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는 것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누가 알겠어, 이것들이 미래에는 누군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편지가 될 수도 있잖아?" 나는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부고 기사 쓰는 일을 한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괴짜들이 차마 버릴 수 없었던 편지와 물건을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런 편지나 물건이 없다면 역사도 없고 기억도 없다. (p.270)

그는 단순히 책을 정리하며 남은 형기만 세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우아한 사서의 태도, 제목을 스치는 그의 손길, 부드럽게 먼지를 털고 책을 매만지는 방식, 선반에 책을 꽂는 주의 깊은 세심함, 그의 침묵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만들어낸 질서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그려왔던 웅대한 계획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세련되어지는 작고 우아한 동작들을 반복하는 데 있었다.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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