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의 작품은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해서 더없는 총체적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이제 더없이 부분적인 방식으로 전화벨 소리와 갈비 구이 사이에서 받아들여진다. 한쪽에서 작가는 영혼과 마음, 예술, 괴로움, 고통을 주려하지만, 다른 쪽에서 독자는 그 모든 걸 원하지 않거나, 혹은 원한다 해도 그저 기계적으로 지나치면서, 그러니까 다음 번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만 원하는 것이다. 삶의 자질구레한 현실들은 우리를 파괴한다. 말하자면 거대한 용한테 맞서려고 하는 사람이 작은 아파트의 개 앞에서는 설설 기는 상황인 것이다. (113-114) - P113

피아니스트가 단상에서 쇼팽을 연주할 때 여러분은 그 음악의 마법이 한 천재 예술가의 천재적인 연주를 통해 청중들을 열광시켰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열광한 관중은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쇼팽이 천재였다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만큼 열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흥분한 관객이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치고 날뛰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누구나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이 놀라운 희열과 지극한 감동을 느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타인을 모델로 하여 자기의 감동이 커가는 것이다. 사실은 음악회에서 어느 누구도 직접적으로 음악에 빠지지 않는다. 청중들은 각자 자기 옆 사람을 모델로 함으로써 결국 모두가 음악에 도취된 기쁨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분명 한 집단의 사람 모두가 서로서로 흥분시킨 연후에야, 이 외적 신호들이 그들 내부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우리의 감정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123-124) - P123

인류는 신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 중에 일부를 선택해서 (하지만어느 누가 그 선택을 둘러싼 상황을 깊이 파고들어 가고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작가들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달달 외우며 배우기 시작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비밀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맞추어서 반응한다. 만일 그만한 에너지를 다른 예술가를 판별해 내는 데 쓴다면, 분명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호메로스가 될 것이다. 여기서 여러분은 온갖 종류의 수많은 요소들,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만큼 수많은, 대부분 미학 외적인 요소들이 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의 위대성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와 예술의 은밀한 관계는 이렇게 음침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걸 순진하고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요약할 것이다. "영감이 떠오른 시인이노래하고, 열광한 청중이 귀를 기울이나니…" (124) - P124

생각나는 작가가 한 명 있다. 그는 결코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성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 자신의 미성숙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자기가 형식을 지배하지 못했음을, 올라는 가지만 정상에 이르지는 못할 것임을, 스스로를 실현하려고 하지만 실현에 이르지 못할 사람임을 너무도 잘 아는 것이다. 혹여 언젠가 말도 안 되는 불완전한 작품을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만일 그런 날이 온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훌륭해! 정말 멍청한 걸 썼어! 하지만 말이야, 난 지혜롭고 완전한 작품만을 쓰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는데, 뭐! 이렇게 나의 어리석음을 표현했고 그래서 너무 즐거워! 나한테 쏟아진 비난과 혐오감은 바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를 다듬고 나를 그 무엇인가로 다시 창조하고, 그렇게 해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거야."
여러분도 알다시피 건전한 철학을 지닌 작가는 내면적으로 너무도 굳건하기 때문에 어리석음이나 미성숙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는다. 여러분 같으면 이미 두려움에 짓눌려 내면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도 이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앞을 꼿꼿이 바라보면서 거리낄 것이 없다. (128-129) - P128

그가 계속 주장하면 그녀는 거부했고, 그가 애원하면 그녀는 높이뛰기를 하러 갔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이 훈장이 얼마나 교묘하고 능숙하게, 단 한순간도 훈장으로서의 태도나 학자연한 원칙을 파기하지 않으면서, 단지 대조와 반대 명제의 힘으로, 여고생과의 관계를 즐기는지 진정 놀라울 정도였다. 훈장으로서의 핌코라는 인간 자체가 그녀 속의 여고생을 자극했으며, 또 여고생으로서의 주트카라는 인간 자체가 그의 속에서 훈장을 자극했던 것이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질투가 났다. 물론 나도 반대 명제를 통해 그녀를 흥분시켰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홍분시켰을 때,맙소사, 나는 그녀 곁에서 구닥다리가 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와 똑같이 현대적이 되고 싶었으니까!
(...)
머릿속으로 실컷 그녀를 조롱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을 조롱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경의를 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식의 조롱 안에는 상대의 환심을 얻고 싶은 극적인 욕구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조롱한다면 그것은 바로 조롱의 깃털로 나를 장식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나를 거부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공격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러는 동안 내 낯짝은 더욱 추해지고 혐오스러워졌다. 그나마 그녀가 있는 곳에서는 감히 시도해 보지도 못했다. 그래 봤자 그녀는 어깨를 들썩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젊은 여자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거절당한 사람이 조롱하는 건 하나도 겁나지 않는 것이다. (208-209) - P208

아니면 도망을 가는 걸까? 나는 안다. 저들은 도망치는 거다! 서둘러 그들을 따라갔다. 승리다! 전진, 진격, 공격, 나가자, 덮치자, 잡아라, 죽여라, 깨물어라, 목을 비틀어라, 놓아주지 마라! 그들은 두려웠던 것일까? 겁을 주자! 도망간 것일까? 따라가 보자! ㅡ 하지만 자, 살살…… 살살……. 게걸스러운 거렁뱅이가 의기양양한 승리자로 바뀌면 안 된다. 승리를 가져다준 건 바로 거렁뱅이니까 말이다. (223) - P223

그렇게 아무것도 상관이 없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모든 것을 다 잊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죽어버리고 아직 새로 태어날 시간은 없다면! 오! 진정 죽음을 위해서 살 가치가 있다. 자기 안에 모든 것이 죽어버렸다는 걸, 이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자기 안에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다는 걸, 그 무엇도 섞이지 않았고 들어 있지 않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라면 살 가치가 있다. 그곳에서 멀어지면서 난 내가 그냥 가버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데리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내 옆에, 아니 내 안에, 아니면 내 주위에, 나와 비슷한,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가고 있었다. 나의 성질을 띠고, 나와 함께 간다. 우리 사이엔 사랑도 증오도 욕망도 환멸도 추함도 아름다움도 웃음도 신체의 일부도 없다. 그 어떤 감정도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293-294) - P294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모부의 시가에서 재가 떨어졌다. 이모부는 무언가 적당한 말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형제가 된다……. 그러니까 민중과 형제가 된다는 거 말이냐?"
이모부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래서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양상을 부여하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거하여 그 현상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372)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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