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읽는 데 작용하는 개인과 사회의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찰한 사람이 쓴 책이다. 바야르는 책을 유동적 맥락에 위치한 하나의 오브제로 위치시키고 이를 대화 소재로 다루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2. 바야르는 읽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 고찰부터 시작한다. 읽는다는 것은 주관적이기에 본래 모호한 행위이다. 시간에 따른 망각까지 끼어들면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경계는 더더욱 불명확해진다. 그 불확실성으로부터 탄생하는 담론의 지평과 창작의 공백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수치심 없이 대화할 수 있다.
3. 책을 얘기할 때, 그것은 대부분 화자와 맥락에 의해 좌우되는 하나의 구실이거나 수단일 뿐이다. 실제로 책에 대한 대화는 대부분 그 책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대한 것이며, 책과 책의 지도를 아는 것만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4. 책을 읽은 사람도 그 책의 단편만을 기억하며, 끊임없는 망각에 처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외의 모든 책에 대한 비독서를 의미하므로 사실 독서란 망각과 비독서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5. 책에 관한 대화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텍스트의 타당성을 선험적으로 확보해주는 권력이나 지위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지 않고 책에 관해 얘기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며, 그것이 책과 독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본질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6. 텍스트를 수용하고 재구성하는 개인 각각의 내면의 책이 존재하며, 우리가 읽는 책들은 이 내면의 책의 작은 조각들에 불과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가 다른 책을 기억한다.
7. 이렇게 해석의 다양성, 텍스트의 유동성, 책의 매개성, 독자의 주관성에 기반하여 우리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다.
8. 비평 자체가 책과 분리된, 그저 책을 모티브로 한 독립적인 예술 활동이란 것을 잊지 말라.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라. ‘책은 고정적이고 실재하며 텍스트는 신성하다‘는 미신에서 벗어나, 주객전도된 상황을 원위치시켜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동하는 유령의 책을 매체로 삼아 내 내면의 책을 서술하는 일에 더 매진하라. (21.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