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혼
김원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민혁명당 사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북의 지령을 받는 간첩의 내란음모사건으로 알려졌고 주동자로 지목된 8명은 모두 사형되었다. 그후 30년이 지난 지금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날조한 사건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사건의 주인공들은 거물간첩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투사로 그 위치를 바꾸었다.
 푸른혼은 최초로 인혁당 사건을 소설의 주제로 선정하고 있다. 그동안 이야기하기에도 꺼려졌던 사건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주의를 끌만하다. 하지만 소설은 단순히 진실을 파헤치는데 그치지 않고 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사건에 연류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들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설은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8명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사상이나 정치적 소신 등이 자세히 이야기되고 그들이 참여했던 단체나 활동내용 등도 주요 줄거리를 구성한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내용을 자세히 알리거나 그들에게 씌워졌던 누명에 대한 정치적 해명을 하는 것은 소설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권’이라는 한가지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이라는것도 군사정권 하에서의 인권유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말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기본적인 자유마저 죽음을 각오한 투쟁으로서만 성취할수 있었던 비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설이 한가지 사건을 중심에 놓고 쓰여진 연작소설이기 때문에 각각의 소설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건을 서로 다른 주인공이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기에 결코 지루하지않다. 또한 사건의 사실성에 기초한 소설이기에 자칫 현대사 교과서 같은 건조성에 빠지기 쉬운데 사건의 진실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라 희생당했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기에 오히려 어느 픽션소설보다도 진한 감동과 긴장감을 준다.

 소설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예전의 투사들은 이제 밝은 정치무대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마음껏 펼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좌파논쟁과 색깔공격으로 시름하고 있는 현실은 사형을 당했던 8명의 주인공들과 작가가 이야기 하는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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