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보게 되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두껍다. 두께가 거의 내 엄지손가락 길이에 맞먹는다. 그래서,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또한 뭔가 맘을 뿌듯하게 하는 책이다. 질 좋은 종이의 촉감을 느끼며 첫 장을 넘겨보니, 이상하게도 새로운 문제집을 한 권 사서 처음 풀기 시작할 때의 느낌이었다. 

 

 우선 이 책의 차례를 보면, 


1부 춘추 전국 시대 

2부 양한·위진 남북조 시대 

3부 당나라·송나라 시대

4부 원나라·명나라·청나라 시대


와 같이 시대순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이과라서 세계사 쪽은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에 그리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무협 소설을 천 권 가까이 읽다보니 그래도 낯익은 이름이 몇 명 보였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게 이 책만의 가장 뛰어난 가치가 아닌가 싶다. 그 동안 동양 고전에 대한 책들은 - 어렸을 때 본 책이 대부분이라서 그럴지는 몰라도 - 교훈과 재미 위주의 책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쟁경'에서는 제목처럼 '논쟁'과 '논증', 그리고 '설득'에 관한 부분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부분 왕 또는 황제다.


 제나라 선왕과 순우곤의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선왕이 나의 취미는 무엇인 것 같냐고 묻자 순우곤이 대답하기를 "고대 군왕의 취미로는 네 가지가 있는데 대왕의 취미는 세 가지입니다."라고 답했다. 순우곤이 말하는 고대 군왕의 4가지의 취미란 말(馬)을 좋아하는 것, 맛난 음식을 먹는 것, 미인을 밝히는 것, 어진 선비를 아끼는 것이다. 그리고 선왕의 취미는 그 중 어진 선비를 아끼는 것만 빼고 나머지라고 했다. 이에 선왕이 '어진 선비가 없기 때문에 아끼지 않는다'라고 하자, 순우곤의 답변에 담긴 논리는 아래와 같다.


   고대  지금  결론
 말  화류와 기기 같은 천리마 존재  고대와 같은 것은 없지만 현재 왕은 많은 준마를 기르고 있음  왕은 말을 좋아한다
 음식  표범과 코끼리와 같은 진귀한 음식 존재   진귀한 음식은 없지만 왕의 부엌에는 진미가 많음  왕은 맛난 것을 좋아한다
 미녀  모장과 서시같은 아름다운 미녀 존재  그토록 아름다운 미녀는 없지만 여전히 수많은 미녀를 고르고 있음   왕은 여색을 밝힌다
 선비   요임금과 순임금, 우임금 같은 선비가 존재   그런 선비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아낄거라고 한다. !  



 결론을 구구절절히 적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짚고 들어가면 우리는 충분히 결론을 예측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특히 재밌게 본 부분은 4부에서 명나라의 연왕 주체(영락제)와 그의 조카 건문제 주윤문이 나오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통 무협 소설에서 - 무협 소설 중에서도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 - 다뤘던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무협 소설에서 '방효유'란 사람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나왔다. 그는 신하는 죽을지라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건문제에 대한 충절을 지킨다. 이 부분은 논증보다는, '굳은 신념의 논변'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입장에서 뜻을 지킨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끝내 목숨으로 뜻을 지켰으니 누가 방효유를 '졌다'라고 하겠는가? 때로 자신의 뜻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따르는 법이다. 문득 학창 시절 어머니께 혼날 때의 생각이 났다. 손바닥을 맞고 있었는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여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에 더 화가 나셔서 엄청 세게 때리셨고, 난 끝내 아픔에 굴복하여 잘못했다고 말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되는 일이다. 그 때 끝까지, 손바닥이 다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뜻을 지켰어야 했다. ^^

 

 

 소개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앞부분은 '논증에 의한 설득'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듣는 상대방이 그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야 설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방효유와 주체의 경우처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서 일방적인 논변만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내용이 많았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신하를 아끼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황제가 별로 없었던 것일까? ^^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선, 뿌듯하다. 그리고 공부를 한 기분이 든다. 정말 다른 학습 도서들처럼,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서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이 책 안에 담겨있는 교양이 될 만한 내용은 정말 방대하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나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즉 '말을 잘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에 버벅거리거나 막막함이 느껴지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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