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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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라호마 시골의 붉은색 땅과 회색 땅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부드럽게 내리며 땅을 적셨던 마지막 비를 뒤로 뜨거운 태양과 함께 흙먼지가 내려앉았고 남자들의 한숨이 내려앉았고 가족들의 생계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자연재해의 피해는 갑작스럽지도 않았고 서서히 그들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으나 그들은 어떻게든 다시 그 땅에 작물을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태껏 조상대대로 그래왔듯이 그들에겐 함께 살아온 땅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그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트랙터를 앞세우고 밀고 들어온 얼굴도 없는 은행의 자본력이었다. 얼굴이 없듯이 감정도 목소리도 없는 거대 은행은 그들의 애원이나 사정 따위 들어줄 귀도 없었다.

 

   이제 쫓겨나듯 자신들의 고향 오클라호마에서 떠나 구원의 땅 캘리포니아로 향한 한 가족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오직 가족이 함께 먹고 살기 위해 희망을 안고 떠난 여정에서 그들이 계속 만난 것은 끊임없는 대자본가의 횡포였다. 거기에 더해 조금 형편이 나아질만하면 야속하게도 자연재해가 잇따른다.

 

   이 쯤 되니 글을 읽는 나조차도 하늘에 대고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엎친 데 덮치고 점입가경이라더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만큼 모든 상황이 톰의 가족을 대표로한 힘없는 농민들의 숨통을 조여든다.

   하지만 내가 끝끝내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톰 조드의 엄마 때문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한 가족의 정신적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도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 생각되는 나로서는 그녀의 행동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기에 때론 모성애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초인적인 모습에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모습에서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한 가닥의 희망을 보았기에 지친 이 가족의 힘든 여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젊은 톰 조드의 가슴 속에서는 케이시가 심어 놓은 작은 포도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분노의 포도이다.

   이것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다만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곳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분노의 포도는 여기저기서 계속 싹이 트고 자라났다. 때론 짓밟히고 때론 결실을 맺기도 했겠지만 때가 되면 다시 지고 긴 시간 땅 속에서 또 다시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 인간에게 존재했던 탐욕이 사유재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인지 사유재산이라는 제도가 인간에게 탐욕을 부추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탐욕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에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희생은 강요하며 채워지길 원했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곳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내게 <분노의 포도>는 <에덴의 동쪽>에 이은 두 번째 존 스타인벡 소설이다. 에덴의 동쪽이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동서양의 다각적 시각으로 나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면 분노의 포도는 어렵고 힘들어도 외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느끼는 가족애과 인간애에 대한 서글픈 감동을 주었다. 각기 다른 두 번의 감동을 내게 선물한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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