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등등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다. 궁금했지만 계속 다음으로 미루다가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했다. 예전 상실의 시대의 우중충 했던 표지와 제목과는 다르게 책 표지는 아름다웠고 제목은 상쾌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용은 오히려 ‘우중충’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실망 하진 않았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을 굉장히 극단적으로 그려서 초반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결국 작가는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일만큼 뒤틀리고 불완전하다. 그리고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아직 겨우 20대 초반을 넘긴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고 아직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이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다시 말해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언젠가는 극복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오코는 죽음으로서 그것을 극복했다면 와타나베는 삶으로서 그것을 극복한다.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각자의 인생은 그렇게 그냥 강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들은 그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다 잊힌다. 오히려 와타나베는 그 상처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친구 기즈키를 잊으려 하지 않았고 나오코를 잊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들을 잊는다. 그렇게 상처가 아물면서 와타나베는 성장한다. 그렇게 잊고 상처를 극복한다는 게 뭔가 씁쓸하면서도 다행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간 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정사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야하거나 설레거나(?) 뭐 그런 느낌들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치루는 어떤 의식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경건함을 느꼈다.

소설 속에 이러한 장면이 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백화점 옥상에서 비에 흠뻑 젖어 서로 안아주고는 미도리 집으로 같이 간다. 그러면서 미도리는 말한다. “우리 꼭 강을 헤엄쳐 건넌 것 같아” 라고. 굳이 고르자면 나는 이 말이 이 소설의 핵심인 것 같다. 실제로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시간의 강을 헤엄쳐 건너오면서 상처와 아픔을 극복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미도리는 와타나베를 통해,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통해 극복했으니 저 장면은 어쩌면 핵심이기도 하면서 복선이기도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노르웨이 숲’을 가장 최고라고 한다. 그의 여러 작품 중 가장 먼저 최고의 것을 읽어서 굉장히 기쁘다. 이제 또 다른 그의 작품을 읽어나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