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

작년 11월, 난 카트와 함께 줄을 서 있던 어느 매장 계산대에서 나의 옛 제자를 알아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5-6년 전에 내 제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가 어떤 반에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난 별다른 뜻 없이 <잘 지내요? 여기 일은 재미있나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네, 네,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통조림이며 음료 등의 가격을 입력한 후에 <기술학교 들어가서 잘 풀리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였다. 그녀는 내가 아직도 자신의 진로를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녀가 왜 기술학교로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분야로 들어갔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후였다. 난 그녀에게 <또 봐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벌써 왼손으로 다음 손님의 물건들을 집어 들면서, 오른손으로는 숫자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두드리고 있었다.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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