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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테나 1 -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 ㅣ 블랙 아테나 1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 소나무 / 2006년 1월
평점 :
서양의 고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게 그리스 문명은 인도유럽어를 쓰는 아리아인종의 침입으로 형성되었다거나, 어떠한 다른 문명의 도움도 없이 자생적으로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보통 ‘아리안 모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블랙 아테나』를 쓴 마틴 버낼은 이러한 아리안 모델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그리스 문명도 다른, 특히 동방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것은 고대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이 저술한 사료에서도 쉽게 확인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로 그리스의 시초가 되는 미케네를 세운 페르세우스의 조상인 다나오스가 사실 이집트로부터 축출된 힉소스임을 밝힌다. 다나오스는 이집트에서 형제인 아이깁토스와의 세력다툼에서 지고 펠로폰네소스 지방의 아르고스에 와서 그곳의 왕을 축출하고 자신이 왕이 된다. 그 후 다나오스의 후손인 페르세우스가 미케네를 세우고, ‘도리스족의 침입’이전까지 그리스 지방을 지배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이집트적 뿌리를 가졌다는 것은 페르세우스를 위해 축제를 벌이는 이집트인들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페르세우스는 다나오스의 후손이고, 다나오스는 힉소스이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자신과 뿌리가 같은 페르세우스를 위해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 후 도리스족의 침입이라고 불리는 헤라클레스왕가의 귀환도 헤라클레스가 페르세우스의 후손임을 감안한다면 그리스문명의 이집트적인 뿌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세운, 스파르타의 왕 아레오스가 유다인과 자신들은 형제라고 부르는 것도 자신들의 힉소스적인 뿌리, 즉 유다인과 페니키아인이 포함되는 힉소스임을 생각한다면 모두 아브라함의 후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리스문명의 상징적인 존재인 ‘아테나 여신‘도 이집트에서부터 왔다고 주장한다. 아테나 여신은 다나오스가 이집트로부터 떠나올 때 들여온 것이라는 것인데, 다나오스가 아테나 여신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플라톤도 아테나여신은 나일 삼각주에 있는 사이스市의 창립자, 즉 이집트어로 ’네이트‘여신이라고 서술한다. 헤로도토스도 사이스에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있다는 것을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문명의 형성에는 이집트문명의 영향이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는 결국 다나오스로부터 시작하는 미케네 그리스문명의 역사가 되는 것이며, 그 역사는 사실 이집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리스 신화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허구의 이야기로만 인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역사자체에서 기인한다기보다 고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은 그동안 유럽을 지배한 그리스도적 가치관을 대체하는 엄청난 혁명이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패함으로써 자신들이 국가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싸인 프로이센의 지배층은 결국 헬레니즘이라는 제3의 대안을 생각해내게 된다. 그리하여 독일과 독일의 영향을 받은 영국에서는 古典學, 古代學이라는 학문이 발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제국주의, 인종주의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고 古典學은 유럽중심주의를 전파하는 이데올로그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당시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미개한’ 동방의 문명이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을 입증하는 ‘미케네 그리스’의 역사인 그리스 신화는 정당한 가치를 가진 사료가 아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인 신화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인 마틴 바낼은『블랙아테나』의 ‘정치적 목적’은 유럽의 오만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집트의 영향을 긍정하는 ‘고대 모델’이 그리스 문명은 순수하며 자생적이라는 ‘아리안 모델’로 바뀌는 과정을 “지적․학술적 발전은 사회․정치적 발전과 더불어 관찰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입각해 살펴봄으로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시각이 사실은 수많은 왜곡과 편견을 통해 만들어진 인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블랙 아테나』는 단순히 고대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 아니라 고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우리안에 자리잡은 유럽중심주의라는 편견을 깨는 책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