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책이라 의무감에 다 읽었고, 그냥 그랬다. 여러 인물들이 대부분 대립항으로 단순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나, 화자가 자신은 마치 입체적으로 세계를 관조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소설 내내 다른 인물과 그의 삶에 대해 자꾸 단정짓고 어떤 사소한 일이 그의 인생에선 최대의 아픔이었을 것이라느니 하는 재판관 같은 태도가 거부감을 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인물들을 평면적이고 전형적으로만 그린지라, 거기다 쉽게 단정해버린 삶으로 인물을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지라 읽다 보면 지루하다. 화자가 내 아픔이 크니 그저 맑아보이는 타인의 아픔은 축소시켜도 된다는 태도를 거듭하는 게 열패감 때문이라면 오히려 이해하겠지만 작가가 그것까지 의도한 것 같진 않고, 그게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 잠언처럼 얘기하는 부분도 거의 공감이 안 가는지라, 그저 가슴 찌르르함을 선망하던 안진진의 나이에 읽었다면 이 책을 좋아했을지도.. 모순 출판 당시 유행했던 쿤데라 냄새도 난다. 그리 비슷하진 않지만.

결말도 소설 내내 작가가 열심히 아주 깔끔하게 그려놓은 평면적 이분법의 세계를 붕괴시켜 새로 조립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세계관 그대로 방치한 채 끝을 내니 찜찜하고, 이게 뭐지 싶다.

나의 상처와 열등감을 설명하기 위해 무결한 삶을 사는 타인을 가상에 띄우고는 그것을 부정하여 ‘열등한‘ 내 삶을 긍정하는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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