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특별한 동기 같은 건 없어. 자네도 말했잖아? 이번 범행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냐고. 그게 맞는 말이야. 충동적으로 불끈 화를 못 이겨 살해했다, 그냥 그것뿐이야. 딱히 댈 만한 이유 같은 건 없다니까?" "그러니까 어째서 불끈 화가 나셨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냥 사소한 일이야. 아니, 분명 사소한 일이었을 거야. 실은 왜 그런 식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었는지 나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뭐, 하긴 그런 게 불끈한다는 것의 속성이지. 그래서 나도 어떻게 설명을 해보려고 해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사실상 맞는 얘기야."-114쪽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히다카 구니히코의 팬이거나 실제로 문학 애호가일 가능성은 낮다고 나는 내심 짐작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까지 히다카 구니히코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히다카 리에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웃기는 건, 요즘 들어 남편의 책이 아주 잘 팔린다는군요. 그것도 아마 일종의 관음증 같은 거겠죠?"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요."-252쪽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문학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접해보게 되었습니다만, 작품을 평하는 말 중에 독특한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말입니다. 한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글을 써서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뜻일 텐데, 그건 단순한 설명문으로는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주 작은 몸짓이나 몇 마디 말 같은 것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그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도록 쓰는 것이 '인간을 묘사한다'라는 것이라던데요? 당신은 거짓으로 점철된 수기를 통해 히다카 구니히코라는 인물의 잔혹성을 묘사하여 일찌감치 독자, 즉 우리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준비한 에피소드가 그 '고양이 죽이기'였던 것이지요.-342-343쪽
자신이 체포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까지 모조리 내던져 다른 한 사람의 인간성을 폄훼하려고 한다-. 이건 대체 무엇 때문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나로서는 이론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노노구치 씨, 그건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당신도 스스로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10여 년 전에 나 자신이 경험했던 그 일이 생각나는군요. 기억하시는지요,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졸업식 직후에 자신을 괴롭혀온 학생을 칼로 찔렀던 사건. 그때 왕따의 주모자였던 학생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노노구치 씨, 당신의 심경도 그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당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히다카 씨에 대한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이어서)-345-346쪽
(이어서) 그런 악의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나는 당신과 히다카 씨에 대해 나름대로 상세하게 조사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 내가 알아낸 것은 히다카 씨가 당신에게 미움을 살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훌륭한 학생이었고, 당신에게는 오히려 은인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후지오 마사야와 한 패가 되어 그를 심하게 괴롭힌 시절이 있었는데도 그는 당신에게 큰 도움을 주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은혜가 거꾸로 미움을 낳는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당신이 그에 대해 열등감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인이 된 뒤에 다시 만난 히다카 씨에 대해 당신은 질투심이라는 것까지 느껴야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앞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상대인 히다카 씨가 당신보다 먼저 작가로 성공해버린 것입니다. 그가 신인상을 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의 심경이 어땠을지 상상하면 나는 온몸의 털이 거꾸로 솟을 만큼 오싹해집니다.-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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