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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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학문일까. 먼저 역사는 모든 학문에 있어 자신들의 뿌리와 발전을 연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한다. 과학의 발전을 연구하는 과학사의 영역 등 역사적인 통찰은 모든 학문에 있어 필수적인 연구방법이다. 하지만 역사학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학문적 필요성을 넘어 인간이 걸어온 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과거가 긍정적이었건, 부정적이었건 우리는 그것을 연구하고 밝혀야한다. 그것은 비단 지나온 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는 이러한 역사학의 의의에 상당히 부합한다. 그의 글은 결코 어렵지 않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쓴다. 하지만 깊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아야 하는 것, 느껴야 하는 것을 냉철하게 파헤친다. 그는 역사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자는 그의 글을 읽고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고, 그러한 왜곡이 가져온 일그러진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4권은 비교적 최근의 일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지금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가장 일차적인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최소국가를 주장했던 자유주의 사상가들도 국가의 역할에서 그것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국가의 권한을 바로 '주권'이라고 한다. 저자는 먼저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국과의 사이에서 과연 한국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가 묻는다. 전쟁 중의 상황이라고 하지만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사건의 진상까지 왜곡하는 미국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한국은 과연 주권국가인가. 주권의 상실은 비단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광주 항쟁을 계기로 불타오른 反美의 영향도 잃어버린 주권을 찾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과의 FTA를 개방이라고 찬양하는 주장에 대해 홍선대원군과 광해군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저자는 FTA의 체결은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우리의 주권이 작동하지 않는 결과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한국국적을 가진 '제국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를 보면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 제국인이다. 한국 이름을 갖고, 한국에서 대학 나오고, 한국에서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제국의 이익이다. 내선일체를 꿈꾸던 옛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조차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체감을 제국은 이미 이루고 있다. - p. 36  

'주권'의 문제가 국가의 성립이유라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가 가장 우선시해야할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함께해 지금까지 목숨을 유지하는 있는 '국가보안법'때문이다. 저자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피해를 본 다양한 사례를 언급한다. 독재정권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언행을 하면 국가보안법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국가보안법은 맹위를 떨쳤다. 제대로 된 현대사 연구도 할 수 없었고 비판적인 학문성과도 내놓을 수 없었다. 저자는 국가보안법과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본질을 밝힌다.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한 사람의 스타 과학자에 대한 의심없는 충성이 황우석 사태의 본질이듯이, 합리적 의심을 철저히 가로막는 폭력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기억의 문제를 수반하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망각하고 기억하는지는 모두 그 사회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금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고백을 거부하고 자신을 미화하는 사람들은 명예와 부를 이어나가고 고백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여야 할 사람들은 두려워서 숨어사는 사회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역사를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고통이 피해자가 당한 고통보다 크지는 않다. 지금 고백이 필요한 정말 중요한 이유는 고백이 치료약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통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당신이 하는 고백은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다. 억만금을 보상으로 준다고 해도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가해자의 고백으로 치유될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와 국가를 향한 고백은 비록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가해자와 그 후손들이 고백 없이 이름이 밝혀질 때 입을 상처를 막아주는 예방약이 될 것이다. - p. 172    

역사는 결국 인간이 만들지만, 또 역사는 인간에게 엄청난 상처 또는 명예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역사를 만들고 그러한 역사에 의해 상처받은 개인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은 한국의 일그러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이겨낸 증인이다. 저자는 그의 삶을 통해 통혁당 사건의 진실을 전한다. 원폭으로 인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원폭2시대 김형률의 삶은 세계2차 대전이라는 광기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처절히 보여준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살펴볼 때 개인을 잊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 결국 잘못된 역사는 개인의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전사들이었지만 지금은 기득권을 가진 386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비판이 이어진다. 저자는 그들에게 철들지 않을 것을 주문하며, 그들이 정의를 위해 싸웠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역사가 왜곡되어서 지금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들을 파헤친다. '초원복집'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가진 것을 조금도 내놓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과 좀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헤게모니 투쟁을 살펴보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사학에 대한 규제를, 박정희의 정치적 자산을 계승한 박근혜는 그 어떠한 규제도 사학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비웃는다. 저자가 항상 주목하는 주제인 군대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전쟁 중이 아님에도 수백 명의 군인들이 죽어나가는 지금의 군대는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며, 군대 개혁의 핵심이 되는 감군의 문제를 거론한다. 군대문제는 단순히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인 것이다.

<대한민국史>는 대중적인 역사교양서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이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왜곡된 역사에 대해 알리고, 그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대한민국史>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결코 작지 않은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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