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구성된 책의 의미, 권위를 벗어나 책이라는 사물과 직접 마주하고 냄새맡고 애무할 것.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의 독서 행위를 즐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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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앎과 무지, 경험과 관념, 실존과 텍스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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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대화는 이러했다. 그것은 세태의 어둠을 밝혀줄 언어의 영원한 승리이자,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침묵이었다. 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온갖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는 결코 이 시대에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 세계가 우리의 말에 담겨 있으며, 온 세상이 우리의 침묵으로 밝혀진다. 우리는 현명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현명함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이 우울함은 무슨 까닭일까? 손님들이 가고 집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이 침묵은? 단지 설거지 걱정 때문일까? 게다가……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십 킬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흠뻑 취해 있던 그 현명함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는 차 속의 부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마치 긴밤의 취기가 서서히 가시는 떨떠름한 뒷맛처럼, 혹은 마취가 풀려날 때의 감각처럼, 의식이 깨어나면서 조금씩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느낌 같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한 대화 속에 진정한 우리는 없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고통스런 자각인 것이다. 우리는 거기 없었다. 거기엔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있었으며, 논지 또한 확고했으나─게다가 그 논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주장한 바가 전적으로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명함이라는 자기 최면을 부단히 연마하느라 또 하루 저녁을 탕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서서히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36-37)

아! 그러고 보니 늘 화젯거리가 궁하기 마련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간의 별 볼일 없는 모임에서는 으레 독서가 대화를 이어주는 주제의 지위로 격상되곤 한다. 아니, 독서가 의사소통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해야 할지도! 책 속의 그 숱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고지식한 무상성이란 결국, 어느 덜 떨어진 위인에게 내숭형 숙녀를 낚을 빌미가 되어줄 뿐이다. "혹시 셀린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읽어보지 않으셨는지요?"
설령 이보다 심하지는 않을지라도 절망적이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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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일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며, 무의식적으로 본의와 다른 표현을 내뱉고, 자신조차 그 단어를 왜 뱉었는지 의심하며, 타인들은 그의 말과 존재를 의심한다. 상황은 겹겹이 아귀를 물고 악화된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약한 이들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궁지에 내몰린 주인공들은 타인들의 삿대질과 다그침 앞에 뒷걸음질치며 존재의 구석에, 벽에 부딪치고, 그렇게 존재의 존재를 확인할 것을 요구받는다.

2. 찰나의 미묘한,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감정이랄 수도 없는 정신의 틈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탁월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그 어디쯤을 이렇게 텍스트로 길어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복합적인 층들이 일순간 찾아오는 모순 덩어리라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잠깐 건너가려다 푸스슥 꺼지는 찰나라서 감정이라 부르기도 힘든 그 잠깐의 내면을 어떻게 이렇게 풀어내는지.

3. 많은 단편들이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야기와 인물, 상징들은 평행선으로, 삼각형으로, 액자식으로, 한바퀴 돌아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단편이 끝날 때마다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오래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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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벼슬길에서 빠져나와 은거하며 서재의 벽에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고요함만한 것이 없고, 졸렬함을 벗어나는 데는 부지런함만한 것이 없다"는 구절을 써붙이고 끊임없이 독서에 매진했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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