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인가 2월, 나는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S에 대한 나의 열정의 시간에 해당되는 일기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이유로 일기장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이 페이지들 속에 『단순한 열정』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진실‘ 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정제되지 않고 암울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어떤 제물 같은 무엇이 있었다. 나는 이것도 언젠가는 출판하리라고 마음먹었다.
(12)

밤에만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을 그가 나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열정을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다. 외부로부터 강요받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움은 나를 열정으로 몰아간다. 나를 온통 지배한다. (36)

요즘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 교정, 수업, 사랑 이야기, 외출, 리셉션, 모두 공허하다. 더는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진실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글과 진실은 혼재한다. (69)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몰려갔다. 지난 추억들을 찾아 노스 핀클리에 들렀다. 나는 문화적이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인생과 시간을 파악하는 것, 즉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다. (100)

내가 S에게 애정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행동들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프랑스인을 사귈 때와는 달리, 그의 문화적 코드를 해독하거나 그를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자리매김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61-62)

"남자들이 나를 헤매게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나를 헤매게 하는 것은 단지 내 욕망일 뿐이다. 즉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육체와의 결합 속에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져버리는 굉장한 어떤 것에 대한 복종(또는 추구)일 뿐이다. (203)

어제, 그와 함께 TF 1의 멍청한 오락 프로그램들, 예를 들어 정확한 가격 알아맞히기 따위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그가 얼마나 지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지를 발견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본 영화는 끝까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어찌나 지루해하는지, 끊임없이 몸을 뒤틀며 보기 드물게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249)

찬란한 가을 햇볕 아래 반짝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작 년을 생각한다. 이 열정으로 내 인생의 걸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것이 걸작품이길 바랐기 때문에 이 관계가열정이 된 것이다. (미셸 푸코 : 최고의 선은 자신의 인생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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