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고독을 빼앗지 않으면서 고립으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고, 동시에 나에겐 나만의 우정이, 쾌락이, 일이, 근심이 있었다. 원하는 대로 그에게 어깨를 기댄 채 다정하게 저녁을 보낼 수도, 오늘처럼 방안에서 소녀처럼 홀로 지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90) - P90

나는 로베르가 평화 속에서 느끼는 권태를 이해했다. 이 평화는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채 삶 자체만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의 출입문 앞에서 추위와 어둠을 다시 느끼며, 나는 한때 우리가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추위와 어둠에 맞섰던가를 회상했다. (136) - P136

"고독을 강제로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그보다 더 서투른 방법은 없어요." (155) - P155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옷을 잘 입을 줄 알고, 스스로를 과시할 줄 알고, 허영의 작은 기쁨들이나 강한 관능의 흥분을 알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무 늦었어. 문득 내 과거가 왜 때때로 타인의 과거처럼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지금의 내가 타인이니까. 서른아홉 살의 여자, 나이 든 여자니까. (157) - P157

앙리는 말했다. "너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야."
그는 나딘을 더 꽉 안고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다. "내가 널 행복하게 해줄게." 그 순간 그는 그러고 싶었다. 인생을 걸게 하는 한순간의 욕망. 그러나 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아. 과거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거야.‘ (196) - P196

‘필요한 건 시간이야!‘ 앙리는 잠에서 깨어나며 생각했다. ‘유일한 문제는 내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아파트의 문이 막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외출했다가 벌써 돌아온 폴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불을 걷었다. ‘나 혼자 산다면 몇 시간쯤 더 여유가 생길 텐데!’ 쓸데없는 대화도, 규칙적인 식사도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길모퉁이의 프티 비야르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간지를 보고 있겠지. 신문사에 갈 때까지 일을 하고,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고, 일이 끝나면 얼른 밤참을 먹은 다음 밤늦게까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성공적으로 《레스푸아》를 이끌면서 소설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238) - P238

하루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일, 피해야만 하는 진실, 거부해야 하는 추억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375) - P375

앙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거대한 강연장을 개인의 방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앞에 있는 5,000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5,000배가 된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는 거의 대화의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429) - P429

마치 마을이 다시 한 번 불타는 양 대기가 뜨거웠다. 건초더미며 관목 아래마다 사람들이 뒹굴고 있었다. 남자들은 장례식의 겉옷을 던져버렸고, 여자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상의의 단추를 풀었다. 노랫소리와 웃음소리, 간지럼을 태우는 듯 작은 비명들도 들려왔다. 그들이 달리 뭘 할 수 있을까? 술 마시고 웃고 서로 간지럽히는 것 말고는, 살아 있는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82) - P482

열렬한 독자는 자신의 감탄을 반드시 표현해야만 한다고 믿는지, 어떤 이는 불면증의 묘사에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묘지에 대해 서술한 문장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전부 무심히 써 내린 의미 없는 구절들이었다. 기트방타두르는 비난을 담은 어조로, 왜 그토록 형편없는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는지 묻고는 그 주인공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 사람들은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해 정말 까다롭군!‘ 앙리는 생각했다. ‘하나의 결점도 그냥 지나치질 않아. 게다가 정말이지 모두가 이상한 방식으로 읽고 있어! 대부분의 독자들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대신에 맹목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모양이야. 때때로 단어 하나가 그들의 마음속에 울려 아무도 모르는 그들의 추억을 건드리고 향수를 자아내거나 어떤 이미지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했다고 믿으면 잠시 멈춰 자신을 비춰본 뒤 황급히 떠나는 거야. 독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562-563) - P562

그들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 생각하는 것에도 흥미가 없고, 그들이 억지로 견디는 권태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관심 있는 일이라곤 꾸며낸 유명인사가 되는 것, 직업으로 성공하는 것뿐이야. 저들은 더 가까이에서 질투하기 위해 서로 어울리고 있는 거야. 끔찍한 족속이군. (564) - P564

사람들은 사마젤이 인간과 사물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그는 자신의 격렬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할 따름이었다. 바로 이 격렬한 활력에만 그는 도취해 있었다. 이 얼마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게다가 상대가 누구든 말이다! 늘 외식을 즐기는 것도 그의 성정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보다 목소리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을 어떻게 진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브뤼노와 모랭은 진지했지만 우유부단했다. 바로 라솜이 표현했던바, 개인주의를 희생하지 않은 채 스스로 사회에 공헌한다고 느끼는 지식인들이었다. ‘나처럼.‘ (305)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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