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명의 참된 어부들' 회원들이 연례 만찬을 가졌던 버논 호텔은 과두 정치 사회에서나 존재할 법한, 깍듯한 매너를 철저하게 지키는 곳이었다. 소위 '조건식' 사업 방식을 택하는 특이한 곳이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찾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냄으로써 이익을 확장해나갔다. 금권 정치의 심장부에 있다보면 사업가들은 고객들보다 더욱 까다로워진다. 그들은 보다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안달이 난 돈 많은 손님들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돈을 쓰고 외교적 수완을 부리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만일 런던에 키가 180센티미터 미만인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는 일류 호텔이 있다면, 180센티미터가 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사교 클럽을 만들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호텔에서 저녁 만찬을 즐길 것이다. 또, 단지 경영자의 변덕으로 목요일 오후에만 문을 여는 고급 식당이 있다면, 목요일 오후 그 식당은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비게 될 것이다. -97-98쪽
공석에서 그는 처신을 아주 잘 했고, 그의 처세 원칙은 다분히 단순했다. 농담이 생각나면 농담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영리하다고 했다. 농담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쓸 때가 아니라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그를 수완가라 했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동료들과 함께 클럽에 있는 경우와 같은 사석에서는 아주 유쾌할 정도로 솔직했고 개구쟁이 어린 학생처럼 철이 없었다. 다만 정치 경험이 없는 터라, 정치를 좀 심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때로는 자유당과 보수당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암시적인 말을 해서 모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었다. 사생활 측면에서 본다면 체스터 공작은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옛날 정치가들처럼 옷깃 뒤로 회색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말아 늘어뜨리고 다녔다. 그래서 뒤에서 보면 마치 제국이 원하는 인간형처럼 보였고 앞에서 보면 소심하고 제멋대로인 독신자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게 맞았다.-113쪽
"신부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플랑보가, 거의 내지 않는 순진하고 무거운 음성으로 신부를 불렀다. "자야지! 잠을 자게나. 이제 우리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네. 잠이 무엇인지 아나? 잠자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신을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냐는 말일세. 잠은 성찬식일세. 왜냐하면, 잠을 자는 것은 신념의 행위일 뿐 아니라 식량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성찬식이 필요하네, 자연스러운 것이기만 하다면 말일세. 인간에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지. 아마도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것이지." 브라운 신부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크레이븐 경감은 이렇게 말하고 그의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신부는 고개를 돌려 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실을 알아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입니다."-217-272쪽
"신부님, 제가 한때는 범죄자였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범죄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권은 항상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주로 기다려야만 하는 이 탐정 노릇은 저의 프랑스인다운 성급한 성격과 너무나 맞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건 그른 일이건 생각하는 즉시 실행에 옮겨왔으니까요. 결투를 해야 한다면, 다음날 아침이라도 바로 결투를 했고, 계산은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했고 치과의사를 만나는 일도 미루는 법이……."-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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