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 (47)

그리고 이번에는 한수의 몫이 더 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끝내 완전히 동일해질 수 없을 둘 사이의 상처와 고통의 불균형을 남은 생을 통해 가까스로 맞춰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53)

예컨대 근래 새삼스런 주목을 받고 있는 정영문의 소설책 열두 권 어디를 펼쳐도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아포리즘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그가 무의미한 세계의 무의미함을 빈손으로 견뎌내고 있다는 증거다. (165)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이변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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