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16)

그 순간 냉소주의자는 단지 특별히 높은 기준을 가진 이상주의자일 뿐이란 금언이 떠오른다. (22)

그러나 당연히, 그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그들은 진중한 사람들이다. 커스틴은 현재 ‘지자체 사업의 조달 방법‘이란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고 다음 달에 던디에 가 그곳 공무원들 앞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라비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공간 구축‘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럼에도 별것 아닌 일들이 두 사람 사이에 계속해서 놀랍도록 자주 끼어든다. 예를 들어, 잠잘 때 가장 적합한 온도는 몇 도인가?
(…) 다른 쟁점을 살펴보면, 평일 저녁 밖에서 식사(특별한 약숙)를 하려면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할까? (73-74)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04)

운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강인함, 결국 눈물을 멈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녀에겐 작은 슬픔이라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녀는 다 부서지고 나면 다시 조각들을 어떻게 짜 맞추어야 할지 영영 모를 수도 있다는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곱 살의 어린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상처를 마비시킨다. (112)

그렇게 해서 세상은 에스터의 유년기 동안 일종의 안정성을 획득한다. 나중에 그녀는 그 안정성을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고 느낄 테지만, 사실 부모의 확고하고 현명한 편집 덕분이었을 뿐이다. 세상의 견고함과 지속성이란 것은 인생이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변화와 파괴가 얼마나 상시적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는 환상이다.
(…) 에스터에게 그 카펫은 맨 처음 기기 시작할 때 느꼈던 태고의 감각으로 남을 것이다. 그녀는 그 독특한 냄새와 감촉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 카펫을 결코 가정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확고부동한 토템으로 미리 예정하지 않았다. 사실은 에스터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중심가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신뢰가 안 가고 얼마 안 가 문을 닫은 지역 판매점에서 다소 급하게 주문한 물건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에 안심되는 면면들 중 일부는 모든 것의 허약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 (154-155)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란 쉽지 않은 선례다. 본질상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쏟은 노력을 감추는 작용을 한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의 복잡한 사정과 슬픔을 감추고,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이익, 친구, 관심사를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이 작은 존재를 한동안 우주의 중심에 높는다. 부모의 사랑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이가 괴롭고 두려운 심정으로 어른 세계의 진짜 척도와 불편한 고독을 이해해야 할 그 날을 위해서다. (155)

그가 침대 발치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수는 옥타브를 끌어올리며 언제나라는 단어를 되풀이하는데 그의 영혼 속으로 곧장 들어오는 외침을 듣는 듯하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그런 음악을 멀리했다. 삶의 제약들이 결연함과 무덤덤함을 요구할 때 황홀에 도취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205)

이 순간 그는 자기 연민, 그에게 일어난 일이 드물거나 부당하다는 그 얄팍한 믿음을 벗어났다. 자신이 순수하고 유일무이하다는 믿음도 어느새 잃어버렸다. 이건 중년의 위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침내 30여 년이나 늦게 사춘기를 벗어난 것이다.
(…) 그래, 실패란 이런 것이다. 주요 특징이라면 침묵이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일도 전혀 없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실패를 엄청난 재난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왔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패는 사실 겁먹은 무위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모든 것, 심지어 굴욕에도 익숙해진다. 정말 견디기 힘든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이는 습성이 있다.
그는 이미 특별한 이득도 이렇다 할 결과도 내지 못한 채 삶의 은혜를 너무 많이 써버렸다. 세상에 온 지 수십 년이 흘렀거남ㄴ 단 한 번도 땅을 일구거나 배고픈 채 잠들지 않았으며 잘못 자란 아이처럼 자신의 특전을 대부분 손도 대지 않고 방치했다. (265-266)

자연은 우리에게 성공을 향한 집요한 꿈을 심어놓았다. 인류에게 그런 분발심이 내장된 데에는 분명 진화상의 이점이 있다. 부지런함은 우리에게 도시, 도서관, 우주선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 충동 때문에 개인의 평정은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인류 역사에서 천재의 몇몇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범인들이 매일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과거에 라비는 어떤 것이든 흠 없이 완벽해야만 소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차가 긁히면 운전이 즐겁지 않았다. 방이 지저분하면 쉴 수 없었다. 연인이 그의 어떤 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 전체가 가식이 되었다. 이젠 ‘충분히 좋은‘ 게 충분히 좋다. (267)

정착을 하기 전에 몇 명의 애인을 사귀어보는 것도 이 깨달음을 깊이 새기는 데 도움이 된다. ‘제 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조금씩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직접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견할 기회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279-280)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283-284)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싸움과 갈등은 금세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한 아이는 기분이 나빠지고, 커스틴은 그가 부주의하게 저지른 일에 성마르게 한마디 내뱉고, 그는 직장에서 직면할 힘든 문제들을 떠올리고는 두렵고 지루하고 망친 것 같고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그는 이 사진의 최종 운명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미래에 이 사진이 어떻게 읽힐지, 보는 사람이 그들의 눈에서 무엇을 찾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진은 몇 시간 뒤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나기 전에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일까? 또는 커스틴의 외도가 밝혀져 그녀가 집을 나가기 한 달 전에, 또는 에스텉의 증상이 시작되기 한 해 전에? 또는 이 사진이 거실의 선반에 수십 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먼지 낀 액자에 담겨 있으면서, 부모에게 약혼녀를 인사시키기 위해 돌아온 윌리엄이 무심코 집어 들기를 기다리게 될까? (291-292)

불확실성을 의식하는 만큼 라비는 더욱 열렬히 이 햇살을 붙잡아두고 싶다.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모든 것이 명료하다. 그는 커스틴을 사랑하고, 그 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고 인내하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허약하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잠깐 동안 만족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 (293)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 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이 늦은 오후 여름 햇살 아래 스코틀랜드의 산비탈에서 경험한 짧은 순간─그리고 그 이후에도 때때로─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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