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이터 -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서보현의 하버드 토론 수업
서보현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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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내가 나의 목소리를 내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서로의 의견에 대한 의견 충돌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서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자신의 의견을 인정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런 수많은 논쟁의 순간들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토론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디베이팅 챔피언이자 세계 최우수 토론팀 코치를 역임한 서보현 저자의 디베이터는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합리적인 말하기 기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를 제패한 디베이팅 챔피언의 말 하기 기술이라는 말에 큰 호기심을 느끼며 읽기 시작했다.

남들의 눈에 띄기를 수줍어하는 소년이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되고 외국이라는 낯선 곳의 문화와 언어에 힘들어하며 또래 아이들과 갈등에서도 침묵하고 피하기만 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그런 삶을 180도 바꿔줄 일이 생기는 그것은 교내 토론팀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토론과 함께 성장한 유년에 기억을 되짚어가며 그가 느끼고 배운 토론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에 대해 써 내려가고 있다.

"나는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거나 주장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고, 논쟁적인 의제들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혀보는 일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토론은 단순한 서로의 정보교환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찬반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는 주제를 가지고 편을 나누어 논리적 근거를 통해 정해진 시간 안에 질문하고, 반박하며, 마지막에는 설득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논리적 근거를 입각하여 발표해야 하는 고도의 집중력 향상과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공감 능력에도 도움이 되므로 제대로 훈련만 받게 된다면 일반적인 학습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토론과 지적 양가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의 관점이 진정한 반대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는 더 강력하게 주장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해서 제3의 길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 교육 도구로서 토론이 지닌 또 다른 측면이다.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지속해나갈 수만 있다면, 토론은 우리에게 꾸준히 서로에게 배워나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토론의 교육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었음에도 아직 국내에서는 쉽게 다가서기 힘든 실정이다. 아직까지 토론을 통한 학습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고 이를 제대로 가르칠 지도자의 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이라는 소수의 활동을 떠나 일상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 갈등 상황에서 더욱 나아가 세상을 바꿔나가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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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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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가?

<연기 인간>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알도 팔라체스키의 작품이다. 그를 알고 있는 독자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탈리아 작가일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인 1911년에 이 작품을 처음 세상에 출간하였지만 이후 다섯 차례나 개정판을 출간했다. 소설 '광장'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최인훈 작가가 수차례나 개정판을 출간한 것처럼 그 역시 이 작품에 큰 애정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환상적인 존재로 인간 사회의 허황되고, 독단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광기를 신랄하게 풍자한 이 소설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파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연극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작가의 서술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연극의 사건 진행 방식처럼 복합적인데, 그것은 한 개의 사건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호 관련된 사건들을 제시한다. 복잡해 보이는 대화지만 의외로 선명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연극 장면을 보는 듯해서 '연극 소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봣지만 다 알고 있었지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 사람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사물의 이름을 다는 알지 못해도, 그 이름에 상응하는 사물이 어떤 건지 알지는 못해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봐야만 했지요."

 

 

페나, 레테, 라마라는 세 명의 노부인이 피운 불에서 생겨난 그는 굴뚝 안에서 33년을 지내며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만들어진다. 어느 날 노부인들의 대화가 중단되자 3일을 기다렸다가 굴뚝 밖으로 나와 도시로 내려오게 된다. 그에게는 세 명의 노부인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페렐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의 신비스러운 모습과 특별한 분위기는 모든 이들을 사로잡았고 왕의 귀에까지 그의 존재는 알려져 왕궁으로 초대받게 된다. 왕은 그에게 새로운 법전의 집필을 맡겼고 그는 법전 집필을 위한 시찰을 하게 된다. 시찰에서 돌아왔을 때 궁정 하인장 알로로가 페레라처럼 될 수 있다며 자기 몸을 불태워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페렐라는 알로로의 죽음이 자신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던 거라고 대답하게 된다. 알로로의 죽음을 가볍게 정의하는 그의 무관심에 분개한 사람들은 이때부터 페렐라를 향한 여론은 정 반대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연기 인간>을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굴뚝에서의 33년이라는 시간은 예수가 이 세상에 머무른 33년을 의미한다. 인간 세상의 모든 죄악의 용서를 위해 재림한 예수처럼 페렐라의 33년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만난 11명의 여인 들 중 유일하게 그의 편에 서서 끝까지 그를 변호하려 했던 올리바 디 벨론다 후작부인은 예수의 삶에 큰 안식을 안겨 주었던 마리아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겪고서도 인간의 곁으로 돌아와 법전을 남기고 사라진 페렐라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교의 핵심교리인 삼위일체을 의미한다.

 

"페렐라 씨, 왕이 죽으면 가장 부유한 시민이 왕좌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나라의 금고에 금을 가장 많이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것들을 삶의 진리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악덕을 자행해 왔다. 그런 인간의 내면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잔인하고 비열하며 허황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비정상적이고 역설적인 모든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연기 인간>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 온갖 잔혹한 행위들이 과연 진정한 가치를 위해 행해진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안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표지 일러스트는 오픈 AI가 개발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시스템 DALL.E 2를 활용했다고 한다. 최근 AI의 활용을 이용한 여러 창작물들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작품 역시 AI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100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재치 있고 기발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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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름다운 정원
카트린 뫼리스 지음, 강현주 옮김 / 청아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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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름다운 정원

큰 길이 낳은 수많은 길 끝에는 언제나 꽈리 같은 집들이 매달려 있었다. 시골 동네 옹망졸망 붙어있는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집, 옥수수 꽃 말갛게 피는 울타리 옆 담을 돌아 땀 냄새 먼지투성이의 아버지 작업복과 흰 수건 질끈 동여맨 엄마도 꽃무늬 포플린 치마 펄럭이며 대문으로 걸어든. 누렁이 뒹구는 마당 한쪽 평상엔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와 찐 호박잎, 새곰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흰밥에 배춧국 한 사발 밥상 둥글게 차려지던 풍경.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가장 그리운 풍경은 빛과 색으로 안기는 고향의 향기다. 잊은 지 오래인 내가 오늘 다시 찾은 것은 세월, 아니 그때를 그리워하는 유년의 아름다움이었다. 국가와 인종은 다르지만 카트린 뫼리스의 <내 아름다운 정원>에서는 맑고 푸르던 시골 동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애환이 그려져 있었다.

"시골은 너희에게 기회가 될 거야!"

​어린 동생과 그녀를 시골에서 키우기로 결심한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생활하게 된 카트린.

무너져 가는 농장을 구입해 직접 수리해 나가며 그녀의 평생 추억이 될 나무도 심고,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힘을 모아 농작물을 재배하고 같이 요리도 만들며, 그것을 자라게 한 자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골집, 그곳은 카트린에게 잠시 잊고 살아온 고향이며 사람살이의 따뜻함을 알려준 어린 시절 중요한 추억의 장소이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골 풍경에도 삶의 편리를 위한 개발로 조금씩 변해가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풍경들을 뒤로 한 채 그녀만의 작은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묵묵히 성장한다

<내 아름다운 정원>에는 카트린이 자연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들과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문학 작품과 명화도 이 책을 읽을 때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준 소중한 경험을 해준 자연의 모습들은 나의 어린 시절, 세상에 없는 그 기억을 찾기 위해 그 시간을 더듬고 있었던 나를 되돌아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황토로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자연과 더블어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을 꿈꾸며 귀농을 얘기한다. 나 또한 자연에 둘러 싸인 삶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 듦에 자연이 된다는 말이 있듯 살면 살수록 자연에 다가가고 싶다. 가슴속에서 여름밤 내내 내 집 앞산을 흔들던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와 마을 어귀 팽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수박을 먹던 그 아련한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임에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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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
정서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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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전시회를 한번 방문해 보면 거기에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 혼란스러운 만남에서 느껴지는 생명력과 독창성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모호하고 불완전한 형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작품은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우리 눈에 익숙한 근대미술까지는 미를 중시한 예술이었다면 근대 이후의 현대미술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추를 중시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본질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다.

현대미술 자체가 '이전 세대에 대한 이의 제기'라고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이 작품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을 하나의 미로 바라보기 이전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을 감상할 때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이유로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도록 요즘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키워드 열두 개를 선택하였다.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페미니즘

퍼포먼스

팝 아트

장소 특정적 미술

인류세

포스트 휴먼

관계 미술

공공미술

가상

인공지능

다양한 매체와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회화 조각과 같은 방법뿐만 아니라 사진, 영화, 광고, 게임, TV, 비디오 등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같은 기술과도 결합되어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대미술의 확장된 개념과 범주를 다루면서 새로운 미술 형태와 기법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며 특히 기술 매체의 등장이 어떻게 작품 제작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QR코드를 포함하고 있어 설명에 이해를 돕고 있다.

불필요함을 줄이고 간결하게 표현함을 의미하는 미니멀리즘은 '평면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원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사물'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는 식의 작업을 의미한다. 평면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잭슨 폴록의 회화가 대표적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선을 선으로 여기지 않게 되며, 과거의 회화에서 해방될 새로운 표현을 구성하고 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본격적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일어나는 소비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대중문화의 확산을 의미함과 동시에 소비사회의 모습을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 팝 아트이다.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 실크 스크린 작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유명한데 사고 당시를 찍은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실크스크린한 뒤 덧칠한 작품인 <실버 카 크래시>는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단순히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던 앤디 워홀의 작품은 소비 사회의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볍게 볼 수 없을 것 같다.

미술 작품 중에서도 미래를 예견하는 경우가 있다. 인류의 미래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의 경향을 '포스트 휴먼'이라는 부른다. 한국의 조각가 최우람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기계 생명체' 연작을 만들어오고 있는데 기계로 구성된 움직이는 생명체가 주위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콘셉트이다. 실제로 지금도 로봇의 이용이 주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면 몇 년 뒤면 우리 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풍경인 것이다.

이 책은 현대 미술 감상의 대중적인 길을 열어 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이미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미술에 대해서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것이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현대미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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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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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카데미상 수상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의 감동적인 영상을 본 후로 문어에 대한 나의 시각이 바뀌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식용으로만 생각하던 동물을 고양이와 개처럼 먹어서는 안 될 동물로 여기게 되었다. 신비로운 생물 문어와의 깊은 교감은 현실의 모습도, 소설에서도 매력적인 소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셸비 반 펠트의 데뷔작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펜더믹 봉쇄 조치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쓰기 시작한 소설로 팬데믹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는 마음을 소설에 담았다.

지능이 높고 글도 읽을 수 있는 문어 '마셀러스'는 수족관에 갇혀 지내고 있다. 인간이 주는 먹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마셀러스는 수족관을 탈출해 다른 수조의 생물을 잡아먹는다. 여느 날처럼 다른 수조에 다녀오다 전선에 묶여 있는 걸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청소부 할머니 토바가 발견해 구해주게 되고 둘의 우정이 시작된다.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하다. 다른 종이라고 훨씬 나은 건 아니지만,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하게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죽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안고 여분의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 토바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캐머런. 모두 깊은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아픔을 알리려 목숨까지 걸며 도와주는 마셀러스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문어라는 생명체에 큰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들 대체로 멍청하고 어리석다. 하지만 한 번씩 놀랍도록 똑똑한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

무뚝뚝한 마셀러스의 도움으로 토바와 캐스먼 두 사람은 깊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만 이것은 인간 본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경이로움이지 않을까.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해와 교감은 팬데믹으로 더욱 각박해진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마음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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