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마도 관점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욕구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한,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끊임없이 예측하면서 사는 한, 세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반면 더 이상 자기도 없고 타자도 없는 순간, 그때부터 시야가 넓어지고 수많은 소실선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듯이 세상은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감미롭도록 다양하게, 아득하게 나타난다. (들어가는 글, 12) - P12

그러나 다시 한 번 카프카가 우리에게 길을-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진정한 길을"- 열어준다. 왜냐하면 카프카는 눈에 띄게 행동하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세계를 보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들어가는 말, 27)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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