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발걸음은 언제나 뜨겁다 - 택꼬의 205일간 리얼 아프리카 여행기
김태현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모두가 조금 지저분하기에, 조금은 지저분해야 튀어보이지 않는다며 때에 찌들고 낡아 찢어진 셔츠를 입고 아프리카 대륙을 걷는 한 청춘의 205일간의 아프리카 여행기.
 
비교적 한국인이 적고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적은 편이라는 동남아시아의 한 섬으로 향하는 비행 중에 읽은 책이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6일 그러니까 약 140 여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마치 엄마의 눈길을 피해 몰래 과자 봉투를 막 뜯은 아이처럼, 마냥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책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우선 나의 목적지 또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큰 곳이라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덕분에 이번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도 평소보다 좀 더 열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령, 불편한 시설이나 다소 불결해보이는 환경에 대해  그저 투덜거리기보다는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 또는 '아,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이렇게 하는 구나.'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장 205일이라니! 일년의 절반 이상을 이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제안을 받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뜻 수락할까? 아프리카의 절반과 중동 지역인데? 저자는 싱그러운 청춘에게 허락된 패기와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어떠한 형용사로도 묘사하기가 힘든 그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여행을 떠나면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모든 면에서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 그리고 현지인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일상이며, 당연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론 누군가가 후려갈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느끼는 온 몸의 감각들도, 그곳에서 듣는 생소한 이야기들도 이유 없이 즐겁기만 하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부터 인상적이었다. 나 또한 여행의 묘미란 일상의 짐을 덜어내고 타인의 삶의 유•무형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받아들이는 과정이 자의로 인한 것이든 타의로 인한 것이든 말이다. 일상을 벗어나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그 중 어떤 이들은 마치 '나를 후려갈기는 것과 같은 충격'을 선사하는데, 나 역시도 일상에서 쉽사리 맛볼 수 없는 그 낯선 충격(나는 그것을 '울림'으로 표현한다만)이 좋아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다고 느낀 건, 방문하는 국가의 문화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의레 여행을 떠날 때면 나를 돋보이게 해 줄 옷을 준비하고(심지어 새 옷을 구입하는 정성까지),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미리 완벽하게 계획을 짜두기도 하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건 바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일 것이다. 택꼬의 경우에도 현지 가이드를 방불케 하는 상당한 정보와 배경지식을 뽐내며 그 대륙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사진을 곁들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프리카라는 그토록 풀어낼 이야기가 많은 최적의 장소에서, 성능 좋은 카메라로, 과연 "저런" 사진밖에 담아내지 못하나 싶을 정도로 별다른 의미나 의식없이 그저 '여권에 도장찍는 게 취미여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무의미한 에세이와 여행기가 판을 치는 이때 땍꼬의 여정은 그리하여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이 리뷰를 쓰는 내내 내 방 벽에 붙여둔 세계 지도에 자꾸 눈이 간다. 컴퓨터 모니터 왼쪽 위로 그려진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 시선이 가 닿는다. 정의가 아니라 힘으로 약자를 굴복시킨 서구 세력에 대한 소리없는 분노, 또 소유의 양이나 정도가 행복과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외면당하는 진리에 대한 택꼬의 외침이 저 푸른 아프리카 대륙을 뒤덮고 있다.
 

사막의 길은 마치 인생과 같다. 지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앞길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길은 이어져 있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때로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때로는 두 다리로 걸어 느릿느릿 힘겹게 여행을 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행도 어느 순간 마지막 목적지에 다다르고, 그동안 겪어온 일들만큼 성숙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p.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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