생각의 자유를 준 비트겐슈타인처럼 내일은 자유롭게 걸어봐야겠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생각과 걷기가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는 가설이 나타난다. 생각도 거의 넘어지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다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를 파기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 아닌가? 우리 사유들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인 검토는 그것들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방식일지 모른다. 반박과 비판적인 분석은 우리가 명백하고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을 필연적으로 불안정하게 흔들고 휘청거리게 만든다. 한 가지 사유를 검토한다는 건 무엇보다 그것의 확실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유는 자기방어를 하고, 안정을 회복하고, 조금 더 먼 곳에서 새로운 지지대를 찾는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반작의 공격이 이어지는 식이다. p.22

"삶이 쾌락이나 무기력에 빠졌다면, 어떤 칭찬할 만한 행동도 삶의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우리는 그동안 삶이 걷는 걸 보지 못했기에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버린 것으로 느낀다." p.65

루소 이후로는 여정이 중요해졌다. 유용성보다 즐거움이 중요해졌다. 이후로 그에게 자극받은 낭만주의자들이 산책을 예술로,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거의 삶의 이유로 만든다. 어딘가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한 걷기, 이것이 혁신이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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