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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일사 - 분노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이경훈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6년 7월
평점 :
이 책은 한일사를 둘러싼 9가지 쟁점을 이야기하는 한국사 책이다. 이야기 되어지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일본군 위안부
2. 강제 동원
3. 사할린 한인
4. B · C급 전범
5. 야스쿠니 신사
6. 재일한국인
7. 문화재 환수
8. 독도
9. 역사교과서
저자는 쟁점들 하나하나를 가지고 한국의 국민으로써, 일본의 국민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그동안 우리가 알아온 국사 교과서나 근현대사 교과서처럼 년도 순에 따라 순차적 구성은 하지 않았으며 다만 쟁점 마다마다를 조명하며 역사적인 사실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점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국 위안부나 강제 동원, 문화재 환수와 독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나 스스로도 배운 게 있고 인식하고 있던 점이 있었지만 사할린 한인이나 B· C 전범, 야스쿠니 신사, 재일 한국인의 문제,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당히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쟁점들에 대해 기술한다. 한국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 일본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를 통해 양국의 갈등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게 됐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에 대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시선이 좀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것도 알 것 같다.
예전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동아시아 정세에도 관심이 많은 학자였고, 실제로 책에서도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때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읽은지 오래되서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국주의 시대 때 본토인, 식민지로 이주한 본토인과 식민지의 원주민의 이야기를 했던 부분과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 조선인, 일본에 거주한 조선인, 일본인에 대한 언급들이 있었다. 나는 이 부분들에 대해 읽어나가면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경계적인 시각에 대해 눈을 떴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거리니 추후 다시 읽어봐야 겠다.)
분명 일제 강점기는 처참한 시절이었지만 개중에는 조선인을 위해 노력했던 일본인도 있었고 일본인을 위해 노력했던 조선인도 있었다. 관동 대지진 때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 당했지만 그 와중에도 같은 인간으로써 그들을 도우려한 일본인도 분명 존재 했고, 일본에 점령당했던 것을 민간인에게 화풀이한 조선인들도 분명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강점기와 해방전후를 다룬 근대의 소설들 중에서도 일본 여자를 강간하면서 이게 다 너희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던 데에 대한 복수다 라며 중얼거렸던 소설들이 존재했음을 떠올린다)
그런 점들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다. 무시해서도 안되는 일이고. 이것은 어쩌면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쟁점 한일사』의 좋았던 점은 그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써 내가 어떠한 역사 교육을 받아왔는지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때는 세계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 해준 선생님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강제 점령을 당했고, 식민지였고, 그로 인해 조선의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 패전 후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는 일본은 얼마나 뻔뻔한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사상교육이었던 셈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근현대사를 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나의 근현대사적 지식은 중학교에서 멈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국사만 배웠으며, 이는 당시 나와 같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단한 한반도' 역사만 가르쳤다는 뜻이 된다. 나는 내가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이십대 후반이 되어가서야 깨달아가고 있다.
역사란 그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된다. 분명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식민 지배를 받았고 피해자의 위치에 속해 있었지만 오롯한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우리는 미국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 했었다. 당시 월남전에서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선한 일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고, 현지 여성들을 상대로 성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라이따이한'에게 우린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사할린 한인들에 대해, 고려인에 대해, 조선족에 대해, 국제 결혼으로 인한 혼혈의 한국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나는 당대의 군인들을 비난하고자 이런 얘길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알리고 싶다. 인식시키고 싶다. 비판되어져야 할 부분은 정당히 비판하고 감싸 안아야 할 부분은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이지를 잃게 만드는 괴물과 같은 것이다.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가 없지만 앞으로의 역사는 바꾸어 나갈 수 있다.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반일과 반한의 감정도 한발자국 떨어진 상태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했거나 사건을 단행한 사람은 아니지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의식을 갖고, 어떻게든 양보해서는 안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정치와 외교에 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양국 간의 제대로 된 화합이 이루어 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책이 우리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한국, 중국, 일본을 따로 두고 볼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 '당연하다'라고 여겼던 것에 대해서 의심해 보는 태도를 견지하고 앞으로의 미래와 삼국의 관계를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것.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사관은 점점 더 세계화 되어질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사관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읽혀져야할 책이다.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다. 자국에만 매몰된 역사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탈피하자는 쪽에 가깝다. 좀더 다각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며, 그런 태도는 그저 역사적인 인식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저자의 꿈처럼 한일의 교사들이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양국의 학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미래는 한국에만 있지 않다. 일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