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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고 한다. 비행기로 한 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이다 보니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네들과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근래 들어 한류바람이니 독도 문제 등을 보며 느끼는 그네들의 특성 중 하나는 <집착>의 문화다.
무언가에 열중하면 끊임없이 파고들고 그것을 기록하고 보관하고 공유한다. 심지어 잘 짜인 각본을 만들어 타인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까지 한다. 그것이 장점이 되어 많은 전문 서적을 남기고 경제 성장을 이루고 과학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마루타, 가미가제, 오타쿠(나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지메와 같은 것들이 함께하고 우리 또한 어느새 그것들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은 가깝고도 먼 일본의 작가가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가해국의 한 개인으로써 집단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혹은 집단에 희생된 개인의 의지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나는 나라 뺏긴 아픔을 교육 받은 피해국의 한 개인에게 주입된 피해의식을 가지고 읽었다.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일본인의 글 속에서 조선인 부락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왠지 모를 거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해 책을 읽는 내내 불쾌함을 삭일 수 없었다. 일본인들의 사회 속에서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공격 대상이 되는 상황이 마치 내가 당하기라도 하 듯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교육과 사회분위기를 통해서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된 나로서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제 3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감정에 더해 책의 내용은 시종일관 암울하기만 했다.
주인공 스스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변태적인 친구의 자살 모습, 자신에게 벌어진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공유한 사람과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엮어나가며 풀어나가려는 아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마을 주민들과 그들의 희생자, 집단폭력의 희생자를 시대적 영웅의 모습으로 포장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고, 근친상간의 죄책감을 근친상간으로 풀어내는 동생 다카시, 주인공 미쓰 사부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무기력해져 집단폭력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마을사람 모두가 헤어 나오지 못할 원죄의 그물에 갇힌 듯 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더욱 얽혀들기만 하다가 극으로 치닫는다.
동생의 자살로 인해 폭력이 종결되고 주인공 미쓰 사부로 또한 외면했던 과거와 현실을 직시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글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역사의 저 먼 곳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끊임없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 죄책감, 피해의식……. 이러한 일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있을까?
이러한 일들은 각성하고 회유하고 반성해보지만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도덕 문제에서 골라내 듯 쉽게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읽는 내내 마음은 개운치 못했지만 자국의 폭력성을 문제 삼아 제시 해준 작가의 도덕심은 높이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