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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JOB 다多 한 컷 - 고생했어, 일하는 우리
양경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팀 내 도서 담당을 맡은 적이 있었다. 매달 팀에 필요한 책을 구매하고, 책 대여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번 달은 무슨 책을 살까?' 신나게 고민하던 내게 눈에 띄던 책이 있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화끈한 제목의 책이었다. 이렇게 직설적인 책이라도 괜찮을까 걱정을 하다가 그냥 사버렸다. 솔직히 매번 나에게 보람찬 일을 하니 얼마나 좋냐고, 네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아냐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른 채 거짓말하는 차장님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책도 참 안 읽던 우리 팀에서 이 책은 언제나 인기였다. 사람 마음 다 비슷한 거지. 결과적으로 난 팀장님에게 찍힌 것 같았지만...
그림왕치기 양경수 작가가 이번엔 <잡다한 컷>(JOB 多 한 컷)으로 돌아왔다. 양경수 작가의 그림을 볼 때마다 이분은 정말 라임 학원이라도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멋진 말장난이 수두룩하다. 말장난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너무 웃프다. 그래서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꿈이 뭐니?"라는 말을 많이 듣기고 하고, 많이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각종 자격증을 따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자원봉사 등으로 이력서를 빼곡하게 채운다. 그렇게 해서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현실과 타협해서 적당한 직장에 취업하기도 한다. 높다랗게 쌓은 스펙 혹은 학자금 대출로 이룬 꿈은 결국은 사노비 혹은 공노비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번 달 매출로 어떻게든 메꿔놓은 돈으로 월세를 내야 하는 가게 주인이거나...

예전엔 몰랐다. 차곡차곡 쌓아서(그래도 위태로운) 내 이력서 아래엔 언제나 부모님이 계셨다는걸... '아빠가 있잖아... 엄마는 괜찮아...'말의 뜻을 몰랐다. 내가 잘나서 쌓고 올라간 줄만 알았다. 남들에 비해 부족한 스펙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조차 엄마, 아빠의 희생으로 쌓은 건지 몰랐다. 울컥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저 그림이 보여주는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딸자식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초라한 어깨에, 굽은 등에 쌓인 무게를 막상 그림으로 대하자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내 어깨에, 등에 밤톨군을 올려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영심이 같은 우리 밤톨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올려놓은 꺽정씨.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구두굽이 다 닳을 정도로 일하는 꺽정씨가 오늘따라 더 고마울 뿐이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내가 호강시켜줄게요.


책 제목처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의 그림들이 있다. 택배 기사님, 소방공무원, 스튜어디스, 사회복지사, 은행원, 미용사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기 쉬운 평범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분들의 신발을 신고 그 삶을 대신 살아본 적이 없어 무심코 지나갔던 그들의 일상을 접하니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들이 덧대요 졌다.
요즘 물컵 대신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조현민 전무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그녀의 악다구니가 넘치는 동영상 속의 목소리를 듣고 기함을 토한다. 갑질 하는 그녀를 손가락질한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한다고 분통해한다. 우리는 갑질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소유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갑질은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다.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 식당에서, 콜센터에서... 보통 사람이 보통 사람에게 갑질을 한다. 큰 금액도 아닌 백원, 천 원, 만원 때문에... 평일에 오는 산타인 택배 기사님이 받는 돈은 건당 7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서 본인의 차량 유지비, 차량 관리비, 통신비 등은 다 기사님이 부담하신다고 한다. 게다가 택배 분실이나 파손, 변질 등의 문제도 기사님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큰 기쁨을 주시는 택배 기사님이 부재 시마다 보내주시는 배송 완료 문자에 무신경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늘 감사하다고, 좋은 하루 되시라고 문자를 남겼지만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만나 뵐 때 음료수라도 꼭 전해드려야겠다. 그리고 더 밝은 얼굴로 꼭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오늘도 일상을 채워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우리는 다 누군가의 자녀이자, 형제자매이자, 부모며, 친구니까. 그들이 아프면 우리에게도 아픔이 돌아온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자주 하던 어깨 안마처럼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