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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열정
제임스 마커스 바크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사실 현재 진행중이지만-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TEPS 공부. 사실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워요'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뚜렷한 목표가 있던 고등학교 때에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무리 없이 공부를 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꿈을 잃어버린 나는 그 무엇에도 열정을 불태우지 않은 채 몇 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목표가 생겼고, 그것은 바로 '변리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리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인 영어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TOEIC은 이상하게도 정이 안 가서 TEPS만 주구장창 보는데, 변리사 시험을 위해 TEPS 700점을 넘어야 한다. 대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나는,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고도 700점을 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는 매우 동떨어진 점수가 나온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나는 700점이 아니라 970을 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히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기와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 내가 '영어'라는 언어 하나 넘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굉장히 치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1~2달 정도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는 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아침 9시 30분 수업을 들으면서, 6주간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졸지도 않았다. 그 수업을 듣는 그 6주간은 마치 나 자신이 열정에 가득 찬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 가뿐했고, 돌아오는 길도 즐거웠다. 하지만…….


 6주간의 수업이 끝나도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하며 하루에 몇 시간이고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틀려버렸다. 분명, 나는 6주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것은 결코 열정이 아니었다. 물론 '열정'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어쩌면 나의 그것도 열정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열정이란 그리 쉽게 꺼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났다고 다시 나태하고 게으른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열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늘 머리맡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는 책이 있는데, 자신의 꿈을 크나큰 열정으로 이룬 여성들의 일화가 담겨있다. 그 책에서 날 소름끼치게 만든 이야기 하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3년간이었나, 아무튼 그 긴 시간을 단 한 번도 누워서 잔 적이 없는 여성의 이야기.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꿈을 이루고 비로소 침대에 누워 그동안 못 잔 잠을 한꺼번에 잤다는 이야기. 정말 그런 것은 열정뿐만이 아니라 독기 또한 품고 있어야 가능하리라고 본다. 


 어쩌면 그 책을 읽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책을 보고 동기부여가 되기 보다는 '왜 나는 열정을 갖고 있지 않는 걸까?'에 대한 생각이 더 크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공부와 열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을 때 내가 미친듯이 반가워한 건 필연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공교롭게도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의 아들이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고등학교 시절 여러 번 읽었던 책.(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래서 고등학교 우리 집 화장실에는 갈매기의 꿈 핸드북 버전이 늘 비치되어 있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운명? ^^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심장 박동수가 가장 높았을 때의 이야기. 


나는 어려운 일을 배울 때 기대를 낮추고 포부는 높인다.

기대치가 너무 좋으면 무리한 항해를 하게 되고, 

포부가 너무 낮으면 항해를 하다 말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지적 몰입은 기대와 포부 그 '중간 지대'에서 생긴다.


사실 나는 그동안 기대치와 포부를 동일시했다. 내 포부가 지나치게 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꿈꾸는 만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이 진실인 줄 알았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 진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말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기대치=포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포부는 이상적이되 기대치는 현실적으로 가지면 되는 것, 그것 뿐이었는데. 내가 TEPS 공부에 열정을 갖지 못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TEPS에 대한 나의 포부는 '970점'이다. 그러나 3달 공부해서 받을 수 있는 점수는 아니다.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뒀을 무렵 나의 생각은 이랬다. 


'내 목표는 970인데 그것이 가능할까? 아, 이번엔 역시 무리. 다음 시험에 970을 받자'


 아이러니하게도, 목표 점수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해도 늦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날 게으르게 만들었다. 바로 기대치와 포부를 동일시해서 생긴 문제이다. 


 '내 최종 목표는 970인데 이번 시험에서 700점은 넘자!'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나보다 저명하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글이라도, 읽었을 때 아니다 싶으면 그만. 그런데 난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었다. 기대치와 포부는 다르다는 사실이 내게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열정을 잃었던 것은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면 최소한 100억은 벌어야 하고, 외국어를 배우면 8개 국어는 해야 하며, 살을 빼면 온 몸에 군살이 1ml도 없어야 한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목표가 힘들 것 같으니 미리 자포자기해왔다. 아마 이 리뷰를 읽는 분들은 '바보 아냐?'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바보 맞다. 


Day by day.


 내 기대치인 <나의 꿈>까지 가야만 하는 계단이 '유한(有)'함을 믿는다. 따라서 꾸준히 오르다 보면 반드시 그 곳에 도달한다는 것도. 혹시라도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살펴보게 되는 분들이 있다면 간절히 묻고 싶다. 여러분도 혹시 나처럼, '해봤자 안 돼'라는 생각으로 꿈을 포기하고 열정을 잃은 것은 아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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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보게 되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두껍다. 두께가 거의 내 엄지손가락 길이에 맞먹는다. 그래서,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또한 뭔가 맘을 뿌듯하게 하는 책이다. 질 좋은 종이의 촉감을 느끼며 첫 장을 넘겨보니, 이상하게도 새로운 문제집을 한 권 사서 처음 풀기 시작할 때의 느낌이었다. 

 

 우선 이 책의 차례를 보면, 


1부 춘추 전국 시대 

2부 양한·위진 남북조 시대 

3부 당나라·송나라 시대

4부 원나라·명나라·청나라 시대


와 같이 시대순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이과라서 세계사 쪽은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에 그리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무협 소설을 천 권 가까이 읽다보니 그래도 낯익은 이름이 몇 명 보였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게 이 책만의 가장 뛰어난 가치가 아닌가 싶다. 그 동안 동양 고전에 대한 책들은 - 어렸을 때 본 책이 대부분이라서 그럴지는 몰라도 - 교훈과 재미 위주의 책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쟁경'에서는 제목처럼 '논쟁'과 '논증', 그리고 '설득'에 관한 부분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부분 왕 또는 황제다.


 제나라 선왕과 순우곤의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선왕이 나의 취미는 무엇인 것 같냐고 묻자 순우곤이 대답하기를 "고대 군왕의 취미로는 네 가지가 있는데 대왕의 취미는 세 가지입니다."라고 답했다. 순우곤이 말하는 고대 군왕의 4가지의 취미란 말(馬)을 좋아하는 것, 맛난 음식을 먹는 것, 미인을 밝히는 것, 어진 선비를 아끼는 것이다. 그리고 선왕의 취미는 그 중 어진 선비를 아끼는 것만 빼고 나머지라고 했다. 이에 선왕이 '어진 선비가 없기 때문에 아끼지 않는다'라고 하자, 순우곤의 답변에 담긴 논리는 아래와 같다.


   고대  지금  결론
 말  화류와 기기 같은 천리마 존재  고대와 같은 것은 없지만 현재 왕은 많은 준마를 기르고 있음  왕은 말을 좋아한다
 음식  표범과 코끼리와 같은 진귀한 음식 존재   진귀한 음식은 없지만 왕의 부엌에는 진미가 많음  왕은 맛난 것을 좋아한다
 미녀  모장과 서시같은 아름다운 미녀 존재  그토록 아름다운 미녀는 없지만 여전히 수많은 미녀를 고르고 있음   왕은 여색을 밝힌다
 선비   요임금과 순임금, 우임금 같은 선비가 존재   그런 선비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아낄거라고 한다. !  



 결론을 구구절절히 적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짚고 들어가면 우리는 충분히 결론을 예측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특히 재밌게 본 부분은 4부에서 명나라의 연왕 주체(영락제)와 그의 조카 건문제 주윤문이 나오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통 무협 소설에서 - 무협 소설 중에서도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 - 다뤘던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무협 소설에서 '방효유'란 사람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나왔다. 그는 신하는 죽을지라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건문제에 대한 충절을 지킨다. 이 부분은 논증보다는, '굳은 신념의 논변'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입장에서 뜻을 지킨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끝내 목숨으로 뜻을 지켰으니 누가 방효유를 '졌다'라고 하겠는가? 때로 자신의 뜻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따르는 법이다. 문득 학창 시절 어머니께 혼날 때의 생각이 났다. 손바닥을 맞고 있었는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여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에 더 화가 나셔서 엄청 세게 때리셨고, 난 끝내 아픔에 굴복하여 잘못했다고 말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되는 일이다. 그 때 끝까지, 손바닥이 다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뜻을 지켰어야 했다. ^^

 

 

 소개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앞부분은 '논증에 의한 설득'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듣는 상대방이 그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야 설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방효유와 주체의 경우처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서 일방적인 논변만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내용이 많았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신하를 아끼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황제가 별로 없었던 것일까? ^^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선, 뿌듯하다. 그리고 공부를 한 기분이 든다. 정말 다른 학습 도서들처럼,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서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이 책 안에 담겨있는 교양이 될 만한 내용은 정말 방대하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나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즉 '말을 잘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에 버벅거리거나 막막함이 느껴지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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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 -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
하지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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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음의 힘'은 무엇인가?


 보통 우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즐기는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콤플렉스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라 


 보통 사람들은 어떤 콤플렉스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능인들은 오히려 콤플렉스를 캐릭터로 만들어서 먼저 얘기하고 마침내 장점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사람들은 연예인이고, 그런 직업이니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불특정 다수들-거의 전국민-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개방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만 용기를 내면 되지 않는가?


병풍이 되는 것을 노여워하거나 슬퍼 말라


 불과 얼마 전에 읽었던 다른 책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더욱 마음에 다가왔다. 그 책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중요하게 보이지도 않는 일이라도 반드시 누군가 한 사람은 지켜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지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내 전공이 지구과학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세상의 전부로 느껴지는 이 지구가, 태양계의 8개의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런 태양계는 우리 은하에서 하나의 점으로밖에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우리 은하조차 우주의 수많은 은하 중 하나라는 것. 즉,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또 다른 곳에서는 '병풍'이 될 수밖에 없다. '우주'급의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리액션이 없으면 소통도 없다


 학원 강사가 직업인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학원에서 수업을 할 때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오죽하면 나를 포함한 학원 강사들은 '아무 반응없는 학생보다는 떠드는 학생이 낫다'라고 한다. '이해돼요?' '알겠어요?'라고 했을 때, 작게나마 고개라도 끄덕여주는 학생이 있다면, 난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용기를 내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아무리 물어봐도 반응이 없으면 '이 아이들이 내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나?'같은 생각을 하게 되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정말 필요한 말만 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업은 점점 경직되어 간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아주 작은 표현 하나가, 깊은 소통의 시작이다.


인생에서도 즐거운 실패는 가능하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왕이면 RPG게임보다는, 고전 게임처럼 CLEAR 또는 FAIL이 존재하는 그런 게임. 난 이 부분을 읽으며 어릴 적 했었던 '고인돌'과 '너구리'가 생각났다. 3번 정도 뾰족한 곳에 찔리거나 괴물과 닿으면 죽어버리는 게임. 그럴 때 우리는 '아, 실패했네.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되나봐. 난 왜 이럴까?'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아까워라. 다음엔 꼭 성공해야지'라며 투지를 불태웠을 뿐. 그리고 실제로도, 여러 번 실패하다 보면 꼭 성공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할 때에도 이와 같다면 어떨까? ^^


때로는 적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내가 굉장히 자주 하는 것인데, 이 책의 저자께서 'active inactivity'라는 그럴 듯한 이름도 붙여주셨다.(^^) 정말, 누워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때가 종종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처럼 내 안의 무언가를 비운다거나 하는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이 귀찮아서였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귀찮아서 아무 것도 안하다 보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귀찮아져, 뭐라도 하고 싶어졌으니까……. 일종의 나만의 '힐링'이 아니었나 싶다.


고백을 들어 주는 사람이 되자


 나는 한 때 내가 '상담'에 관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친구와 심도있게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그 어떤 친구이든 금방 자신의 비밀을 내게 털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정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들을 내게 눈물을 보이며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친구들에게 그런 얘기를 듣기 전에 나는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다. 너를 이해한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뿐이다.

 내가 체득한 한 가지 팁을 말하자면, 예능 방송에서는 전국민이 보는 방송이기에 '비밀 엄수'같은 조건이 없겠지만 실생활에선 다르다. '마음놓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다니지 않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신념은 이렇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비밀이라며 내게 말해준 이야기를,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기'  

누군가의 고백을 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신뢰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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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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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많은 초고도비만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각자 그렇게 된 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보통(?)의 초고도비만 환자들은 운동 부족과 잘못된 식습관에서 살이 찌기 시작하여 몸을 더 움직이지 않게 되는 악순환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이 많겠지만, 초특급(?) 초고도비만 환자들은 뭔가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남자, 맬컴 에드'는 심리적인 이유,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로 630kg의 거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의 가장 첫 장에서 몸무게가 630kg라길래, 소설이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몸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호기심에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의 몸무게를 찾아본 후에 630kg은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는 수치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공 맬컴은 어린 시절 '유별난 아이'였다. 무엇이든 세상에서 그것을 가장 처음 하는 사람이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25살 생일 날 - 연인이었던 '루'가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한지 얼마 되지 않아 -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침대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을 선포했다.


 맬컴은 이 책의 소개글에 있듯이 '어른이 되는 것 = 특별함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특별함을 포기한 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슬프지만,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체리필터의 'Happy Day'라는 노래 가사처럼…….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묻혔나- Happy Day 中

 나 역시 20살이 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 맬컴이 침대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이와 비슷하다 - 5년간 방황을 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삶은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면 분명히 후회만 남을텐데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의 내가 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긴 시간을 의미 없이 보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부터 특별하게 살기! 정확히 말하면, 특별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사전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은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평범'한 것이지만 그 후의 나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맬컴이 침대에서 나오지 않기로 한 것은, 그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겠지. 만약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나의 주관적 생각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모르겠다. 바보같은 행동인가, 대단한 행동인가. 다만, 절대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싫어하지만, 순응하여 살아가거나 혹은 나처럼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을 하지 맬컴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드물테니까. 


 이 책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무(無)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빨간색 빛을 비추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빛을 비추면 파랗게 보이는……. 읽는 사람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느끼는 바도 제각각일 것 같은 신기한 책. 참고로 내가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현실과 타협해서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고! 

맬컴의 그런 행동을 방치한 그의 어머니의 사랑이 정말로 올바른 것일지?


 그리고, 이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말.

 형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집 뒤편의 철로를 지나는 기차 소리처럼 조용한 일상의 배경이 되었다.


 맬컴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에서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아무리 독특하고 유별난 것일지라도,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람에게는 평범함이 아닐까? 반대로 '보편적 기준'에서 봤을 때 평범한 삶일지라도, 그 삶을 살고 있는 본인이 특별함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메세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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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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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동 타이거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동호대교를 타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갈 때, 왼쪽에 보이는 나름 운치있는 집들을 좋아한다. 그리스의 어떤 도시처럼 세련되고 고풍스런 건물들. 나에게 옥수동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옥수동의 달동네와 재개발이 언급되길래 처음엔 픽션이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계속 읽다가, '혹시……?'하는 마음으로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어느 블로그에서 옥수동 달동네의 사진들을 구경하다 보니, 이 책의 내용이 한결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나의 로망이 떠올라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학교에서 '엄청 노는데 성적은 엄청 엄청 좋은 아이'였다. 이 리뷰를 보게 되실 많은 분들과 나의 동창생들의 야유가 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이 그랬다. 엄하신 부모님-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었고, 그 후로는 그 어느 부모님보다도 방임주의를 일관하시는-아래 그 누구보다도 자유를 갈망하던 나는, 부모님의 통제를 벗어날 틈을 교묘히 찾아 일탈을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일탈은 내가 서울의 SKY로 진학해야만 온전히 완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SKY가 아니면 서울로 대학갈 생각을 하지 말라시던 아버지-그런데 재밌는 것은 대학 4년 내내 등록금 및 생활비를 내가 과외와 학원 알바로 벌었다는 것-의 말씀에 나의 살길은 그 뿐이라고 생각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정말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았다. 아마 나와 동일한 세대의 분들이면 공감할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 당시, 놀면서도 의리를 아는, 사람의 도리를 아는 그런 남고생들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가 유행했다는 것을. 나는 여학생이었지만, 그런 것을 동경했다. 다름이 아니라, '자유'. 그 자유가 그 때 당시는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울었으니까. 특별히 슬픈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있을 수 있는 자유'가 너무도 부러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보충 수업 및 야자를 빼먹으며 놀러 다니는 일뿐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옥수동 타이거스에는 내가 그 시절 꿈꿨던 로망과 그 후에 내가 교생이 되어 생각했던 일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그랬다. 나는 자유에 대한 집념으로 S대 사범대로 진학하여, 2007년 교생 실습을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용공고에 재학 중이던 해이기도 하다. S대, 아니 그냥 서울대라고 하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는 서울대의 위치와 멀리 떨어진, 고려대 근처에 있다. 우스갯소리로 서울사대부중 학생들은 서울대 고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서울사대부중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셨다. 교생으로 늘 오는 사람들은 서울대 사람들이요, 학교 오다 보는 사람들은 고대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그 학교 아이들은 정말 많이, 이 소설 속의 아이들과 닮아 있다. 한 반의 아이들 중에서 양친이 모두 계시는 가정이 별로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수입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그 때 교생 실습을 했을 당시, 강남구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다. 낮에는 안암동 아이들을, 저녁에는 대치동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용공고와 중앙외고의 느낌이랄까. 그렇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 사교육의 중심에 있는 나는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사대부중의 한 아이가 생각이 났다. 내가 맡은 반은 중학교 3학년 반이었는데, 한 아이가 유독 앳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2살 어리다고 했다. 그 아이는 흔치 않은 '월반'을 한, 엄청난 부잣집 아이었다. 서울사대부중 교사진이 대부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이기에, 아이를 이 학교로 보냈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이지만, 다른 애들이 말하기를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에 오신 적이 있는데 람보르기니를 타고 오셨다고..^^그 부분에 관한 기억은 어쩌면 소설보다 더 아름답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기에, 그 2살 어린 부잣집 아이는 소외되고 왕따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 아이는 2살 많은 형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반의 재간둥이이자 우등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더 짠하게 느껴지더라.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친구(동생?)를 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속으로 많이 부러워했겠지. 그 때는 나도 나름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어렸다. 그래서,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말았다. 아이들의 마음 속 이야기까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되는 것이 많다. 이 소설에서 재덕이가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것이 나왔는데, 그 또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교생 시절, 할머니와 살던 어느 학생이 아침에 보낸 문자. '선생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왜 그 때, 달려나가서 다독여주지 못했을까. 말로만 위로하고 말았을까. 아직까지도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한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주인공 오호장군 아이들의 모습이 내 어릴 적 워너비와 교생 시절 제자들의 모습에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자유로우면서도 누군가를 지켜주는 영혼이고 싶었으며, 내 제자들의 꿈에 그들의 환경이 발목을 잡지 않길 바랐다. 현재의 나는 너무나도 자유롭다. 자유를 갈망하며 울었던 것이 무색할만큼. 마음이 더욱 강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고 싶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괜찮다. 


 다만, 지금은 연락이 끊긴 6년 전의 제자들. 그들은 현재 성인이 되었을텐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안개 속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을까……. 대치동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서울대에 진학하여 화환을 보내오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 때의 그 아이들이 궁금해진다. 결론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시작이 조금 늦었어도, 자신의 길에서 결실을 거두며 웃으며 지난 날을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의 2007년 5월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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