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에피소드에 또 다른 에피소드를 추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때 나는 거울을 모두 깨뜨려버렸다. (10)
그래, 프란츠가 말한다. 그래.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잊는다. 내가 그것을 잊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프란츠에게 ‘그래‘가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면, 행복이 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내 경솔한 주장이 옳았다고, 사랑은 현실 생활 밖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어쩔 수없이 연인들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트리스탄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애물을 하나씩 하나씩 설치했던 것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사실은 에우리디케를 구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던 것이라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자신의 불멸의 사랑을 죽도록 노래로 찬미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프란츠에게 ‘그래‘가 무슨 의미냐고 내가 묻는다면 프란츠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이 평범하게 성장한 자녀나 손자들까지 두고 있는 나이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심장발작의 위험이 있는 그런 나이에 이제야 놓치고 살았던 청춘의 사랑을 만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면,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우스운 일로 여겼을 것이다. 나 자신도 사월 어느 날 저녁 뇌 안에서 양극이 바뀌기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공룡과도 같아서, 모든 세상이 그들의 죽음을 즐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 안나 카레니나, 펜테질레아, 항상 죽음만이 있고, 항상 불가능한 것에 대한 쾌락이 있다. 사람들이 핑계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에 무능력하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청춘의 사랑이 없는 불행한 영혼들에 의해서,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일찍 죽음의 공포 속에서 소리치면서 그들의 사랑을 몸 밖으로 내보냈던 불행한 영혼들에 의해서 그렇게 믿도록 설득을 당하는 것이다. (47-48)
우리가 만났을 때 우리는 아직 늙지 않았었다. 어쨌든 나는 프란츠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프란츠도 나를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젊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젊지 않다는 것은 이야기할 것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82)
프란츠가 페를레베르크 선생님 같은 여자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날아간 토요일에 나는 아테에게 갔다. 아테 생각이 떠오르자 내 안에서 강렬한 그리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테를 향한 그리움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만성적 포기 이전의 시절, 모든 이상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시절, 보통의 출세와 보통의 결혼에 대한 기대가 아직은 혐오와 경멸을 불러일으켰던 시절,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꼭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던, 시작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당시에 아테가 나를 알았다. 그녀는 과거의 나였던 인물을 아직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프란츠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내가 그사이에 되어 있던 여자보다 과거의 나였던 인물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전부가 아니면 무(無)‘, ‘그것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격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그런 문장은 시작이 아니면 끝에 속하는 것이다. (116-117)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거나 진부하게 끝나거나 둘 중 하나야.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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