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83
빅토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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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에 손에 잡히는 책의 무게감을 느껴보고 내용을 생각해 보고 표지 그림을 평가해 본다.
   <레미제라블>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다고 여겼던 책이 갑자기 낯설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의 소설이었나?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비해 원작 소설의 방대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린 시절 한 편의 동화로 알았던 책의 원작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내용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이다.

   책의 초반부는 죄인 장발장을 새 삶으로 인도한 미리엘 신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만 5천 프랑의 주교 봉급 중 개인 비용 1000리브르를 제외한 모든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애하는 미리엘 신부의 성품을 장장 200여 페이지에 걸쳐 읽다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미리엘 신부는 자신의 사회적 사명을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행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그 사명을 이어 받은 한 사람이 장발장인 것이다.  

   미리엘 신부와의 만남 이후 장발장은 새로운 사람이 된다. 마치 미리엘 신부를 보는 듯 하다. 처음 장발장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행을 베풀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꼬제뜨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소녀에 대한 헌신은 멈추지 않는다.
   장발장은 죽음에 이르러 사회의 법이 아닌 인간적인 용서를 받는다. 그를 끝까지 뒤쫓던 법의 대변인 자베르도 장발장의 인간적 성품과 사회적 죄 값 사이에 놓인 자신의 의무와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한다.

   <자베르는 그처럼 무시무시하면서도 야비한 데는 없었다. 청렴과 강직과 진지와 결백과 확신과 의무감 등은 나쁘게 이용될 때는 혐오스러운 게 되지만 그래도 웅대함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양심만이 갖는 그러한 위엄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면서도 의연하게 존속한다. 그것들은 착오에 빠질 수도 있는 하나의 결점만을 지닌 미덕이다. 자베르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나, 승리를 뽐내는 모든 무지한 인간처럼 그 포악한 행복 속에서 가엾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자베르의 성격이었기에 그런 결과 이외의 결과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고의 책을 읽다보면 여러 인간 군상들 개개인의 성품 속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성 에 대한 묘사의 뛰어남에 놀라게 된다.

   <세상에는 자기와 아무 관계 없는데도 남의 일을 탐색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선행을 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과 시간과 수고를 낭비해 가면서 애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까닭없이 다만 자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으로, 호기심에 의한 호기심의 만족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것이다.>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러한 성격 묘사들이 정말 만나본 적이 있는 어떤 이웃에 대한 이야기같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사람의 삶과 죽음 속에 녹아있는 사회, 정치 이야기를 하는 위고, 그 중 공감 가는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팡띤느의 이 이야기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그것은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에게서. 굶주림과 추위와 고독과 버림받음과 궁핍함에서. 비참한 거래이다. 한 조각의 빵과 한 영혼의 바꿈. 빈곤은 팔려고 내놓고 사회는 그것을 사들인다.

   감옥에서 사람은 사슬에 매여 있을 뿐이었으나 수도원에서 사람은 자기 신앙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닮았으면서도 그토록 상반되는 두 장소에서, 그토록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속죄라는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닫힌 영혼에게는 죽지 않지만 열려 있는 영혼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그 무수한 즐거움과 친해져 이제 예지의 백만장자가 된 마리우스는 금전의 백만장자를 애처롭게 여기게 된다.

   그래도 마리우스가 불행하다는 말인가? 아니 불행하지 않다. 생활의 빈궁도 젊은이에게는 결코 비참한 게 아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젊은이라는 것은 건강하고, 힘이 있고, 활발한 걸음걸이와 뜨거운 피를 소용돌이치게 하며, 검은 머리, 싱싱한 뺨, 장미처럼 붉은 입술, 흰 이빨, 맑은 숨결은 어느 때나 늙은 제왕이 부러워할 것이니라.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지고도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이란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어느 경지에까지 이르면 불운과 파렴치는 서로 혼합돼 구별할 수조차 없이 되고, 또 한마디의 말, 즉 비참한 사람들, 레 미제라블이라는 숙명적인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두 명제를 해결하라. 부자를 격려하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라. 빈곤을 일소하라.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당한 착취를 없애라. 성공한 자에 대한 실패한 자의 질투를 억누르라. 임금과 노동의 균형을 수학적으로, 그리고 우애를 가지고 조정하라. 자라는 아이들에게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학문이 노동력의 기초가 되게 하라. 손을 놓지 말고 지성을 계발시키라. 강력한 국민인 동시에 행복한 인간 가족이 되라. 소유권을 민주화하라. 그것을 폐지하지 말고 보편화하여 전국민이 예외없이 소유자가 되게 하라.

   전 인류의 대협약이 체결되는 날까지는-퇴보적인 과거에 대하여 진보적인 미래의 노력인-전쟁은 아마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전쟁의 무엇을 비난할 것인가? 전쟁이 치욕이 되고 검이 l수가 되는 것은 권리와 진보와 이성과 문명과 진리를 말살하는 경우뿐이다. 그런 경우 내란이든 외란이든 전쟁은 죄악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획득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당연한 보상금이오. 혁명은 하나의 세금이오.

   아이들이 은혜를 망각한다고 너무 가혹하게 말하는 것도, 항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은 다른 데서 말했듯이 ‘앞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가는 사람은 그림자 쪽을 보고, 오는 사람은 빛 쪽을 보고 있다. 거기에서 노인에게는 숙명적인, 젊은이에게는 본의 아닌 어떤 괴리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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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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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이라더니 조서가 또 다시 책 읽기의 발목을 잡았다. 도통 무슨 소린지…….
미친 자의 이야기라니 같이 살짝 미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이란 생각에 미친 척 정신을 놓아보았다.
나도, 관념도, 시간도 망각한 채 주변만 바라본다.
시체놀이…….
일순간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았기에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현실이 밀려온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넋 놓고 앉아 있느냐고
나는 아마도 현실에 얽매인 조급증 정신질환자인지도 모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괜히 바쁜 척 내 정신적 휴식 시간을 인정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내 이름 대신 붙은 엄마라는 주부라는 이름하에 내 인생에 가족들 인생을 덧붙여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나를 현실에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원한 것인가?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이 만들어 가고 있는 상황일까?
정신이 바쁘면 몸은 힘들다.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능률적으로는 오히려 손실이다.
한 번쯤 모든 것을 멈추고 시체놀이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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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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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일제 식민시대 우리 민족의 삶을 많이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했다. 일제 식민지가 배경인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비슷했던 것 같다. 일본에 대한 분노, 나라 잃은 설움, 한 많은 우리 민족에 대한 연민, 아직도 남아 있는 잔재에 대한, 그러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 대한 막연함.

   이 소설 또한 전체적인 배경은 같다. 그래서 별 다른 내용이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점이지대인 북간도(연변, 동만)를 배경으로, 조선과 중국의 항일 전사들의 유격구 활동과 당시 간도를 주축으로 한 민족해방운동진영을 벌집 쑤시듯 뒤흔들어놓았던 '민생단' 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란다. 

   ‘민생단’은 뭔가? 독립 운동 단체인가? 
   인터넷을 뒤져 민생단 사건을 찾아보았다.

   <민생단은 동만주의 일본 영사관 조종 아래 만주 지역 조선인의 자치 실현을 표방하면서 발족한 친일 반공단체이다(1932.2) 1932년의 춘황 투쟁(지주들의 쌀을 빼앗아 농민에게 나누어 줌)과정에서 나타난 민생단 반대 운동과 자체의 내분, 조선총독부의 비협조로 그해 10월 해체되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간부 한 명이 조선인 당원에게 살해되는 사건을 계기로 중국공산당은 조선인 공산당원과 재만 조선인들을 박해하였다. 특히 친일 세력의 농간에서 중국공산당 내 조선인 당원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원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공산당과 항일 유격대 내부에서 반민생단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500명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김일성도 이때 민생단원으로 의심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었으나 중국공산당 간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1935년경부터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반민생단 투쟁의 오류를 반성하고 무엇보다 두 민족이 연대하여 반일 통일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반민생단 투쟁을 종결한 것은 1936년 3월이다.>

   나라와 민족을 해방시키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같은 민족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한다. 물론 친일파라 이름 불린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앞장서서 나라와 민족을 총 칼 앞에 세웠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워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민생단에 얽혀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어간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해야하는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상황 속에, 내가 진정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오직 민생단이라는 이름으로 500여명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만이 자신이 누군지 소리 내 떠들 권리를 지녔다. 시체가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납득했으니. 유격구에서 나는 수많은 시체를 봤다. 그 시체들은 저마다 이렇게 떠들었다. 나는 민생단으로서 동지들의 골수를 적에게 팔아먹었다. 나는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내 살과 피를 팔아먹었다. 그 아우성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

   주인공 김해연의 말처럼 스스로가 누구인지 무어라 말해야하는지 아무도 모른 체 결국 민생단이 되지 않기 위해 같은 민족을 민생단이라 하며 죽이고 민생단이 아닌 사람을 죽인 자신도 민생단이 되어 죽어 간다. 결국 어떻게 해도 민생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근원을 쫓아가다 보면 힘없이 나라 잃은 우리의 상처이고, 힘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고 민족 간 이간질을 시킨 일본이 잘못이지만 그렇게 결론짓고 말기에는 왠지 가슴 한편이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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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상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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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에코의 느낌이랄까
그윈플레인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 속을 헤집고 들어가야 했을까
한참을 주변 설명 속을 헤치며 주인공 그윈플레인을 만났다 싶으면 어느새 그는 사라지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2권에 이르는 책 속에서 내가 주인공을 대면한 분량은 얼마되지 않은 듯하다.
어찌보면 단순하기도 한 하나의 줄거리 속에 한 나라의 역사와 철학과 인간 군상의 모든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때로는 지루함에, 때로는 다른 시대와 다른 나라의 문화와의 거리감에 몸을 비틀기도 했지만 끝내 책을 놓지 못한건 비극의 주인공 그윈플레인의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하는 궁극적궁금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딘가 부족한, 우리의 내면적 결여를 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윈플레인과 데아, 우르소스, 호모를 보며 위고의 말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도 쉽게 그들을 호기심의 시선으로, 내 생활의 위안 삼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성찰을 위고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어렵기만 하던 에코의 책들,
결코 읽어내기 쉽지 않았던 위고의 책,
그런데 어느새 중독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위고의 <노트르담의 파리>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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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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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만만치 않은 두께의 돈키호테 완역서 도입부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돈키호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돈키호테를 발견했다.
   널리 알려진 고전들은 오랫동안 내용의 줄거리나 가장 유명한 내용( 돈키호테에서는 돈키호테가 막무가내로 풍차에 돌진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거나 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지만 실상 완역본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부분들은 극히 빙산의 일각임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도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던 돈키호테와는 조금 달랐다. 내 머리 속에 막연하게 남아있던 돈키호테의 모습은 오십 줄에 접어든 나이 든 돈키호테보다는 젊고 그다지 마르지 않은 괴짜였다.
   마른 체격의 시골 귀족으로 기사소설에 빠진 미치광이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책을 읽는 내내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정의의 행동으로 황당한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은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기사라 자칭하는 이들의 무모한 용맹성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또 다른 내용은 1부가 다 끝나도록 결국 자신의 공주님인 둘시네아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1부에서는 둘시네아가 등장인물들의 말 속에서만 등장할 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 고전들, 그리고 완역본을 하나씩 읽기 시작하면서 두 가지의 즐거움을 얻는다. 하나는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되는 기쁨이고 또 하나는 줄거리에서 얻을 수 없는, 완역만이 줄 수 있는 온전하게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 받는 작품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떠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 인간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 엉뚱하고 외골수적인 사람을 보면 쉽게 돈키호테에 비유하곤 한다.
   산초의 모습은 어떤가. 어수룩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돈키호테의 생각에 동조한다. 아마도 요즘 대다수의 사람들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서 제정신을 찾는 내용을 담은 2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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