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한빛문고 2
황순원 지음, 강우현 그림 / 다림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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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순원의 소나기를 처음 읽었던 것은 12살, 겨울방학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 불안했던 나는 동네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때마침 동네에 크고 화려한 학원이 생겼고, 동네 친구들이 많이 다니게 되면서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할 겸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은 다녀봤어도 공부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동화책을 읽거나 공책에 낙서를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잔뜩 빌려와서 보며 보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활개 치며 다니기도 했다. 한여름에 격하게 뛰어놀다가 땀이 많이 나면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 계단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온 동네 건물을 다 들쑤시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쨌든 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를 해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적성에는 맞지 않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생전 처음으로 일등도 해보고, 선물도 받고, 학원비 할인도 받으면서 착한 모범생만이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거짓말하고 친구랑 땡땡이치기도 하고….


학원 쉬는 시간에 편의점으로 우르르 달려가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도 즐거웠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즐거웠는데 그것도 반복 되니 어느 순간에는 지겨워졌다. 공부 별로 안 해도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고, 손바닥 맞기 싫어서 학원가는 길에 급하게 달달 외우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외우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빨리 잊었다.


어쨌든 대충 맞기 싫어서 떼워버리는 그런 것이 공부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면서 학원을 그만두었는데, 내가 다닐 때가 그 학원 최고의 부흥기였을 것이다. 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그 학원에 다녔으니까….


어쨌든 나는 처음 문제집을 받고 집에서「소나기」를 먼저 읽어 보았다. 어린 내가 느꼈던 아릿한 느낌, 소나기가 몰아치는 여름날의 냄새, 소녀와 소년 사이에 흐르는 감정들.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어 본 것이다. (동화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랑 말고)


그런데 그 뒷장에 이어지는 문제들을 풀 때 뭉클했던 감정은 갑자기 이성적이 되라고 강요받았다. 지금도 그 작품이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학생들이 그 작품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것은 작품이 주는 큰 감동도 있겠지만 그 뒤로 점점 수능식 문제풀이에 익숙해지면서 ‘소설’이 ‘지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증상 또는 버릇이 생기는데, 그런 버릇이 생기기 이전에 읽었던 소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나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설이지만 다시 떠올려보면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런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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