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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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고통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고통은 조직 손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고통은 우리의 의식적 통제 밖에 있는 뇌가, 우리가 위험해 처해 있음을 의식적 마음에 알리기 위해 내리는 결정이다. 즉, 고통은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통증을 '만든다'. 우리의 뇌는 믿음과 기대로 통증이라는 경험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중독성과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의 등장으로 세상은 고통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고통에 사라지자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집단인 '교단'이 생겨나고 인간다움에는 고통이 필요하다며 제약회사를 테러한다. 테러 사건 이후 교단의 지도자들을 무참히 죽인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교단 소속의 폭탄 테러범인 무기징역수 태를 불러들이고 그를 둘러싼 교단과 제약회사에 대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회사는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새로운 약물을 연구하고 개발했다. NSTRA-14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진통제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만큼 통증 신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독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장점이었다."p26

"NSTRA-14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인 감각에 중점을 둔 통증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사회적, 문학적, 철학적, 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고통은 의학적인 문제였고,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p29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p285

태초부터 인간은 저마다의 상황과 방식으로 고통을 없애려 노력했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그 목적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고통을 제외하면 과연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는 육체적 통증을 나타내는 고통뿐만 태가 경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경이 부모에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변해가는 욱을 지켜보던 민의 마음도 모두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도, 영원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이 모든 게 인생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이 모든 사실들을 이렇게 한순간 한순간 다시금 알게 될 때, 그 순간의 의미를 잊어선 안 된다. 인생의 고통이라 알던 것들이 다시 의미가 되어 낯설게 전해지는 일상의 교훈들로 우리는 여전히 인간다움을 간직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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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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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어머니가 됐다. 세상의 길로 자식들이 떠나는 걸 보는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 한구석 너무 오랫동안 포기하고 지내야만 했던 그 세월, 꿈 많은 스무 살 여인의 처녀 적 세월. 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알지 못한다. 손등의 수많은 주름의 길들이 이제 얼굴로 눈가로, 그리고 힘없어진 눈빛까지 자글자글 주름 같은 길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당신의 허리는 굽어 세월을 짊어지고 가신다.

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는 주인공 '정연과 남은 가족들은 어머니를 췌장암으로 잃은 후 큰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감정들과 만나는 고요의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남긴 따뜻한 마음으로 정연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게 된다.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밤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p19~20

누군가를 떠나보냈던 기억은 겨우 찾아온 행복을 의심하게 한다. 그렇게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변함없는 진실을 받아들이며, 있었던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전제가 된다. 잘 지내다가도 잘 지내지 못하겠는 이유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약속한 적 한 번 없이 오는 일방적인 성질의 슬픔은 오고 싶으면 오고, 왔으면 가고 싶을 때까지 머무는, 배려 없는 사람처럼.

소설은 주인공의 슬픔의 크기를 나타내 듯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와 가장 추운 날인 '대한' 곧 봄이 다가옴을 알리는 '우수'에 이르며 절기의 변화에 따라 이어진다. 어제보다 더 슬프든 덜 슬프든 견뎌야만 하는 날의 연속일지라도, 그리고 견딜 만할 때 더 큰 슬픔이 찾아올지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운 차려서 다행이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슬픔을 견디며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그것은 슬픔 다음의 더 큰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이다.

"사실 옷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의 양말과 머플러, 엄마가 직접 겨자색의 굵은 실로 뜬 털 모자에도 내 손은 뻗어갔다. 엄마의 물건에서 구불거리는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날이면 핀셋으로 조심조심 떼어내 빈 유리병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건 그 나름대로 즐거운 취미가 됐다. 엄마가 쓰던 비누, 스킨과 로션, 영양크림을 나도 썼고 엄마에게는 애장품이던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를 하고 산택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내 몸에서 엄마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만져지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엄마에게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고, 때로는 눈앞에 엄마가 있다는 듯 허공에 대고 어리광을 부리고도 싶었다." p75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었다는 사실이 삶을 응시하는 시선의 깊이를 가늠해 주는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아픈 경험 때문에 오히려 시선이 굴절되어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게 울어본 사람으로서, 자기 삶의 어느 귀퉁이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해진 작가의 글이 큰 위로가 되어 삶은 새로운 문을 열어주기 위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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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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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자꾸 밖으로만 나가려던 마음이 이제는 멀리 떠나보냈던 연을 감아들이듯 안쪽으로 다가온다. 햇빛은 이제 눈이 부시거나 따스하다는 말들보다 권태롭다는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오래된 숲속 어딘가에서 혼자 고요하게 있고 싶고 번거로운 일들을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제 삶은 적당히 두렵고 적당히 기분 좋은 이중적 감정의 연속이다. 두렵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고, 기분 좋다는 것은 아직도 변화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재희 작가는 서른세 살에 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치사율 높은 병에 걸렸었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에서는 그녀의 삶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어버린 사건 이후로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삶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가가본 이라면 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작고 소박한 일상의 길 위에서 발견하는 감사가 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언젠가 한순간의 방심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갈 뻔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자연 시간에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과정에 대해 배웠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집에 오자마자 깡통을 들고 동네 어귀에 있는 못으로 향했다. 그 못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꽤 큰못이었고 가장자리 한쪽에는 웅덩이가 몇 개 있었다. 나는 올챙이를 잡기 위해 웅덩이 주위를 맴돌다 그만 다리가 미끄러져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곳은 꽤 깊은 곳이었고 물속에서 한두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무 그늘 밑에 누워 있었고 옆에 아버지가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로 인해 나는 또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셈이다. 물속에서 쑥 올랐다 내려올 때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찰나의 짧은 순간에서 느낀 미지의 감정에는 두려움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죽음은 항상 우리와 마주하고 있어 그 순간이 오면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았다. 이게 내 인생일까? 그러곤 한참 후에 스스로 대답한다. 맞아. 이게 내 인생이지. 그런 자문자답을 하다 보면 사실은 내가 어떻게 살든 무엇을 하든 그게 전부 다 내 인생이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된다. 내가 꿈꾸기만 했던 어떤 일, 내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놀라운 행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괴상한 일, 무수히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게 바로 나 자신의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 그런 일들이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다.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한 채로 그런 일들을 맞게 된다. 닥치면 어떤 식으로든 나는 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이 된다. 진짜 내 인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 있었다." p87

한순간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우리 삶에서 명성을 좇는 것은 인간의 속성일 테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행동인가. 그러나 각각 꿈꾸는 성공은 조금씩 다르리라. 번드레한 직함을 늘어놓고자 무리수를 두며, 인생의 자랑으로 취하고자 했던 사람도 결국은 자기 것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그들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허명을 앞세우다 그 속에 갇혀 버린다. 얻으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 삶이 오롯이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했으며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은지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다. 그러기에 값어치 있는 이름이 되었다. 진정한 이름은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묵묵한 삶 뒤에 따라올 때 빛난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재능은 나에게 없다. 넓디넓은 천사 같은 큰마음도 내겐 없어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이다. 오래도록 기억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무명으로 살 일이다. 작자 미상이라 적힌 옛 그림에서 더 진한 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이름 있는 화려한 꽃보다는 이름을 알지 못해 풀꽃이라 부르는 은은한 꽃잎이 더 오래 가슴에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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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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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삶의 행보로부터 거리를 둔, 천천히 움직이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계의 한쪽을 받치는 그들은 어둠 속에서 암순응을 하는 것에 익숙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가만히 듣고, 관찰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이들이에요. - <최소한의 최선>으로 들어가는 글

문진영 작가의 글에는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스토리보다는 인물과 일상의 결에서 잔잔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불행의 어떤 근원을 다룰 때도 그 근원들이 깊은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이해의 장으로 강하게 견인되는데,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선명한 현실로 구체화되면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최소한의 최선>은 그런 특징들이 잘 표현된 소설집이다.

[미노리와 테츠]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던 친구 수민과 떠난 일본 여행에서 미노리와 테츠 부부를 만나 친해진다. 그 후 수민에게서 그들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어느 날 미노리에게서 수민과 함께가 아닌 단둘이 보기를 청하는 메시지를 받게된다. 그렇게 미도리와 만남에서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되는데 수민이 일본에 놀러왔을 때마다 수민 앞에서 테츠는 미노리가 처음 보는 얼굴을 짓고 했다는 것과 미노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둘 사이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무언가 특별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는 수민으로 인해 둘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리라.

"빛이 환할수록 더 짙어지는 그림자에 관해. 임계점에 닿기도 전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마음에 관해." p31

[오!상그리아]에서는 여행작가의 삶을 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집을 비우는 엄마.할머니의 품에서 자란 '나'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그간 알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 들려준다. 엄마의 출생도 평범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할머니에게 갓난 아기를 덥썩 안겼고 그렇게 친모를 모른 체 성장해 온 엄마의 이야기.

[지나가는 바람]에서는 갭 이어를 갖기로 한 '나'는 일년전에 퇴사한 입사동기인 민지씨의 반짝이는 인생을 부러워한다. 한편 평범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후배 우림과의 만남에서 시간에 흐름에 몸을 맡기는 평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린 아마 평생 이러고 살겠지.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근데 갈대 괜찮지 않나. 지나가는 바람에 한껏 몸을 누이면 되니까. 한참 엎어져 있다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고, 또 엎어지고. 누가 누구를 일으켜줄 수는 없지만, 같이 엎어져 있는 건 참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림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다." p225

주목받는 화려한 인생이 아니라도 희미한 온기를 머금고 살아가는 이들. 주목받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삶의 방식보다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존재들 곁에서 일어나는, 우리 삶에서 늘 일어났고 일어날 일이지만 가만히 되짚지 않으면 함부로 잊히거나 지워지고 말 순간들이 마음 한곳에 스며드는 그 감동이라는 것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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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간다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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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숨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삶과 가능한 숨기고 싶은 모습이 공존한다. 지극히 당연한, 본능적인 일이다. 내면의 갈등, 어둠과의 싸움은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특별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자들에게서 두드러지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작중 인물이 품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나 불안 등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저자의 이번 소설은 '비밀'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야행>에서는 죽은 남편의 수첩을 보며 비밀 없는 평범한 삶에 허무함을 느끼고, <밤의 마침>에서는 한순간 실수였다고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비밀이 추문으로 폭로되는 것을 거짓으로 막아내고, <비밀의 호의>에서는 50년 전 여동생이 자신의 방에서 잔 후 나흘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주위에 다그침에도 침묵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흘간은 적어도 한 사람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수첩을 보며 가졌던 긴장감,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대감과 혹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남편을 의심한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일생 성실하고 가족에 충실했던 남편에게 감사했다. 남편이 아무런 비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애틋하고 그리웠다.

하지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실망감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이렇다 할 비밀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열정이나 정념 같은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마저 더욱 시시해지고 심드렁해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야행 P25

절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비밀,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무언가. 숨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의 차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비밀.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원천적으로 타자와 공유가 불가능한 비밀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이기에 한없이 허무하고 고독하다는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소설이란 무의미에 맞서 삶의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화라는 강박 그 자체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이 둘 사이의 쉽게 잡히지 않는 균형을 찾아가면서 요약이나 개념화의 욕망 밖으로 버려지고 흘러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쉼 없이 붙잡고 있는 작가들의 노력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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