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혜영의 단편소설「저녁의 구애」는 잃어가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하고 동정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감정들을 어딘가 불편하고 꺼려지는 상황에 가져다 놓으며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을 보여준다. 


  김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임을 알고 있지만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친구와 함께 병원에서 그 시간을 견디기는 껄끄러워 가까운 곳에서 대기한다. 그런 저녁. 그런 저녁에 계속해서 걸려오는 여자의 전화가 있다.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김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데, 그  한밤중에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도로위를 달리며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또 그 뒤에 트럭이 달려오더니 전복 되어 타오르는 장면. 어딘가 비일상적인 이 장면 때문에 김은 현실로 돌아온다. 마치 소설 속에서 우리가 현실의 조각을 발견하는 것처럼. 



  진심과 상관없이, 여자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는 두려움이 점지해준 고백 때문에 곧 부끄러워질 것이며 어떤 말도 돌이킬 수 없어 화가 날 것이고 그 말이 불러온 상황과 감정을 얼버무리려고 애를 쓸 것이며 그럼에도 당시 마음에 인 감정의 윤곽이 무엇인지 헤아릴 것이었다. 그 생각에 김은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트럭은 여전히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김은 땅에 박힌 듯 멈춰 서서 조등처럼 환히 빛나는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저녁의 구애」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기 한빛문고 2
황순원 지음, 강우현 그림 / 다림 / 199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순원의 소나기를 처음 읽었던 것은 12살, 겨울방학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 불안했던 나는 동네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때마침 동네에 크고 화려한 학원이 생겼고, 동네 친구들이 많이 다니게 되면서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할 겸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은 다녀봤어도 공부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동화책을 읽거나 공책에 낙서를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잔뜩 빌려와서 보며 보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활개 치며 다니기도 했다. 한여름에 격하게 뛰어놀다가 땀이 많이 나면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 계단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온 동네 건물을 다 들쑤시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쨌든 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를 해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적성에는 맞지 않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생전 처음으로 일등도 해보고, 선물도 받고, 학원비 할인도 받으면서 착한 모범생만이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거짓말하고 친구랑 땡땡이치기도 하고….


학원 쉬는 시간에 편의점으로 우르르 달려가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도 즐거웠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즐거웠는데 그것도 반복 되니 어느 순간에는 지겨워졌다. 공부 별로 안 해도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고, 손바닥 맞기 싫어서 학원가는 길에 급하게 달달 외우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외우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빨리 잊었다.


어쨌든 대충 맞기 싫어서 떼워버리는 그런 것이 공부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면서 학원을 그만두었는데, 내가 다닐 때가 그 학원 최고의 부흥기였을 것이다. 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그 학원에 다녔으니까….


어쨌든 나는 처음 문제집을 받고 집에서「소나기」를 먼저 읽어 보았다. 어린 내가 느꼈던 아릿한 느낌, 소나기가 몰아치는 여름날의 냄새, 소녀와 소년 사이에 흐르는 감정들.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어 본 것이다. (동화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랑 말고)


그런데 그 뒷장에 이어지는 문제들을 풀 때 뭉클했던 감정은 갑자기 이성적이 되라고 강요받았다. 지금도 그 작품이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학생들이 그 작품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은 작품이 주는 큰 감동도 있겠지만 그 뒤로 점점 수능식 문제풀이에 익숙해지면서 ‘소설’이 ‘지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증상 또는 버릇이 생기는데, 그런 버릇이 생기기 이전에 읽었던 소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나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설이지만 다시 떠올려보면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런 작품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걸작선 5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단편집에 수록 된 단편 중 「금연주식회사」라는 단편이 있다. 「금연주식회사」는 98%의 성공률로 금연을 보장해주는 한 회사에 주인공 모리슨이 금연을 의뢰하며 생기는 이야기다. 한 대기업이 흡연하는 회사원은 승진에 제약을 준다는 식으로 금연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하지만 담배회사들은 오히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형태나 새롭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흡연자 중 많은 수가 금연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재 자체가 굉장히 현대인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만큼 이 소설이 주는 공포감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금연주식회사는 스스로의 통제에 의해 또는 자율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을 회사가 대신해준다는 점에서 ‘다이어트’를 해주는 많은 관리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이어트에도 이런 방식을 적용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짧은 소설이기에 내용을 이야기 해버리면 그만큼 읽는 재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여름밤에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이 금연주식회사가 의뢰인이 담배를 끊게 만들기 위해 행하는 일들, 그리고 일상의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평생 느껴야 하는 공포 등 이 짧은 소설이 지닌 재미는 큽니다.


이 소설이 <캣츠 아이>라는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도 만들어 졌다고 하니 구할 수 있으면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을 하면 주고 싶어진다. 마음이든 물건이든, 어쩌면 받는 사람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도 있는 그런 것들 까지도. 

성석제의 소설 '첫사랑'에서 백승호는 '나'를 좋아한다. 성장기 소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일까. 

'나'에게 빵도 주고, 튀김도 주고, 폭력으로 부터도 지켜준다. 하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호기심 많은 중학생일 뿐이다. 목욕탕을 훔쳐보고 싶어하고 빵집 걔집애에게 호기심을 갖기도 한다. 

어느 날 빵집 여자와 승호가 자는 것을 훔쳐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건 승호에 대한 동경을 여자에게 대입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멋진 친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멋있어 보이는 이치로...

그러니까 여기까지의 '나'가 가진 여자에게의 호기심은 초등학생이 가질 법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승호와 마지막 포옹'을 하며, 자신이 비로소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빵집 처녀가 아니고 승호였을까.

왜 제목이 '첫사랑'이고, 동네 이름은 '지옥동'일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기시감을 많이 느꼈다.

인터넷 소설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재인 '잘 나가는 일진'과 '평범한 주인공'의 법칙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

물론 이 소설이 훨씬 이전에 나왔던 소설이라는 점과 

저질 인터넷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성과 묘사로 가득 차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 뿐만 아니라 동성애 소재를 사용한 많은 작품들이 이런 관계를 자주 그린다.

또 남학생들의 우정이나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비슷한 관계는 반복된다. 

(모사이트에 모인 자칭 '빵셔틀'들은 '잘 나가는 일진'의 관심을 받으면 마치 '성은'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묘사한다.)


  오래 전 이 소설을 읽을 때 안개 낀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아련하고, 분명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아, 다 써놓고 나니까 저 '빵'이라는 소재와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빵셔틀'의 관계가 미묘하다. 이후 학생들에게 빵은 어떤 의미가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어터 1 : 식이조절 편 - 건강한 생활을 위한 본격 다이어트 웹툰 다이어터 1
네온비 지음, 캐러멜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이어터는 무수히 쏟아지는 잘못된 다이어트 정보들을 제치고

정정당당한(?) 방법, 정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웹툰이다.

초반에는 주인공 '수지'가 고도비만을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들과 실패를 중반에는 사기꾼이자 트레이너인 '찬희'와 함께 운동+식이조절을 하며 체중이 줄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현재는 새로운 트레이너와 등장인물이 출현, 찬희와 라이벌 구도를 그릴 예정으로 보인다.

작가 자신이 고도비만이었던 과거가 있었음을 밝히며 공감대 상승, 더욱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이 만화의 장점은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것과 정보를 전달 하는 것에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는 점

예를 들어, 수지의 몸 속 지방과 근육의 관계를 만화로 표현한다던가 하는 서브 이야기들이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만화를 보면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부부가 되신 글/그림 작가 두 분도 운동마니아라고 밝혔는데,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나 진솔함이 돋보인다.

기존에 '다이어트' 하면 아무래도 안 좋은 선입견이 끼어 들게 마련이었다.

모 티비 프로그램에서 빠른 시간 안에 살을 빼며 눈물을 흘리는 줄연자들을 보면,

꼭 저렇게 까지 혹독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다이어터는 주인공 '수지'가 어서 원하는 체중에 도달할 수 있게 응원하게 된다.

뒷이야기가 예측되지 않아, 흥미진진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처를 딛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거기에 정보까지 담긴 훌륭한 웹툰임에는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