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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전경린의 『해변빌라』

주의할 점. 해변에 있는 어느 빌라가 아니라, 집 이름이 바로 해변빌라기 때문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거나 의미는 둘다 통한다. 정말로 해변에 있는 빌라니까.
『해변빌라』에서, 인생은 바다에 비유되고 연이어 책에 비유된다. 인생은 물결이 물결에 밀리는 일상의 연속인데, 이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 연상된다. 물결에 물결이 밀리듯 책의 페이지가 페이지를 덮고, 그러다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고 덮여버리는 하나의 물결, 하나의 페이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꽤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게 되는데, 그 속에는 진실도 섞여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는 진실도 지나쳐간다. "어쩌면 진실이야말로 인생에 아무 소용이 없지요. 무언가를 하는 것은, 진실의 조각들이 아니라 물결에 물결이 밀리는 것 같은 일상의 연결된 행동이니까요. 거인을 재운 듯한 정적이 몰려오면 바다는 더 밝고 맑아져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물결 위에 물결을 덮으며 느리게 다가왔어요. 내가 읽지 못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인간은 자신의 삶과 그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물결을, 모든 페이지를 다 알 수는 없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오해를 만드는 존재"이고, "자기 속에 있는 것을 통해서 오해하는" 존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한계로 인해 필연적으로 오해가 생기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미궁이 된다. 우리는 인생의 미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 유지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유지를 만나면, 그녀가 땅에 발을 딯지 못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녀는 때때로 주변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그보다 더 자주, 자기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아직도 발밑이 바닥에 닿지 않아."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자신은 누구인지의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물음을 안고 있다. 그 질문은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한 가지 지독한 점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서도 여전히 삶은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와 공존하면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유지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머릿속으로 별이 지나가듯, 삶은 괴물을 가둔 미궁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겹겹의 윤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다가가지 말아야 하고 열어서는 안 되고 말해서도 안 되는 괴물은 실은 삶의 얼굴 자체였다. 그러니 우리는 아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내 본질이 뻥 뚫려 구멍이 나 있더라도 그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것이 삶인 것이다."
유지는 이사경에게 강력한 '밀착감'을 느낀다. 그녀는 이사경이라는 사람 자체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고, 자신의 친모인 이린과 이사경의 내연 관계를 짐작하고서는 이사경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확신한다. 단지 누구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그것은 확실한 사실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사경을 아버지로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의 수많은 질문은 풀리지 않았다. 친모인 이린은 기어코 떠났고, 이사경은 언제나 말보다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이사경을 비롯한 누구도, 유지의 본질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고 그녀 스스로 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유지는 자신의 본질을 채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허공에 떠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음악적 동료이자 연인인 오휘는 그녀와 일치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낀다. 그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너는 없어." "유지, 네가 원하는 게 뭐니?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어……"라 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결국 오휘는 음악을 떠나고, 그녀와도 헤어지게 된다. 유지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혹은 자신이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 끝까지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자신이 오휘를 사랑했고 원했음을 깨달았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또 괄호를 하나 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개의 괄호를 치고 나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당분간 괄호 속에 묶어놓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건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지가 계속해서 괄호를 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참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게 원칙이다. 작가는 『해변빌라』의 에필로그에서, "말하자면, 괄호에 관한 소설이다"라 덧붙이고 있다. "오해와 착각과 환상과 거짓과 허구와 진실의 충돌 사이에서" 그 모든 것에 싫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문제는 괄호 속에 담아두고, 충돌을 피하고 갈등은 내버려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걸 억제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변화는 생겨났다. 알고보니 그 이유는 "소설의 내부에 의식과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내부에 의식과 시간이 흐르듯, 마찬가지로 삶에도 의식과 시간이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의 에너지는 계속해서 생겨났고 어느샌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흘러가고 변화했다. 문제가 풀리고,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결국 괄호는 열리고 삶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유지는 이사경의 아들인 연조에게서 이사경의 모습을 본다. 자세히 묘사되어있지는 않지만 연조에게 있어서 유지는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사경을 닮아 깊고 잔잔한 연조에게서, 유지는 따뜻한 휴식과 안정을 얻는다. 동시에, 연조의 이혼으로 엄마를 잃은 연조의 아들 환에게는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본질을 잃고, 인정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는 환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유지와 환의 관계는, 이사경과 유지의 관계와 닮아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자라, 어머니가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이사경은 유지와 강력한 연결고리를 공유했다. 하지만 이사경은 이제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했다.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아마 유지도 이린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환도, 시간이 더 흐르면 언젠가 자신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될까. 이 기막힌 관계의 연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의 손을 잡은 연조는 또 다른 손을 유지에게 내민다. "네가 내려설 바닥이 우리 사이에 있으면 좋겠다……."
""바다가 두꺼운 책 같다." 연조가 말했어요. 나는 어쩐지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기분이 들었어요. 편 사장이 가게 문을 열고 나와 재촉하듯 이쪽을 보고 있었어요. 기시감이 드는 순간이었지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일들이 늘 우리의 옆구리로 흘러가니까요.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우리는 전과 조금 달라지기 위해 살아가는 거라고요."
이 소설의 기막힌 비유가 책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며,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우리가 우리의 삶 곳곳에 쳐놓은 괄호는 대체 언제 풀릴 것인지 여전히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듯, 우리 인생에도 의식과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생을 향해 움직여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메시지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이사경의 어머니, 이사경과 이린, 유지, 그리고 환의 인생을 따라 시간은 이어지며 그들은 전과 아주 조금, 달라지고 있다. 단지, 전과 '조금' 달라지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희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