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품절


기류는 주위에 열등감과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놈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게 최고다. 가까이 있다 보면 결점을 들춰내고 싶어진다. 찾아낼 결점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자신의 천박함만 느껴져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녀석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게 되다니. 정말 운이 없다. -64쪽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 달라는 수법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은 구치외래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자기 이름은 그 사람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다. 그 특별한 단어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생한 세부 사항을 알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답을 거부당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거부 그 자체에도 그 사람의 자세가 드러나는 셈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을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96쪽

효도의 전략은 멋졌지만 두 가지 큰 오산을 했다. 하나는 나늘 그런 음모조차 눈치 채지 못할 멍청이로 오인했다는 점, 또 하나는 내 반응에 대한 오산이었다.
효도는 만에 하나 내가 녀석의 목적을 눈치 채면 죽기 살기로 저지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걸 전제로 방어선을 펼쳤고, 다양한 포석을 깔아 두었다.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점을 두고 효도를 얼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녀석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에게 정공법으로 나선 것이 효도의 실수였다. 사실 효도가 노린 것과 내 소망은 정확히 일치했다. -206쪽

소문은 담쟁이넝쿨과에 속하는 악질적인 잡초다. 신경 쓰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고, 깜빡 무시하고 있다 보면 손발이 엉망으로 뒤엉켜버린다. 효도와의 문제를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소문에 대한 관심을 껐다. 마음만 먹으면 그것은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211쪽

겉으로는 매우 예의 바른 것 같은데 그 얼굴을 보니 불쾌감이 곱절로 증폭되었다. 시라토리에게는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피할 줄 아는 에티켓이 결여되어 있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있지만 왠지 이쪽의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느낌. 2인용 좌석에서 1.5인분을 차지해 버린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236쪽

나는 '대공룡 vs 외계인'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렸다. 이미 꽁무니를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입을 열자마자 구로사키 교수가 직구를 던져왔다.
"난 바쁘네. 짧게 하세."
시라토리는 히죽 웃으며 교수가 던진 직구를 받아쳐 백스크린으로 보내버렸다.
"안심하십시오. 저도 구로사키 선생에게 시간 쓸 여유가 별로 없으니."
구로사키 교수가 발끈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노여움, 당연하다. 시구식에서 던지는 공은 헛스윙 하는 것이 서로의 약속이다. 하지만 상대는 몰상식한 외계인. 나는 구로사키 교수가 좀 측은해졌다.-271쪽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기류 선생은 용케 참고 있더군요. 그 양반은 메이저 리그 선수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동네 야구 선수들이니."
오토모의 당돌했던 표정이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가키타니 선생은 느림보 거북이, 사카이 선생은 자벌레, 오토모 씨는 뚱뚱한 타조. 겨우 기류 선생을 따라가던 건 호시노 씨던가? 이전 담당 간호사 아가씨죠. 그 간호사의 솜씨는 경쾌하고 날렵하더군."-285-286쪽

맥이 탁 빠졌다. 가키타니는 기류에게 조교수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몰래 수술 사망을 일으켜 기류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고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가키타니에게는 사소하지만 동기는 있다. 겨우 그런 일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를까, 하는 상식론에는 나도 동의하고 싶지만 원래 살인이란 것은 대개 상식을 크게 벗어난 곳에서 일어난다. 상식론이란 흔히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소하다 하여 이런 동기를 제외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깔보는 게 아닐까?-308쪽

말은 윤곽을 다듬는다. 사람은 자신의 말로 스스로를 다듬는다. 스스로를 자신의 말 속에 가두고 천천히 질식해 간다. 히무로는 그게 싫어 말 자체를 다듬었다. 말을 줄였다. 최소한의 말로 사실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사람의 마음을 옭아맸다.
의사도 망가질 것이다.
멋지다. 히무로는 단 한마디로 세상을 자신의 빛깔로 물들여 버렸다.-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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