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 - 대한민국 대표 석학 8인이 신인류의 지표를 제시하다 코로나 사피엔스
김누리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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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베를린 관광청과 상원이 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 캠페인 광고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철회됐다. 불필요한 분노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 번째 손가락을 쳐든 여성의 사진과 문구가 문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손가락이 여기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유럽이나 북미의 다른 도시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툭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마스크를 불태웠다. 엊그제 미국에서는 암 환자 앞에서 고의로 기침하다가 30일 징역형에 처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마스크 착용이 정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까?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무엇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까?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과 안전)이 충돌하는 건 마스크뿐만이 아니다. 거리두기 단계 조정도 그렇다. 요새같이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때 정부는 거리두기를 강화해 바이러스 감염을 최대한 막아보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반발이 거세다. 이걸 하려면 저게 눈치가 보이고, 저걸 하려면 이게 눈치가 보이는 형국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코로나 사피엔스, 새로운 도약>은 코로나 펜데믹 이후 우리가 살아야 할, 또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다. 저자로 나선 8명의 학자가 강조하는 것 중에 반복되는 두 개의 키워드는 연대와 복지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게 그 두 가지란 얘기다.


저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이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 원인을 정부의 소극적 개입에서 찾는다. 긴박한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시장에 모든 걸 맡길 때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지만,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공의료가 시장에 잠식된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김누리 교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라이피즘lifism(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자)을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삶과 생존, 생명을 파괴하는 안티라이프 체제라는 점에 주목하고, 연대와 복지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처럼 0.1퍼센트가 99퍼센트의 부를 독식해 버리면 중산층이 붕괴해 '압정형 사회'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생계형 자영업자가 유난히 많아서 더 심각하다. 코로나 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계층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역시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복지 제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이 취약하다.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OECD에서 34위다. 2~3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는 게 이 정도인데 우리나라 뒤에는 멕시코, 칠레, 터키밖에 없다. G20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재정 지원을 적게 한 국가도 5개국뿐이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경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에 힘써야 하는 적기라고 말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그 핵심에는 '복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묻는다.

'만약 백신으로도 코로나 19 사태를 완전히 끝낼 수 없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그는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는 그들로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늘면 실업수당이 늘고, 사회적 재해가 늘며, 결국 시스템이 붕괴한다. 이때 정부가 할 일은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부어 감염병의 대유행 사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최배근 교수의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 경제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재 전 세계의 가장 큰 화두는 기본소득이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은 혁신과 성장의 시드머니이고, 이는 정부와 기성세대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고 덧붙인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연대와 복지다. 연대의 목적이 복지 증진을 위한 거라는 걸 고려하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복지다. 물론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리저리 새는 돈이 많아서 그런지, '퍼주기'니 '생색내기'니 하면서 반발이 심하다. 하지만 복지에 더 많은 세금이 들어가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반발을 줄이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여덟 저자의 이야기는 묘하게 맞물린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이야기하지만, 이어달리기하듯 앞사람의 주장과 뒷사람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최종 목적지 '복지'에 다다른다. 환경 이슈도 빼놓을 수 없다. 환경과 경제를 별개로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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