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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여자 없는 남자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 의미는 마지막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밝혀진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7개의 단편을 통해, 우리는 7명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여자와의 깊은 관계를 상실했거나, 애초부터 그런 관계를 지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들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었을까? 「예스터데이」의 다니무라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예스터데이」속 연인 기타루와 에리카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깊은 연인 관계이지만, 끝없는 분리 불안에 시달린다. 두 연인은 상대방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이는 에리카의 꿈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 단편집의 표지에 실린 멋진 얼음 달이 바로 그것이다. "나와 아키 단둘이서 그런 항해를 계속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해. 우리는 매일 밤 둘이서 나란히, 둥근 창으로 얼음 달을 보는 거야. 달은 아침이 오면 녹아버리지만 밤에는 다시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어느 날 밤, 달은 더이상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달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 밤을 상상하면 너무 무서워. 내일 내가 어떤 꿈을 꿀지 생각하면, 몸이 소리를 내며 오그라들 것처럼 무서워." 그렇게 시절을 지나, 몇년 후 다시 만난 에리카는 여전히 기타루와 함께이지도, 그렇다고 분리되지도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기타루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삶에, 서로와의 관계가 강한 얼룩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깊고 친밀한 관계를 경험했고, 상대를 향한 자신의 불안, 고독,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상대를 떠나야했다. 그들은 평생 와인 자국과 함께 살고 있다.
「기노」의 주인공 기노는 아내의 외도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을 드러내 아내를 원망하거나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자신을 피해자라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육상선수가 되려던 그는 부상으로 인해 선수를 그만둬야 했고, 십칠 년간 스포츠용품 판매회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이라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침실 문을 닫고 일주일치 빨랫감이 든 여행가방을 도로 어깨에 멘 체 집을 나와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렇게 담담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방법이다. 단순히,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근다고 해서 그의 방이 완전히 보호받을 수는 없다. 세계는 끊임없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방을 노크한다. 노크를 계속해서 피한다면 그 끝은 죽음이 될 것이다. 결국 그 노크는 우리가 침대에서 내려와 스스로 문을 열기를 요구한다. 문은 자기 자신만이 열 수 있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 하고 있다." 얼룩으로 남은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얼룩임을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살기 위해서, 내가 나 자신이기 위해서, 언젠가는 방 문을 열어야 한다. 방 안에 밴 와인 냄새를 걷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오기 위해서.
「독립기관」. 나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단편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 도카이는, 여자와의 깊고 친밀한 관계를 일부러 피해가는 듯해 보인다. 마음에 드는 여자들과 '쿨한' 관계를 지속하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연애를 즐긴다. 그렇게,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의 삶은 그럭저럭 꽤 건강하고 활기있어 보인다. 그는 유능하고 친절하며 배려심이 깊다. 그러나 단 한번, 사랑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죽음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한 여자, 그것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한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도카이는 자신이 갖고 있던 가치관, 세계관, 의지, 목표, 삶의 방식과 완전히 대치되는 사고에 빠진다. 그는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대체 무엇인가." 지금껏, 자기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째서 지금껏, 자신의 삶 속에서 한번도 그러한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는 죽음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공허함, 자책, 조소, 혹은 그것도 아닌 무엇일까. 「독립기관」의 시작 부분이 무엇보다 아주, 탁월하다.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의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교'란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단편 속 '기교'의 의미를 나름대로 표현해보자면, '사랑이 없음'의 상태에서 그 공허함을 무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는 행위다. 필연적으로, 인공적이고 비자연적인 행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고. 시간이 흐르면 상실과 상처의 고통이 조금 사그러들지는 몰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실의 경험은 우리 삶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때에도 여전히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 혹은 남자 없는 여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만약,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고 치자. "사랑을 시작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마도 많은 수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 대답할 것이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좋겠군요."라고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잠자'에게 사랑을 시작하지 말라,고 조언할 수 없다. 사랑은, 시작하기 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카이에게 그랬듯, 사랑을 하는 기관은 '독립기관'이기에 당신이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독립기관의 운동은 유기체적인 연쇄작용을 일으켜 당신의 총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돌이키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의 상실 또한 당신의 삶과 당신이라는 총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그 상실은 조금씩 희미해져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달라지는 카페트의 얼룩처럼 서서히, 조금씩.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 진행될수록, 삶의 관록이 더해갈수록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깊어지고, 재해석된다. 어느 순간 불현듯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당시의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기도 하며, 어쩌면 "모든 것이 어찌되었건 상관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얼룩은 '다의적인 윤곽'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얼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 얼룩은, 당신이 새로운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어쩌다 새로운 또 하나의 얼룩을 얻게 된다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한 생을 살면서, 당신의 카페트는 크고 작은 얼룩들로 가득해질 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한 여자를 잃으면서 모든 여자를 잃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면, 당신의 카페트에는 커다란 하나의 얼룩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 커다란 얼룩과 함께 생을 보내면서,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려 할 때부터, 새로운 얼룩을 얻게 될 것을 생각하며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시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위에서도 썼듯, 사랑은 시작하기 전에 시작되기 때문이고, 사랑은 당신의 신체 어딘가에 있는 '독립기관'에서 일어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