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우 저택 사건 2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6월
구판절판


걷는 동안 자신이 사는 '현대'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르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옷차림, 신발, 빌딩높이, 문장의 가로쓰기 방향이 다른데다가 한자도 어렵지만 인간 자체가 뿌리째 바뀌지는 않는 것이다.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 인간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차이 아닐까. 치에나 후키가 일하는 걸 봐도 그렇다. 청소기나 세탁기가 없고 자가용이 없으니 시장도 하녀를 보내야 한다.
할 일이 많은 시대다. 물론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할 수 없어 힘들겠다 싶기는 하지만 노동의 의미가, 다카시가 있는 '현대'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분명했으리라. 담배 한 갑을 사려고 해도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주고받아야 하는 시대다. 담배와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행위에는 그만한 세상살이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이어서)-133쪽

(이어서)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나 같은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현대로 돌아가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사 년간 적당히 놀다가 취직. 그 뒤엔 무슨 일을 할까? 어떤 직업을 고를까? 버튼 하나면 전부 해결되는 시대다. '인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다카시라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일을 발견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인생' 그 자체의 의미를 찾기도 쉽지 않다.
만일 이후에 전쟁이, 사상 통제가, 공습이, 식량 부족이, 점령이 기다린다는 역사를 몰랐다면, 이 시대에 살고 싶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쁘지 않다. 앞으로의 일 따위 고민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 인간의 힘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따뜻하다. 빵집 주인도 저렇게 친절하지 않은가. 살아가기에 결코 나쁘지 않은 시대다.
히라타가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새삼 떠올랐다. 회복되면 꼭 답해 주겠다고 했다. 이 시대를 봤냐고 물어보며 나라면 알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어쩌면 히라타는 그저 이 시대의 편안함에 묻히고자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133쪽

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가짜 신이 아닌,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역사의 의지 따위는 몰라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으로. 하루 앞을 몰라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인간으로. 내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이웃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인간으로.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용기를 지니고 역사를 헤엄쳐 가는 인간으로.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인간으로.-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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