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30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한성희 지음 / 갤리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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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와 비슷한 책이지만 조금 더 감동이 진했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치유가 되었다. 마치 엄마가 조곤조곤 나를 위해 조언을 해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와 닿았고 정신분석 전문의의 글이라 좀 더 신뢰가 갔다. 또 그녀는 전문의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엄마이고 엄마가 딸에게 해주는 충고이니 믿음이 간다.

이 책을 읽고 이전보다 훨씬 웃음도 많아졌고 자신감도 상승했다.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과 결과가 어찌됐든 일단 가보자는 용기가 생기니까 예전처럼 내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주눅들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는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왔던 옳고 그름 사이에서 자신 있게 “내가 가는 길이 맞는거야!”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 스스로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를 깨달았고 그 덕분에 세상이 한층 밝고 아름답게 보였다. 너무너무 감사한 책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아야지.

지금 어려운 시기(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것이다)를 보내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짓밟는 친구들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미움은 점점 주변인에 대한 미움, 그리고 전 사회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된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면서 지레 겁을 먹고 실천해보기도 전에 “어차피 안 될거야” 라며 자포자기해버리거나 무의식적으로 실패의 변명거리부터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변명은 결국 자신의 단점들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게 불신이 쌓이며 결국은 나아가 타인과 주변인에 대한 불신까지 낳는다. 이러한 이유없는 불신은 타인에 대해 방어적이고 경계적인 태도를 취하게한다. 점점 세상은 비관적으로 보이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삶의 이유를 망각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내가 그랬고 내 주변의 몇 친구들도 그랬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최근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그래서 여전히 고민과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많은 대중들에게 이 책을 추천 해주고 싶다. 분명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것이며 나 자신과 주변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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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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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시즌 역사e의 특징은 전편보다 훨씬 간접적이라는 것이다. 읽은 지 조금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전편은 역사이야기를 들려준 뒤 과거와 비슷한 현재의 이야기를 해주고 독자가 생각하도록 했었다. 하지만 이번시즌은 과거이야기만 들려준다. 그리고 나머지 현재에 응용하는 일은 독자 스스로 하도록 하였다. 어쩌면 이제는 떠먹여주는 식이 아닌 스스로 떠먹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의 서술변화 이유는 모르겠으나 직접적인 현재 비판에 대해 약간의 거부반응을 보였던 독자에게는 오히려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묘미는 시즌에 따라 지금 현재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지 눈치 있는 독자는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역사e는 지나간 역사를 얘기하면서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그래서 시즌 별로 모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몇 십 년 후 다시 읽어보았을 때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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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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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등등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다. 궁금했지만 계속 다음으로 미루다가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했다. 예전 상실의 시대의 우중충 했던 표지와 제목과는 다르게 책 표지는 아름다웠고 제목은 상쾌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용은 오히려 ‘우중충’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실망 하진 않았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을 굉장히 극단적으로 그려서 초반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결국 작가는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일만큼 뒤틀리고 불완전하다. 그리고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아직 겨우 20대 초반을 넘긴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고 아직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이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다시 말해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언젠가는 극복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오코는 죽음으로서 그것을 극복했다면 와타나베는 삶으로서 그것을 극복한다.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각자의 인생은 그렇게 그냥 강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들은 그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다 잊힌다. 오히려 와타나베는 그 상처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친구 기즈키를 잊으려 하지 않았고 나오코를 잊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들을 잊는다. 그렇게 상처가 아물면서 와타나베는 성장한다. 그렇게 잊고 상처를 극복한다는 게 뭔가 씁쓸하면서도 다행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간 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정사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야하거나 설레거나(?) 뭐 그런 느낌들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치루는 어떤 의식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경건함을 느꼈다.

소설 속에 이러한 장면이 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백화점 옥상에서 비에 흠뻑 젖어 서로 안아주고는 미도리 집으로 같이 간다. 그러면서 미도리는 말한다. “우리 꼭 강을 헤엄쳐 건넌 것 같아” 라고. 굳이 고르자면 나는 이 말이 이 소설의 핵심인 것 같다. 실제로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시간의 강을 헤엄쳐 건너오면서 상처와 아픔을 극복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통해,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통해 극복했으니 저 장면은 어쩌면 핵심이기도 하면서 복선이기도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노르웨이 숲’을 가장 최고라고 한다. 그의 여러 작품 중 가장 먼저 최고의 것을 읽어서 굉장히 기쁘다. 이제 또 다른 그의 작품을 읽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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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왕궁을 찾는 20여 년의 여정 - 익산 왕궁리유적 발굴 이야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지음 / 진인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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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쉽게 절판되었네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주제라 조금 더 쉬운 용어로 풀어 썼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많은 일반인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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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 세계문학전집 싱글 에디션 1 세계문학전집 싱글 에디션 2
F. 스콧 피츠제럴드 저/한은경 역 / 민음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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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최근도 아니다. 2009년 영화로 벌써 4년이나 되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고 해서 영화도 나왔던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신기할 만큼 굉장히 짧은 단편소설이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짧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분량에 비해 내용은 꽤 심오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생이 거꾸로 흘러간다는 상상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다. 사실 너무 짧은 분량이라 피츠제럴드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인생에 대한 조롱일까?

보편적인 인생방식이 진리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벤자민의 아버지가 그렇다. 처음에 70대 노인으로 태어난 아들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대우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런데 그것은 벤자민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벤자민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역전되어 벤자민이 ‘아기’가 되어가는데 아들은 받아드리지 못한다. 이러한 그들의 꽉 막힌 모습은 심지어 우스꽝스럽고 한심해보이기 까지 한다. 피츠제럴드는 사회적인 틀에 갇힌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가 아닐까?

우스게 농담으로 사람의 일생은 아기에서 시작되어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것은 농담같은 사실이다. 피츠제럴드는 이 사실을 나름대로 각색해서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벤자민 버튼은 ‘아기’로 태어나서 ‘아기’로 돌아간다. 두 ‘아기’의 개념이 다르긴하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죽음과 탄생이 겹쳐지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소설은 그림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아주 간단하지만 독자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긴다. 조금은 난해하지만 매우 심도깊고 인상깊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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