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일사 - 분노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이경훈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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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일사를 둘러싼 9가지 쟁점을 이야기하는 한국사 책이다. 이야기 되어지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일본군 위안부

2. 강제 동원

3. 사할린 한인

4. B · C급 전범

5. 야스쿠니 신사 

6. 재일한국인

7. 문화재 환수

8. 독도

9. 역사교과서 


 저자는 쟁점들 하나하나를 가지고 한국의 국민으로써, 일본의 국민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그동안 우리가 알아온 국사 교과서나 근현대사 교과서처럼 년도 순에 따라 순차적 구성은 하지 않았으며 다만 쟁점 마다마다를 조명하며 역사적인 사실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점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국 위안부나 강제 동원, 문화재 환수와 독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나 스스로도 배운 게 있고 인식하고 있던 점이 있었지만 사할린 한인이나 B· C 전범, 야스쿠니 신사, 재일 한국인의 문제,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당히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쟁점들에 대해 기술한다. 한국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 일본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를 통해 양국의 갈등에 대해 좀더 잘 알 수 있게 됐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에 대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시선이 좀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것도 알 것 같다. 


 예전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동아시아 정세에도 관심이 많은 학자였고, 실제로 책에서도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때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읽은지 오래되서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국주의 시대 때 본토인, 식민지로 이주한 본토인과 식민지의 원주민의 이야기를 했던 부분과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 조선인, 일본에 거주한 조선인, 일본인에 대한 언급들이 있었다. 나는 이 부분들에 대해 읽어나가면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경계적인 시각에 대해 눈을 떴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거리니 추후 다시 읽어봐야 겠다.)


 분명 일제 강점기는 처참한 시절이었지만 개중에는 조선인을 위해 노력했던 일본인도 있었고 일본인을 위해 노력했던 조선인도 있었다. 관동 대지진 때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 당했지만 그 와중에도 같은 인간으로써 그들을 도우려한 일본인도 분명 존재 했고, 일본에 점령당했던 것을 민간인에게 화풀이한 조선인들도 분명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강점기와 해방전후를 다룬 근대의 소설들 중에서도 일본 여자를 강간하면서 이게 다 너희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던 데에 대한 복수다 라며 중얼거렸던 소설들이 존재했음을 떠올린다) 


 그런 점들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다. 무시해서도 안되는 일이고. 이것은 어쩌면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쟁점 한일사』의 좋았던 점은 그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써 내가 어떠한 역사 교육을 받아왔는지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때는 세계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 해준 선생님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강제 점령을 당했고, 식민지였고, 그로 인해 조선의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 패전 후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는 일본은 얼마나 뻔뻔한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사상교육이었던 셈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근현대사를 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나의 근현대사적 지식은 중학교에서 멈췄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국사만 배웠으며, 이는 당시 나와 같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단한 한반도' 역사만 가르쳤다는 뜻이 된다. 나는 내가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이십대 후반이 되어가서야 깨달아가고 있다. 


 역사란 그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된다. 분명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식민 지배를 받았고 피해자의 위치에 속해 있었지만 오롯한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우리는 미국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 했었다. 당시 월남전에서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선한 일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고, 현지 여성들을 상대로 성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라이따이한'에게 우린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사할린 한인들에 대해, 고려인에 대해, 조선족에 대해, 국제 결혼으로 인한 혼혈의 한국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나는 당대의 군인들을 비난하고자 이런 얘길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알리고 싶다. 인식시키고 싶다. 비판되어져야 할 부분은 정당히 비판하고 감싸 안아야 할 부분은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이지를 잃게 만드는 괴물과 같은 것이다.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가 없지만 앞으로의 역사는 바꾸어 나갈 수 있다.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반일과 반한의 감정도 한발자국 떨어진 상태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했거나 사건을 단행한 사람은 아니지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의식을 갖고, 어떻게든 양보해서는 안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정치와 외교에 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양국 간의 제대로 된 화합이 이루어 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책이 우리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한국, 중국, 일본을 따로 두고 볼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 '당연하다'라고 여겼던 것에 대해서 의심해 보는 태도를 견지하고 앞으로의 미래와 삼국의 관계를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것.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사관은 점점 더 세계화 되어질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사관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읽혀져야할 책이다.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다. 자국에만 매몰된 역사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탈피하자는 쪽에 가깝다. 좀더 다각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며, 그런 태도는 그저 역사적인 인식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저자의 꿈처럼 한일의 교사들이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양국의 학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미래는 한국에만 있지 않다. 일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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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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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작 출판사는 내게 SF 소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물론 그 전부터 배명훈, 정세랑, 듀나를 사랑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SF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아작의 힘이 크다. 뭔가 맛있는 쿠키를 먹고 싶은데 뭘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매던 내게 브랜드 별로 선물 포장한 쿠키들을 내게 안내해주는 느낌. 


 20세기 중반 SF의 황금기를 이끈 '빅 쓰리'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클라크, 그리고 여기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직 아시모프와 클라크를 읽어보지 못 했지만 이젠 당당하게 하인라인은 읽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흐뭇)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의 특별한 점은 외계인의 지구 침략기가 아닌 지구인의 외계로의 납치 및 여행기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20세기 발 SF 영화의 대부분은 외계인의 지구 침략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지구인들은 점령 당하고 짓밟히고 지구 행성 자체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진다. 뭐랄까 SF적 디스토피아다. 그도 아니라면 외계인과의 만남, 우정의 대서사시를 그리며 감동의 코드를 이끌어 내거나 할 것이다. E.T.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클리퍼드 러셀은 우주에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소년이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벤트에 응모해 우주복을 얻어내기까지 한다. 특유의 영리함과 지적인 베이스를 바탕으로 낡은 우주복 오스카를 수선해 입으며 언젠가는 달로 여행갈 것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날 우주복 오스카를 입고 밤 산책을 하던 클리퍼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주선 두 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우주 해적에게 잡혀있는 상태, 여기서부터 클리퍼드와 앞서 잡혀있던 유명 과학자의 딸이자 영민한 소녀 피위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스페이스 오페라 다운 소설이었다. 그동안은 외계인이 나온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벌레 머리라고 명칭되는 못된 외계인도 등장하고 엄마 생물로 명칭되는 온건한 외계인도 등장한다. 벌레 머리를 도우며 클리퍼드와 피위를 괴롭히는 인간(팀과 조크)도 등장하고, 그들과는 전혀 별개로 벌레머리와 인류를 심판하려고 하는 제 3의 외계 세력도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 굉장히 넓다.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우주선은 인물들을 달>명왕성>베가행성>마젤란성운 등 여기저기로 이동시킨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우주 공간에 대한 지식과 수학적이며 천문학적인 계산이 탄탄하게 기반한다. 또한 주인공이 성인이 아닌 소년과 소녀 라는 점에서 소정의 성장서사의 역할마저 기대할 수 있다. 


 벌레 머리나 엄마 생물, 제 3 외계 세력에 대한 상상력은 굉장히 섬세하다. 그들은 하나의 종족으로써 스스로의 종족적 특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우주 재판의 과정에서 보면 그들의 재판과 판결이 종족적 특성에 따른 알력으로 인해 말미암았을 뿐임을 알 수 있다. 벌레 머리의 행성이 뒤로 돌게 되는 것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외계 사회에 대해 하인라인만의 상상력으로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년 소녀의 서사가 그다지 극렬하지는 않다. 납치를 당했고 탈출을 해야 했고 엄마 생물을 구해내야 했지만 뭔가 힘이 좀 빠져 있는 느낌이 조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어 볼만 하다. 발표된지 60년이 지난 작품이긴 하지만 소설 속 상상력 만큼은 적혀 녹슬지 않았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클리퍼드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모험은 자연스러워진다. 이것이 하인라인의 매력일까. 


 코니 윌리스는 자신의 대표작인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하인라인에게 헌사를 남겼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에서 처음으로 내게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소개해준 하인라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는 충분하다. 소설을 읽다가 또 다른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책을 읽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확장되어 가는 독서. 나는 이렇게 스스로의 영역을 넓혀가는 독서를 좋아하며, 그런 독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니 윌리스를 좋아한다. 코니 윌리스는 내게 하인라인을 소개 했고, 하인라인은 제롬 K. 제롬을 내게 소개했다. 제롬 K. 제롬의 책이 번역된 게 있나 찾아 봐야 겠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독서를 넓혀 나갈 것이다.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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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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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 소설이라는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사촌 형제인 프레데릭 대니(Frederic Dannay)와 맨프레드 리(Manfred Lee)가 버나비 로스, 또는 엘러리 퀸 이라는 필명으로 합작해 추리 소설을 썼다는 사연은 굉장히 유명하다. 그들 형제는 정체를 숨긴채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였고 탐정의 이름은 남으나 저자의 이름은 사라진다는 생각에 그들의 필명으로 탐정 엘러리 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탐정 엘러리 퀸은 아서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와 명성을 나란히 한다. 


 탐정 드루리 레인 4부작은 이렇다. 세익스피어 연극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노배우 드루리 레인은 청각을 잃고 배우 생활을 은퇴한다. 이후 탐정이 되어 경찰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주체적으로 추리를 해 나가기도 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를 갖는다. 『X의 비극』으로 시작해 『Y의 비극』,『Z의 비극』,『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4부작을 이룬다.


 『Y의 비극』은 부유하지만 불행한, 광기에 가득찬 해터 집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이야기이다. 첫 장면은 실종되었던 아버지 요크 해터의 죽음으로 시작되는데 이후 이어지는 에밀리의 장녀 루이자 캠피언 독살 미수 사건들과 안주인인 에밀리 해터 살인 사건,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범죄의 실상과 범인의 실체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재미있다. 드루리 레인이라는 탐정의 캐릭터도 좋고 사건의 얼개를 이루고 있는 해터 집안 사람들의 캐릭터도 좋다. 원래 개인적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나 미스 마플,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데 드루리 레인 역시 분위기가 유사하다. 


 나는 드루리 레인의 다분히 인도주의적인 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을 끝까지 읽어본 이라면 아마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범인은 사건의 종결까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드루리 레인은 범인에 대해 알면서도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몇 달 뒤 에필로그 형식으로 확실히 지시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다. 사건이 종결된 뒤 루이자 캠피언의 자연사 라는 사건을 들고 자신이 거처하는 햄릿 저택으로 찾아온 브루노 검사와 샘 경감에게 레인은 그제서야 범인에 대해,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 태도이다. 범인의 상황, 범인의 주변인물에 대한 배려로 밝힐 수가 없었다던 레인의 태도. 드루리 레인은 지적이고 친절하지만 감상적인 인물이며 뜻하지 않은 범인으로 인해 사건에 끼어들었던 것 자체를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사적 태도를 지녔으나 사건에 대해서 만큼은 냉정한 포와로나 다정하지만 늘 끝맺음이 확실했던 마플, 괴짜적 기질을 가졌으나 뭔가 감정적으로는 유리되어 있는 홈즈에 비하자면 레인은 공감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탐정이다.  


 우리는 때로 인간적, 이라는 말을 쓴다. 가정폭력을 당하다 남편을 살해하고 만 부인에 대해, 그녀의 살인 행각은 법의 테두리 안에 심판되어야 할 것이지만 심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이해한다, 라는 마음을 갖는다. 레인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인간적인 탐정이다. 


 드루리 레인 시리즈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탐정으로서의 레인이 여타의 다른 탐정들과 다른 면모의 인간적인 탐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Y의 비극』을 먼저 읽게 되었지만 아마 기회가 닿는대로 나머지 시리즈들을 읽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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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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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읽는 내내 유쾌함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주로 이 책을 지하철 안의 이동시간에 읽었는데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안의 갑갑함은 책을 읽는 내내 잊혀졌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이 아이셔 같은 맛이라면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뭔가 마이쮸 같다. 상큼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샌드라 포스터는 하이텍이라는 회사에 소속된 과학자다. 단발머리의 유행을 연구하며 그로 인해 유행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밝히고 싶어 하지만 연구는 진척이 없고 보조원인 플립은 사람을 황망하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 목장을 하는 빌리와 썸을 타고 있다. 샌드라는 플립의 우연한 배달 실수로 잘못 전달된 소포를 전해주고자 생물학부에 찾아 간다. 그리고 혼돈이론을 연구하는 베넷 오라일리 박사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 교류하며 친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플립 때문에 연구비 신청서를 잃어버리고 하이텍에서 나가야 할 위기에 처한 베넷을 돕기 위해 샌드라는 그들의 연구를 하나로 합치기로 하고, 함께 유행과 혼돈에 대한 연구에 돌입하게 되는데...  


 소설 속에서 샌드라는 수많은 유행들을 만난다. 유행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같은 가게를 자주 찾지만 갈 때마다 달라지는 메뉴라던가, 색깔의 유행이라던가 언어의 유행, 신문에 실린 개인광고, 이마에 새기는 문신, 바비인형, 흡연 혐오에 대한 유행이라던가 하는 것들. 유행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시작점은 알지 못한다.


 양들을 이끄는 방울양이란 건 사실 별 게 아니다. 


 "난 방울양이 다른 여느 양과 똑같은데, 다만 더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배고파하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욕심스러운 거죠. 제일 먼저 먹고 싶어하고, 피신하고 싶어 하고, 짝을 짓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언제나 선두에 나서는 거예요."


 방울양은 자신이 무리를 선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무리의 양들도 자신이 선동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가 유행에 대해서, 유행의 시작에 대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샌드라가 니브니츠 기금을 받게 되고 베넷과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카페의 웨이트리스는 묻는다. 


 "그 플립이라는 모임은 아무나 가입할 수 있나요? 이미 라떼 치료 모임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엔 귀여운 남자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리고 이 순간은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 무엇이 유행을 촉발하는지, 과학적인 돌파구는 어떻게 생기는지. 보이지 않는 방울양, 나비의 날개짓. 혼돈을 일으키는 키. 그렇게 두 사람의 연구는 방향성을 잡고 앞으로 이뤄나갈 연구의 시작을 예고한다.


 물론 소설은 유행의 이유, 혐오 유행이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해만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플립의 [i] 낙인에 대한 평가가 어떤 과정을 거져 inspiration의 i가 되는지, 흡연 혐오 유행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 그려지는 지, 니브니츠 연구기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턴불 박사와 마찬가지로 니브니츠 연구기금을 자신들에게 유치시키려고 하는 회사가 어떤 입장으로 그려지는 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그 모든 것을 잇고 유지하는 것은 코니 윌리스 특유의 유머 감각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전혀 유행에 따르는 편이 못된다. 유행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외적인 차림에 대한 것으로 규정하였을 때, 이런 나를 소설 속 플립이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스왑!" 아마 플립이 보기에 나나 베넷이나 비슷한 류의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어쩌면 내 쪽이 좀 더 한심하게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유행의 작동 원리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나비효과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의 것이며 우연과 우연의 도미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행은 시작을 예고하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유행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은 이 때문이다. 


 "유행의 비밀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유행에 따르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과학이란 결국 그런 것이니까요. 다음 유행은 위험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은 나머지 양떼와 함께 절벽으로 달려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이텍을 그만두며 외치던 샌드라의 말. 유행이란 늘 멋지고 좋은 것만이 아니다. 요즘처럼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는 위험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이나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굉장히 리얼리즘적으로 독해하였다고 고백하겠다.) 


 우리는 이 유행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만 보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을 것. 휩쓸려 조롱하고 낄낄거리며 넘어가기 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것. 상식을 생각할 것. 민족주의적 관점이나 지역주의적인 관점, 특정 성별과 젠더성에 치우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관점으로, 한 인간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특정 성별, 젠더가 누리고, 빼앗긴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방울양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혐오의 유행을 즐기기 보다 혐오의 원인을 찾는 것, 나 스스로를 돌아볼 것. 스스로를 돌아보는 유행을 만들 것. 


 정리하자면 우리 모두, 생각하는 방울양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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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리처드 스티븐스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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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위험하니까 하지 마라, 쓸모없으니까 하지마라, 남는 거 없는 일은 하지 마라. 온갖 ‘하지 마라’들.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의 하나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법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일부터 어떤 사회적 기준, 혹은 도덕적 가치 판단으로 인해 하지 말라고 하는 일까지.


 

 리처드 스티븐스의 책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한 일들, 사회적으로 뭔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만 하는 일들에 대해 왜 해도 괜찮은지를 역설해주는 책이다. 섹스, 알콜, 욕, 과속운전, 사랑, 스트레스, 공상, 죽음이 각 파트별로 분류되어 있으며 수많은 실험들을 실 예로 들며 주장에 대한 근거를 더해주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래도 단면적인 시각에 변화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라고 하는 책이 아니다. 해도 된다고 말하는 책이다.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는 오롯이 독자에게 공을 넘기는 책이다. 왼손은 거들뿐,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은 영화가 있었다. 벤 스틸러가 감독 겸 주연을 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2013), 한국어 번역으로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멍 때리기와 공상을 취미로 즐기던 월터 미티가 자신의 실수로 잃게 된 잡지 표지 사진을 되찾기 위해 연락조차 닿지 않는 사진작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늘 기계 부품 같은 생활을 하던 월터는 자신의 퇴직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잡지를 지키기 위해 떠난다. 목적은 하나, 사진작가를 찾아 사진을 다시 받는 것. 월터의 여정은 어느 순간부터 즉흥성을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하나하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상했던 일보다 더한 어드벤처를 보여준다.


 영화 속 월터의 삶은 앞서 다룬 책의 내용을 대신 수행해주는 듯하다. 책도 영화도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하지 마’에 지지 말자. 위험한 것에 끌리는 당신에게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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