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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70
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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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자문(千字文)이 네 글자를 한 구로 쓴 천 글자의 고시(古詩)라면, 도덕경(道德經)은 전체 81장으로 된 오천 글자의 철학시라고 할 수 있다. 한문이란 것이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예사지만 특히 도덕경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는 대표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진짜 도가 아니며, 이름붙인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
 
도가(道家) 사상이 소규모 생산자, 소소유자를 기반으로 한 은자(隱者)집단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도가에서 추구하는 도(道)란 존재론적 신비의 개념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존적 철학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하는 ‘無爲自然’과 연관하여 도덕경을 읽어보면 어떨까. 무위(無爲)란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또 이름은 기호(sign)에 불과한 것이니 이름 자체가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재 우리는 이름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도덕경 58장에는 화(禍)와 복(福)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화(禍)는 복(福)의 원인이 되고, 복(福)에는 화(禍)가 숨어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에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깨부수고 완벽하게 상대화 시키는 논리가 들어 있다. 감각이나 기존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도가적 사유방식. 도를 도라고 하면 진짜 도가 아니고,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대상의 본질은 퇴색해져버린다는.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한편 쓸쓸해지는 고매한 논리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에 이름 붙이고, 너무 많은 것을 규정해왔던 습관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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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70
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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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 사후 100년이 지나 맹자(孟子)가 태어났고, 그 후 다시 90년이 지나 순자(荀子)가 태어났다. 서양철학의 계보를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사상의 맥을 공자-맹자-순자에서 찾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교빈 교수는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하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과연 어떤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혹은 선하다 악하다고 이분화하여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인간을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좀처럼 즉답하기 어려웠다.

흔히 성선설의 주창자로 맹자를, 성악설의 주창자로 순자를 들지만, 두 사람이 말하는 본성의 개념과 선악의 규정이 서로 차이가 있다고 김교빈 교수는 설명했다. 맹자는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본성을, 순자는 생리적인 차원에서의 본성을 말했다는 것이다.

▪유자입정(孺子入井) (<맹자>공손추 장구 상)
어린 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는 것을 본다면 그 순간 깜짝 놀라 측은해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는 어린 아이의 부모와 사귀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이나 벗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아이의 위기를 외면했다는 원성을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다.

맹자는 우물가의 어린 아이를 비유로 들어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초월해 존재하는 타고난 마음을 선(善)으로 설명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잘 기르면 인(仁)하게 되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잘 기르면 의(義)롭게 되고,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잘 기르면 예(禮)를 갖추게 되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잘 기르면 지(智)의 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맹자>양혜왕 장구 상에 보면, 맹자가 제선왕과 나누는 대화에서 “항산(일정한 재산, 생업)이 없는 사람은 항심(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 없다.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거나 편벽되고 사악해지게 되는데 백성들이 죄를 저지른 다음에 처벌하는 것은 그물로 새를 잡는 것과 같다.”라고 하며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입어 항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어진 임금이라고 설파한다. 이것이 유명한 항산항심(恒産恒心)이다.

그러나 맹자는 덧붙여 이런 말도 한다.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오직 선비만 그렇게 할 수 있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이렇게 맹자는 군자의 본성과 소인의 본성을 구분하여 설명했다. 전국시대의 지식인이었던 맹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몸을 수고롭게 하는 자와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로 철저하게 나누어진 사회를 이야기한 것이다.

▪정리평치(正理平治) 

그렇다면 전국시대 말 중원천지가 통일기운에 쌓여있을 때 태어난 순자(荀子)의 사상은 어떠했을까? 같은 유가(儒家)의 맥을 잇고 있지만 순자는 맹자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한다. 맹자가 내면적 도덕질서를 선이라고 규정했다면, 순자는 현실적으로 혼란스러운 사회가 질서 잡힌 상태, 즉 바르고 이치에 맞고 태평하며 잘 다스려진 상태가 되는 것을 선(善)이라고 했다. 所謂善者 正理平治也
 

순자는 인간의 마음 작용을 성(性)-정(情)-려(慮)-위(僞)의 4단계로 설명하였다. 쉽게 말해 생리적인 본성-감정-판단-실천의 단계로 마음을 설명하면서 그가 강조한 바는 ‘인간의 의지에 따른 실천’이다. 
 

특히 공자와 맹자 시대까지 천(天)과 인(人)을 하나로 보던 틀에서 벗어나 천(天)으로 대변되던 숙명을 부정하고 자연과 인간을 구분해서 생각했다는 것은 순자 철학이 주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사람은 자연을 이겨야 한다(人定勝天)’는 사상은 가히 프로메테우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정신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자나 맹자에 비해 순자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김교빈 교수는 지적했다. 순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가 더 관념적인 풍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말이 주는 편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구절을 되새겨보았다. 흔히 선생을 능가하는 뛰어난 제자를 이르는 말로 쓰이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다.

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청색은 쪽 풀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쪽 풀처럼 거친 것이지만 학문으로 수양을 하다보면 고운 푸른색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맹자가 말한 군자의 본성이라는 경지도 결국 순자가 말한 쪽 풀에서 뽑아낸 푸른빛(靑出於藍)의 경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맹자와 순자가 광화문에서 만난다면 성선 성악을 두고 논쟁을 할까? 아니면 뭐 그게 바로 그거지요하며 차나 한잔 하러 갈까? 여하튼 예(禮)에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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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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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聞道夕死可矣                                                                                                                    낯설지 않은 이 문장. 흔히 이렇게 해석 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독서대학르네21 동양고전 강의(8월 31일)에서 김교빈 교수는 이렇게 해석했다.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실현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72번에 걸쳐 왕들을 만나 자기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고,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道를 단순히 이론이나 관념적 가치로만 여기기보다는 현실적인 구현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孔子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중국 현대사에서도 공자가 타도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중국문화의 출발이자 동아시아 문화를 이끌어 온 힘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자아카데미’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도 공자가 사상과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공자 사상의 중심에는 인(仁)이 있다. ‘어질다’라는 해석은 다소 관념적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쓴 것으로 알려진 <중용(中庸)>에는 ‘仁者 人也’라고 했고, <맹자(孟子)>에도 ‘仁也者 人也’라고 했다. 인(仁)이란 것은 ‘사람다운 것’을 이르는 것이다.  

사람다움
사람답다는 기준은 아마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를 것이다. ‘君은 君다이, 臣은 臣신다이, 民은 民다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는 시대도 있었을 것이고. 어쨌든 ‘선생이라면 선생답게, 형이라면 형답게, 어린애라면 어린애답게’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이 말은 둘 이상의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에서 설정되는 개념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세상의 근원에 대한 관심을 만물에서 사람으로 옮겼다면, 공자는 사람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仁’을 제시했고,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道’를 말했다고 할 수 있다.

무릇 사람다운 사람이란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夫子之道忠恕而已矣.
공자가 말했다. 삼(증자의 이름)아, 나의 도는 일이관지하니라. 증자가 대답한다. 예 알고 있습니다. 선생이 나간 후 (공자와 증자의 선문답 같은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문하의 제자들이 수군거리며 묻는다. 뭐래? 증자가 설명한다. 우리 선생님 가르침의 핵심은 忠과 恕라고.

사람다운 철학을 실천하는 근본을 공자가 충(忠)과 서(恕)에서 찾았다면, 그 말뜻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忠은 마음에 중심이 잡혀 흔들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니 나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고. 恕는 용서하다, 헤아리다는 뜻으로 쓰여 남을 대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다운 사람은 자기가 드러나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남이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고 한 것이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사람다움의 철학’이었다. 두 시간 반의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스스로 ‘인간 같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孔선생의 말씀이 사람다우려면 마음에 중심이 잡혀 미혹됨이 없어야 하고 나에게 하듯 남에게도 하라고 하시니. 과연 나는 ‘사람다운 사람’ 노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성공회 교회를 돌아 조선일보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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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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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꿈에서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흠모했다는 주공(周公).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해 제도문물을 만들고 봉건제를 실시하여 확고한 신분제도의 틀을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보장해주는 안정된 질서의 구조 속에 내재한 모순이 ‘힘의 관계’ 로 바뀌어 드러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시작된다. 춘추전국시대다.
 

춘추시대에 성립된 200여 개의 제후국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고 또 벌인다. 주(周)나라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땅과 사람을 차지한 강국이 등장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불린 제(齊)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초(楚) 장왕(莊王), 오(吳) 합려(闔閭), 월(越) 구천(勾踐)은 작은 제후국들을 멸망시키고 중원 땅에 세력을 확보해간다. 약소국은 강대국에 병합되고 이 힘은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재정비 된다. 그리고 다시 진(秦)시황제가 종지부를 찍는다. 
 

550년 동안의 길고 지루한 전쟁. 위계질서와 안정의 파괴. 혼란. 

놀라운 사실은, 이 침울한 시기에 동아시아 철학과 사상의 뿌리가 형성되고 인문의식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르네상스에 비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 공자, 맹자, 한비자, 노자, 장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상가를 낳은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과 암투가 횡행하던 춘추전국시대라는 사실. 과연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陽) 속에 음(陰)이 있는 것인가. 힘겹고 어두운 시대야말로 철학자를 낳는 토양인가. 지금으로부터 2300년... 혹은 28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이다. 
 

독서대학르네21 2011년 2학기 동양고전강좌의 첫날 강의 주제는「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였다. 생산력이 증대되면 풍요로운 평화의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토지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지고 결국 땅과 사람을 뺏기 위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씁쓸한 도식이다. 긴 전쟁을 하는 동안 수탈을 당하는 민(民)의 의식이 각성하게 되고, 귀족의 몰락과 함께 그들을 보조하던 지식인[儒, 士]도 동반몰락하게 되면서 오히려 지식이 일반화 되고, 지방문화가 독자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학문과 사상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이것이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읽어야 할 역사의 키워드.

김교빈 교수는 이날 강의를 통해 ‘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 주 강의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 사상가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비뚤어진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광화문 길에 부는 바람은 한결 서늘해졌다. 강의가 끝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걸으면서 새삼 ‘흐르는 시간’ 에 발을 적시고 서있는 기분이었다. 기원전 700년 운운하는 그 시대와 2011년이라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얼마나 흘러갔고 다시 또 얼마나 흘러갈 것인지. 혹은 지금 우리 발을 적시고 있는 이 시대의 물은 과연 전혀 새로운 것인지. 그런 사념에 젖었다. 暫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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